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일기

게으른 토요일, 부지런한 일요일

by badac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빵이 너무 먹고 싶어서 당장 사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곤 바로 다시 잠들었다. 그래도 9시 조금 넘어서 벌떡 일어나 차를 끌고 마트에 갔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읍내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본다. 기본으로 도시락에 곁들일 당근, 오이, 토마토를 사는데 오늘은 당근이 없어서 파프리카를 샀다. 어제 할 일이 없어서 작년과 제작년 요맘때쯤에 뭘 해먹었나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꽈리고추베이컨볶음을 발견해서 이번주 도시락 반찬은 그걸로 정했다. 지난주에 베이컨을 대용량으로 사서 냉동실에 소분해 두었으니 당분간은 베이컨을 좀 먹을 것 같다. 햄이나 육고기를 사는 데 전보다는 더 많이 고민하는 편이지만 아주 안 먹지는 않는다. 습관적으로 사용했던 재료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정도다. 순두부찌개나 오꼬노미야끼를 자주 해먹는데 고기나 햄을 넣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었다. 미역국도 소고기 없이 끓여도 맛있다.

오늘 아침 빵이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이유도 베이컨 때문이다. 엊그제 베이컨이 도착한 뒤 매일 아침 베이컨을 구워서 콘테넨탈브랙퍼스트 스타일의 아침을 챙겨먹었다.


어제 아침에도 그렇게 베이컨과 에그스크램블을 먹고 점심에는 시판 토마토 소스에 양파와 마늘, 고추 약간, 베이컨을 잔뜩 넣어서 스파게티를 해먹었다. 맛있었다. 남은 소스는 빵에 찍어 먹으려고 계획했다. 음료는 오렌지쥬스로 곁들여야지. 나는 먹는 데 지나치게 진심이라서 언제나 다음 끼니 때 뭘 먹을지 계획한다. 음료냉장고 앞에서 포도봉봉으로 급 변경되었지만 그런 건 괜찮다. 빵만 먹으면 좀 허전하지 않을까 싶어서 오뚜기스프에 양파와 버섯을 썰어 넣고 스프도 끓였다. 아주 흡족한 식사였다.

오후엔 스르륵 나도 모르게 낮잠을 잤다. 언제부터 잤는지는 모르겠는데 일어나보니 3시가 가까워졌다. 주말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하고 마음은 먹었는데 토요일인 어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금요일 저녁에 부지런을 떨어 세탁기를 돌린 게 다다. 원래의 계획은 얇은 여름 이불을 다 빨아 널고 에어컨을 들여놓는 거였다. 작년에서야 창문형 에어컨을 샀는데 사용하지 않을 때는 한켠에 두었다가 선풍기처럼 여름에 꺼내 설치해야 한다. 설치랄 건 딱히 없는데 창문 틈에 놓고 위아래를 막는 간단하지만 에어컨이 무거워서 제법 귀찮은 작업이다. 8월 중순에 큰 방 창쪽에 작은 탁자를 놓고 이리저리 적당히 맞춰서 에어컨을 두었다. 윗부분만 막으면 에어컨을 틀 수 있게 셋팅해두고, 막을 우드락 스티로폼도 사왔는데 기나긴 장마 때문에 결국 에어컨을 틀 필요가 없었다. 이제 바람이 선선해졌으니 에어컨을 도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토요일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일요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주도 그냥 넘어갈까. 빨래 했으면 됐지, 하는 생각과 몇 주째 청소를 대충한 게 싫은 마음이 다투다가 후자가 이겼다. 얆은 여름이불을 일단 다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세탁기가 돌아가니 내 몸도 슬슬 작동을 시작한다. 갑자기 기운이 넘쳐서 소파와 캣타워의 자리를 옮겼다.

늘 깔려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대청소를 했다. 비가 오기 시작했지만 얇은 이불들이니 괜찮을 것이다. 건조대에 걸려있던 빨래를 걷고 이불을 널었다. 발리에서 사온 커다란 직물은 아직도 물이 빠져서 손빨래를 하고 세탁기로는 탈수만 했다.


캣타워와 소파의 위치가 제법 마음에 든다. 나머지는 별로 큰 힘이 들지 않았다. 쓸고 닦고 책상 위만 좀 정리했다. ‘우선쓰소’를 계속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쓰는 사람이니까 키보드받침대와 노트북 거치대를 장만했다. 어쨌뜬 일기는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어떻게든 쓰고 있지만 그래도 책상에 더 신경을 써서, 언제든 앉아서 뭐든 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말하기와 쓰기를 좋아하는 데 듣기와 읽기는 잘 못하는 것 같아 늘 부족한 느낌이었다. 책을 안 읽는다고 할 순 없지만 쓰는 사람이라면 더 많이 읽어야 할 거 같았다. 많이 읽든, 잘 읽든, 어떻게 읽는 사람이 되어갈지는 고민이지만, 일단 올해는 읽은 책을 써보기로 했다. 필사로 이어져도 좋고, 서평이나 다른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읽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차차.

비가 계속 온다. 저녁은 아침에 끓인 스프에 스파게티면을 말아서 크림 스파게티인양 먹었다. 부추와 상추를 월남쌈소스와 와사비, 레몬즙으로 만든 드레싱에 섞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어정쩡하게 남은 거 같아서 면을 다 삶았더니 거의 3인분이다. 다 먹었다. 아주 배가 부르다. 그래도 좀 지나니 케이크랄지, 과자랄지, 아이스크림이랄지 그런 게 먹고 싶어서 옷을 챙겨입고 지갑까지 들고 나갔다. 나가는 길에 쓰레기나 내놓으려고 갔다가 몸을 좀 움직이니 좀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짜피 내가 사먹을 수 있는 건 근방 세 군데의 슈퍼가 구비하고 있는 과자 종류일뿐이다. 뭐가 있는지도 알고 있고, 가봤자 딱히 먹고 싶은 건 없다. 칸쵸나 홈런볼, 빼빼로, 초코칩쿠키, 월드콘, 부라보콘, 붕어싸만코 등 늘 먹던 걸 또 집을 거다. 그리고 만족하지 못한다. 그럴 바엔 그냥 집에 와서 차를 끓여 마시자. 아침에 마셨던 레몬그라스와 모로코 여행에서 친구가 사다준 각종 풀들을 넣고 약차처럼 끓여놓은 게 있다. 거기에 설탕을 잔뜩 넣고 짜이용 홍차를 넣어 끓이면 뭔가 지금의 욕망을 달랠 수 있는 음료가 될 것 같다. 어제 사집첩에서 보니 9월에 들어서자마자 와인을 사다가 뱅쇼를 끓여마셨더라고. 뱅쇼도 좋긴하지만 일단 지금 있는 걸로. 대만족. 일기를 쓰고, 일요일을 마감해야겠다. 아예 오랜만에 긴긴 일기를 브런치에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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