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서도, 조금 느슨하게도 살아볼게요. 이렇게 저렇게 해볼게요.
오늘 낮 최고 기온은 35도까지 올라간다고 해요. 길고긴 장마가 겨우 잦아드나 싶었더니 숨이 막히는 더위가 시작될 모양입니다. 인간을 겁에 질리게 했던 코로나도 다시 ‘인간’때문에 확산될 위기에 처했고요. 걱정이 많아지지만 분노와 슬픔이 나를 덮치지 않도록 오늘을 충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일어나 고양이에게 밥과 물을 주고 내게도 차를 한 잔 줬어요.
어렵고 힘든 시기에 다들 잘 지내시나요?
저는.. 음… 우울이 그릇에 가득 차 넘실거렸지만 겨우 넘치지 않게 엄청 천천히 조심조심 걸어서 조금밖에 흘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몸이 아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고신호였나봅니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유튜브 우선쓰소는 6월 한 달을 성실히 돌아가다 7월 1일자로 멈췄습니다.
브런치에 일기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꼬박꼬박 일기장 공책에는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일기장을 한번 봐야겠어요.
저는 매일매일의 기분과 상태를 색깔과 점수로 표시하는 마음날씨표를 쓰는데요. 전에 없이 7월은 보통인 날들이 많네요. 쫌 싫은 날도 2번, 좋은 편인 날도 6번 있었는데 나머지는 다 보통. 보통을 유지하기 위해 괴로운 것들을 멀리 멀리 두고 돌아서 걸은 기분도 듭니다. 덕분에 쫌 싫은 날이 이틀 뿐이지만 진짜 좋아, 라고 느끼는 날도 하루뿐이었어요. 그나마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 날은 상담을 가서 엉엉 울고, 친구들을 만나 미래를 상상하며 웃던 날입니다. 우울증 책을 그만 보고 소설을 읽으라는 진심어린 조언도 받았죠. 그래서 소설을 많이 읽은 날도 마음날씨가 맑습니다.
지난 주부터 마음날씨가 영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어 달째 손도 못 대고 계속 미뤄뒀던 단행본 원고 작업을 다시 시작했어요. 작업을 하기 시작하니 또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만족감 덕분에 에너지가 더 생기는 효과가 생겨서 예상보다 속도가 엄청납니다.
생기주기랑 컨디션이 분명히 상관이 있는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으니 마음날씨표에 생리주기도 체크해봐야겠어요. 이런 고기력 시기가 고맙기는 한데 이렇게 또 달리다가 갑자기 푹 꺼지고 다시 짙은 무력감에 시달릴까 두렵기도 하거든요. 지금이 조증시기라고 스스로 인지한 건 거의 최초인 거 같은데요. 익숙한 느낌이긴 해요. 피곤하지만 괜찮다면서 늦게까지 일 하고, 일기를 쓰면서는 커피를 엄청 많이 마신 것처럼 가슴이 뛰고 손이 날아가죠. 머릿속으로는 엄청난 상상을 구체적으로 합니다. 생각해보니 낮에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한 것도 같아요. 사과 많이 먹을 거니까 두 봉지 다 사자. 버섯도 종류별로 사자 같은. 여섯 개나 든 사과를 굳이 두 봉지를 살 이유는 없었는데 실컷 많이 먹고 싶었어요. 회사에 작업하던 원고가 든 메모리스틱을 두고 왔는데 이렇게 된 거 내일 회사로 가서 작업을 하자, 라고 생각했다가 아니다. 당장 지금 가서 가져오고 싶어서 다녀왔고 저녁에 몇 시간 더 작업을 했고요. 그러고나서도 저녁에 잠이 오지 않아 한 시간 정도 명상하고 겨우 잠들었습니다.
임시공휴일이 지정되어서 일요일 같은 기분입니다. 특히 저는 어제 당직 때문에 출근을 해서 연달아 쉬는 것도 아니에요. 더운 여름날이지만 아침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일어나는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요즘 개완이라는 뚜껑 달린 잔에 차를 우려마시는 재미에 빠져있는데요. 정성껏 차를 내리고 상큼한 초록 사과를 잘라 예쁜 접시에 담아내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예전처럼 창밖 경치가 좋았더라면 백배 천배쯤 더 행복했겠지만 지금 이순간도 나쁘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되었어요.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지금 이순간도 나쁘지 않다. 이 말이 눈물나게 하나봐요. 회사도 싫고 할 일도 미루고 재미있다고 시작한 일도 멈추고 결국 또 나는 이 모양 이꼴로 또 한번의 실패와 못난 모습을 추가했구나 싶어서 싫은 마음이 계속 들었던 거죠. 아니다 괜찮다,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불안하고 초조하고 짜증났던 거겠죠. 가득찬 물그릇을 들고 천천히 걸으면서 쏟는 것도 무섭고 빨리 걷지 못해서 화나는 것처럼요.
이런 시간을 얼마나 더 가져야 이런 나를 사랑스럽게 봐줄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정말 대견하죠.
깊이깊이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매일을 보통으로 살아낸 지난 한 달이 대단하고
나를 놓아버리지 않으려고 계속 상황을 보고 알아채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
차를 마시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오랜만에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편지.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마음이 더 따듯하긴 할 테지만 그렇다고 메일링서비스 같은 걸 하기엔 아직... 이렇게 천천히 다정한 편지를 쓸게요.
기다려주시면 고맙고요.
저는 잘 살아가고 있을게요.
최선을 다해서도 살아보고, 조금 느슨하게도 살아보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볼게요.
괴롭지 않고 행복한 날들을 위해서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