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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n 29. 2020

비오는 월요일, 견딜만한 시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들에 대답을 찾는 시간이 언젠가 오겠지.

비가 내려서 기분이 좋다. 덥지 않아서도 좋고 빗소리 듣는 것도 좋다. 출근할 때 계획대로 일찍 퇴근하지는 못했다. 지난주처럼 오전 근무만 하는 건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서 오늘은 점심 먹고 한... 3시쯤 슬슬 퇴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도시락을 싸갔다. 그런데 동료 한 명이 오늘 휴무고, 또 다른 직원분이 오후에 병원 가겠다고 휴가를 냈다. 그랬더니 팀장은 ‘들어가라고 하고 싶지만 오늘은 사람이 너무 없으니 힘들면 쉬어가면서 근무하세요’라고 말해서 5시 반에서야 겨우 퇴근했다. 뭐, 억울하지는 않다. 언제까지 내멋대로 오전 근무만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역시 점심시간 전에 할 일을 다 마치고 오후에는 할 일이 없어서 휴게실에 가서 누워있고, 옆방 친한 사람들에게 가서 만화책 보고 놀고, 괜히 왔다갔다 했다. 괜찮은 듯하다가 5시부터는 머리가 또 지끈지끈 아파오길래 도저히 6시까지는 있고 싶지 않아서 짐을 싸고 있었는데, 선심 쓰듯 팀장이 먼저 들어가보세요, 라고 말했다. 이미 짐 싸고 있었어요, 라고 거기다 대고 굳이 또 말을 한다 나는 또...

집에 와서 만둣국을 끓여먹었다. 비가 오니 국물 생각이 좀 났지. 옥상 텃밭에서 누군가의 대파를 조금 뜯어왔고 어제 먹고 남은 찐감자를 오븐에 구워서 웨지감자를 만들었다. 만둣국에 갓김치랑 깻잎, 거기다가 구운감자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먹고 싶으니까 됐다. 맛있게 먹었다.

목요일에 서울에서 강연이 들어와가지고, 준비를 해야하는데, 아프다는 핑계로 제대로 생각을 못하고 있다.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아서 정말로 더는 미룰 수 없는데... 내일은 꼭 해야지.

페이스북에서 좋아하는 친구가 남긴 글을 보고 하루종일 마음이 좀 그렇다. 먹먹한 느낌인데 슬픈 건 아니고 나의 외로움을 다시 한번 확인한 그런 느낌. 하와이 말로 ‘오하나’는 가족이라는 뜻이란다. 가족은 뒤에 남겨두지 않는 것... 가족이든 친구든 다정한 관계에 대한 갈망이 나한테는 채워지지 않은 채 계속 있기 때문에, 너무너무 외롭고 너무너무 슬프고 그런 거겠지. 내가 원하는 감정, 관계,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이런 생각이 확 밀려왔다. 찬찬히 생각해보고 싶기도 하고, 아예 미뤄두고 떠올리기조차 싫기도 하다. 그냥 지금은 하루하루 스트레스 가득한 직장을 버티는 것도 너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으니까 일단 이게 좀 잠잠해지면, 적응되어 견딜만한 힘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마음과 생각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떠올려지겠지. 약간 오늘은 그런 마음들이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서울에 간 김에 병원에 가야겠다. 자도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하루에도 계속 잠이 오는 이 증상에 대해서 상담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간 김에 치과도 들러서 검진도 받고 싶은데 전화걸었더니 내가 원하는 시간에는 안 된다고 한다. 와, 코로나시기에도 내가 가는 곳은 다 사람이 많더라고. 지난주에 카센터도 그렇고. 다들 나처럼 버티고 버티다가 나오는 건데도 그렇게 몰리는 건가. 워낙 사람이 많아서?

강의 준비도 못하고, 뭐 딱히 한 일도 없는데 벌써 10시가 되어버렸다. 졸리다. 그래도 오늘은 지난 월요일처럼 쓰러지듯 잠들지는 않았네. 아주 피곤하지는 않았나보다. 견딜만한 시간. 그리고 지금은 잘 시간
내일은, 꼭 숙제를 해야해!


https://youtu.be/rK3RgyNzEj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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