꽃들이 들판 가득 피어있었다. 아름다웠다.
초코 케이크를 드디어 먹었다. 오늘도 역시 늦잠을 잤고 그래도 휴일이니까 부담없이 일어났다. 사실 악몽에 가까운 이상한 꿈을 꾸었다. 굉장히 화려하고 복잡한 어떤 건물에 들어갔는데 차를 세워놓은 입구를 기억하지 못해서 여러 군데의 입구를 헤매고 다니는 꿈이었다. 누군가와 동행하고 있었는데 누군지 기억나지 않고 거의 마지막 순간에, 차를 세워두고 방향치 지리치인 나를 나 스스로가 잘 알아서 주차해놓은 곳 사진을 찍어두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리셉션의 어떤 여성에게 가서 내가 주차한 곳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사진이 있으니 한번 보고 알려주시겠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 깼다. 아마 뒷 이야기는 해피엔딩이겠지. 그 여성분은 친절했고 사진으로 충분히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깼을 때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데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결국 내가 찾는 곳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내 자동차가 없다는 느낌은 막막했다. 그래서 악몽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악의는 없었지만 낄낄거리며 나를 대하던 보안 담당 남성들도 있었다. 꿈에서도 역시 여자들이 다 하는 건가. 하면 깨고 나서 조금 웃었다.
케이크가 먹고 싶었다. 오늘은 꼭 케이크를 사 먹어야겠다고 어젯밤에도 다짐했다. 그래서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다가 벌떡 일어났다. 케이크를 사러 읍내로 나가는 김에 다음주를 위한 장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면 냉장고를 살피고 뭐가 있는지, 뭘 먹을 거고, 뭘 살 건지를 헤아려야 했다. 생각만 해도 갑갑하고 딱 하기 싫은 그런 마음. 그래서 그냥 오후에 또 장을 보러 가더라도 지금 당장은 케이크만 생각하자고 옷을 입고 나섰다. 물론 나가면서도 어디로 가서 케이크를 사야할지 결정은 못했었다. 동네 큰 마트 안에 있는 제과점에 먼저 들렀다. 재난지원금을 동네 가게에 쓰면 좋으니까 그런데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파리바게트로 갔다. 기분 좋은 건, 운전이나 주차를 할 때마다 자신이 없어서 엄청 걱정하는데 이번에는 마트 주차장에도 가뿐히 차를 잘 댔고 파리바게트 가게 바로 앞 길가에도 성공적으로 주차를 마쳤다는 거다. 그렇게 파리바게트로 들어가서 초코케이크 한 조각과 슈를 샀다. 달랑 그것만 사들고 급하게 집으로 왔다. 너무 먹고 싶어서 또 중간에 정신을 못차릴 뻔했다. 사고 내면 안 되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지. 집에 오자마자 사과를 하나 깎고 아이스커피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분 좋게 브런치 식사 완료. 너무너무 맛있고 행복했다. 슈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지만 케이크가 맛있었으니까 괜찮아. 케이크를 한 판 사서 원 없이 다 먹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는 못 먹을 거 같아서 한 조각만 샀다. 아쉬워서 두 조각을 살까 하다가 두 조각을 사면 거의 만 원인데 홀케잌 한 판이 2만원도 안 되는 돈인데..하며 가성비 생각을 하느라 한 조각만 샀다. 돈 걱정에서는 쉽게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슈를 하나 더 샀다. 케이크를 두 조각 사기는 좀 그렇고 한 조각만 먹고 양이 안 차면 아쉬우니까 슈크림이 가득 들어있는 걸 하나 더 먹자.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케이크를 하나만 먹었으면 아쉬웠을 거고, 두 개를 다 먹었으면 괜히 돈을 많이 썼다는 기분이 들었을 테니까. 그렇게 기분 좋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2~3주 내내 건조대에 걸려있던 빨래를 걷었다.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개켜놓은 수건이 없어서 건조대에서 바로 수건을 걷어다 쓴 게 처음이라 내 게으름에 좀 당황하던 터였다. 빨래를 걷어서 정리했고 세탁기를 돌렸다. 감자를 쪄서 삶은 감자랑 마요네즈에 버무려 먹었다.
친구와 트위터에서 추천받은 저렴한 쇼핑몰에서 바지도 주문했다. 집에서 편히 입을 반바지를 하나 사고 싶기도 했고 외출복으로도 괜찮다는 평이 있는 긴 바지도 사고 싶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옷을 많이 안 사봤지만 인터넷으로 옷을 사본 적은 정말 손에 꼽는다. 아마 거의 처음일 것이다. 꼭 필요한가, 이거 꼭 사야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까말까 조금 망설였지만 여름에 유니폼처럼 입을 바지를 하나 더 장만한다 생각하고 주문해봤다. 배송료를 포함해도 두 개 다 해서 2만 얼마밖에 안 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기분이 좋은 일요일이다. 내일은 출근해서 퇴근시간까지 버틸 수 있을까. 지난주에도 내내 오전 근무만 했는데 이번주까지도 그렇게 하자고 말하기가 조금 민망하다. 아프면 당연히 쉬어야 하는 게 맞고, 사실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퇴근해도 되는데 역시 여전히 눈치가 보이니까...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내내 단축근무만 할 수는 없잖아. 목금은 휴가도 썼는데... 내일은 한 4시까지 근무해보는 게 목표다. 그렇게 해서 정상으로 회복해가야지.
기분 좋은 일은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오랜만에 일기장에 세 쪽 넘는 일기를 쓴 일이고 하나는 두 시간 정도 강변을 걸은 일이다. 저녁으로는 국수를 삶아 열무김치 올려 비벼 먹었는데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며칠 전에 나가 걸었을 때 달과 하늘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던 게 생각나서 오늘도 좀 걸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직 날이 어두워지려면 많이 남았으니까 조금 멀리 나가서 강변을 걸을 수 있겠다. 그래서 나갔다. 두 시간을 걸었다. 여름 들꽃들이 들판 가득 피어있었다. 아름다웠다. 다리가 아플 때까지 걸었다. 만약 내일 피곤해서 쓰러진다면 오늘의 산책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하. 그래도 내일은 최대한 정상 근무에 가깝게 근무해봐야지. 오랜만에 도시락을 쌀 준비도 했다. 너무 늦지 않게 자야지.
오늘도 애썼다. 푹 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