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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n 30. 2020

그봐, 하루도 안 빠지고 엄청 성실하게 할 거라 그랬지

우선쓰소 유튜브를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잖아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이 뱅글뱅글 도는 기분. 모레 강연에 가서 할 말을 정리중이다. 올해 들어 처음 하게 되는 강연이다. 작년에도 외부 강연 요청이 많지 않았지만 올해는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있을지도 몰랐을 일들이 다 취소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나는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 타격이 없지만 강의가 주된 수입원인 친구들은 아주 많이 힘들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들어온 귀한 강의다.


서울까지 가는 게 피곤하기 때문에 가기 전에 꼼꼼하게 강연료는 얼마인지 교통비는 별도로 주는지 물어보는 편인데 이번 행사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들이 초대해주신 자리라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봐도 강연 자리에 가서 만나고 경험하는 다양한 감각들이 지역에 멀리 떨어져 사는 나에게 제법 자극이 된다. 이번 자리는 내가, 나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기대해서 불러주셨을 테니까 잘해야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면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오신 분들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으실까 생각해보고 있는데 알듯말듯하다. 일단 원고든 발표자료든 쓰기 시작하면 또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디론가 말이 흘러가려나, 연습장에 계속해서 메모하고 그림을 그려보고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오늘은 준비를 다 하고 자려고 했는데....


기력도 없고 늘 피곤한 상태여서 서울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예전처럼 기운이 좀 돌아온 것 같았다. 회사, 상사,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이상하고 싫은 점들이 자꾸자꾸 또 마음에 들어온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미친 듯이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는 건 아니고 적당히 반복한다. 하하. 스트레스 받지 말고, 나의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 써야 할텐데...


아침에 8시에 일어나서 깜짝 놀랐다. 지각은 아닌데 평소보다 한참 늦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아도 늦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도 했지만 늦으면 좀 어떠냐 하는 마음도 컸다.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맡은 일은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다. 더 재밌게, 더 잘, 더 의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조직 안에서는 무리다. 그러니까 그냥 최소의 에너지로 문제 생기지 않을 만큼만 한다. 와...진짜 미래도 희망도 없는 사람 같네. 빨리 탈출해야하는데 계약기간이 6개월이나 남았어. 계약이 끝난다고 해도 무사히 탈출해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먼 미래까지 걱정하지 말자고, 그냥 지금 해야할 일을 하고, 재미를 찾아보자고 다짐하는데 또 퇴근하면 너무 피곤해서 뭘 하기가 싫다.


여성 시인들의 시를 함께 읽는 모임, 공동주거나 쉐어하우스를 실험해보고 싶은 비혼 여성들과의 준비 모임, 유언장을 써보는 모임 등등 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일을 꾸리기도 귀찮고, 어디서 그걸 한다고 해도 퇴근하고 갈 체력이 안 된다. 한 달에 한 번씩 월차 내고 가게 월례모임을 만들까.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일단 내일모레 강연 준비 먼저 하고 나서.


6월의 마지막 날이다. 회사 컴퓨터의 업무일지 폴더에 새로운 폴더를 하나 더 만들었다. “기다리다 보면 시간이 가긴 갈 것입니다” 지난 6개월의 업무일지를 몰아넣었다. 이제 6개월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탈출할 수 있어. 그때까지는 돈만 생각해야지. 6월의 가계부를 썼다. 전에는 아, 이번 달에 얼마를 벌고 얼마를 써서 얼마를 저축했네 아이고 뿌듯하다 이런 마음이 들었는데 이것도 시들. 더 벌고 싶어서 그런 걸까. 빨리 다른 재미를 찾아야해. 코로나 상황으로 전체적으로 사회에 활력이 떨어져서 그렇기도 할 테지. 그래도 내일은 7월 1일이다. 7월의 예산으로 책도 사고, 물건도 사고, 테이블보도 갈아야지.


어머, 그러고 보니 우선쓰소 유튜브를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잖아. 그봐, 내가 한 달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엄청 성실하고 꾸준하게 할 거라 그랬지. 다음달에도 별 일 없으면 계속 하긴 할 건데 어떻게 해야 더 재밌을 수 있는지는 고민 좀 더 해봐야겠다. 한 달 동안 애 썼어. 나야. 안녕!

바로 잘 건 아니고, 준비하던 거 마저 좀 더 보고 자야겠다.    


https://youtu.be/5tklCHU4W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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