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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Nov 03. 2021

머뭇거리는 사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에 관하여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지는 말아야겠다고 억지로 억지로 몸을 일으켜 뭐라도 했다. 공을 많이 들이진 못해도 어지간하면 밥을 짓고 김치나 김과 함께 먹었다. 빵을 구워 땅콩버터에 발라 먹기도 했다. 방바닥에 고양이 털이 너무 날린다 싶으면 하기 싫은 마음을 겨우 밀어내고 밀대로 청소도 했다. 정말 가끔, 아주 가끔. 종일 휴대폰만 붙들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니까 늦은 오후에  근처 강변으로 산책도 가고, 나의 전망대인 아파트 꼭대기  비상구 계단에 커피를 내려서 올라가 보기도 했다. 무기력과 싸우는 동안 내내 몸살 기운이 있었다. 심하게는 지난 , 떨어지지 않는 감기처럼 은은하게는 두어달. 아니 올해 내내 깊고 무서운 곳으로 떨어지지 않은 대신 계속 약한 슬픔과 짜증이 마음에 붙어 있었다. 상담을 다시 시작했다. 몸을  많이 움직여야  텐데 쉽지 않다. 무슨 운동을 할까 선택하고, 다닐만한 곳을 찾으려니 막막하게 느껴진다. 걷는 감각이라도 살려내야겠다 싶어서 차라리 재미있게 걸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너무 멀리 가거나 등산처럼 힘이 많이 들어가면  지레 겁을 먹을  같아서 가까운 , 아름다운 ,  가본  중에  곳을 골랐다. 완주군 소양면 오성제 저수지. BTS 다녀가서 더욱 유명해진 관광지라 아침 일찍 사람 없을  가고 싶었는데 8시에 일어나서 씻고 9시에  먹고 길을 나서니 도착 시간이 10 가까이 됐다. 다그치거나 조급해하지 말자고 되뇌었다. 늦어지면 어떠냐, 사람이 많으면 어떠냐, 그냥 가보는 거다. 이런 일에 성공이니 실패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저수지를 끼고 도는 산책로가 있다는데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갈팡질팡하다가 길가에  , 조금  가서 카페 밑에  , 다른 카페 밑에    주차했다가 공공이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센터 앞에 최종적으로 차를 댔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산책로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사람이 많을 때는  서서 사진을 찍는다는 소나무 근처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요리조리 사진을 찍고, 피식피식 웃으면서 다시   탐방로로 돌아가 한참 걸었다. 전기톱 소리, 헬리콥터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적당히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이 나비가 날아가는 것처럼 아름다워서  번을 영상으로 담아보려고 했는데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시간 정도 걷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을 지나쳤다. 바닥에서 뭔가 주우시기에 유심히 살펴보니 귀여운 도토리들이다.   주워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망 좋은 카페가 여럿 있는데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 머뭇거렸다. 카페가 너무  것도, 사람들이 사진 찍으러 온다는 것도, 그냥 이런 관광지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려고 노트북도 싸들고 왔는데 일하기에 너무 시끄러우려나, 관광객들이 왔다갔다 하는 분위기에 내가 질려버리고 말거야, 노키즈존인 카페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저하다보니  곳이 없었다. 그래, 좋은 곳을 걸었으면 됐다. 익숙한 도서관에 가서 일이나 하자 결론 내리고 싸온 도시락을 먹고 차를 돌렸다. 혹시나 돌아오는 길에 관광지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첫인상이 좋은 카페를 만나면 들러야지 하는 생각으로 천천히 운전했다. 계곡으로 가는 길이라 산장과 팬션만   있고 카페는 없었다. 카페가 있을 법한 집으로 되돌아가서 봤는데 글램핑장. 되돌아온 김에 오성한옥마을이라는 간판이 붙은 길목에 멈췄다. 길가에 차가 여러대 주차되어 있어서 나도  뒤에 차를 대고 마을을 둘러봤다. 매우 유명한 카페가 있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모르겠다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혼자라서 주눅 들어 겁이 났나? 나는 인생샷 건지러 카페에 오지 않는다며 젠체하는 마음이었을까,  가본 가게에 혼자  못가는 것도 같다. 아침에 산책하고 도시락 먹고 오후에 전망 좋은 카페에서 일하겠다는 계획은 못지킬  같다. 다시 집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다 송광사 앞에서 들어가보고 싶은 카페를 발견해서 차를 세웠다. 카페 이름은 몰디브. 폐장한 비수기의 해수욕장 같은 느낌. 일하시는 분들이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연꽃이 한창   송광사에도 관광객들이 엄청 몰린다.   풍경이 보이는 자리에 카페는 위치해 있다. 그리고 지금은 황량한 연못,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몰디브  그네, 원두막, 의자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건물에는 작은 모래밭도 조성해뒀다. 웃기고 귀엽고 재미있어서  모습들을 구경할  있는 출입문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시간 정도 일했다. 그런데  사이에 진심으로  가게를 즐기는 손님들이 제법 왔다. 강아지와 함께 야외 좌석에서 커피 마시는 일행, 기타와 밀짚 모자를 쓰고 원두막 좌석에서 연출 사진을 찍는 사람, 다양한 여름 의자를 옮겨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 이런 전개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요즘 트렌드인가. 신기했다. 커피맛은 나쁘지 않았고, 가을볕도 따뜻해서 야외에 있는  실내보다 좋았다.  


오늘의  일은 이걸로 모두 완수. 생산성이 좋지 않아서 목표를 낮게 잡았다. 그리고 나니 오후 시간은 덤으로 생긴  같다. 오후에 뭐할까, 도서관에 갈까, 원고를 쓸까, 집에 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장을 보러 갔다. 밥하기 싫어서 지난주부턴 장도  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기운내서 하나로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많이 샀다. 저녁은  먹나 고민하다가 우선 순위 1, 2, 3위가 모두 영업을 하지 않아서 허망한 마음으로 그냥 집에 왔다. 브레이크 타임에, 휴일에,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 어떻게 이러기도 쉽지 않겠다. 간단히 먹으려고 했는데,  봐온 채소들을 씻고 정리하다보니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게 됐다. 신선채소를 왕창 먹고 싶어서 오이, 당근, 파프리카, 상추, 토마토로 샐러드를 준비하고 마늘, 양파, 고추, 버섯, 가지, 양배추를 잔뜩 넣어서 시판 소스에 섞고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덤으로 얻은 에너지로 오늘의 일기를 썼다. 머뭇거리며 어디에 차를 댈까 우왕자왕했던 조심스러운 마음, 어느 까페에 들어가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무데도 가지 못한 마음, 어디 식당에 가서  먹을까 겨우 결심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직접 끼니를 챙겨야 했던 마음에 대해 자세히 쓰고 싶었는데.  정도면 됐다. 이걸로  평가하거나 뭐라고 하지 말아라,  안의 심판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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