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갔다. 직접 운전해서 갔다.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갔다.
"고양이를 데리고 여행을 갔다고요?"
"고양이를 그렇게 긴 시간 차에 태웠다고요?"
"이미 고양이가 있는 집으로 고양이를 데리고 갔다고요?"
고양이는 인간이 여행을 가거나 부재중일 때 다른 집에 맡기기도 쉽지 않고, 데리고 여행 다니는 것도 권하지 않는다. 익숙한 자기 집에서 부리기 좋은 집사와 함께 살며 낮잠자고 사냥놀이하고 바깥구경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미 나는 사냥놀이도 잘 해주지 않는 게으른 인간인데, 고양이가 그렇게 싫어하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지가 집에 온 지 2년쯤 되었을 때 2주간 여행을 가면서 4~5명의 동네고양이(예비)집사 모임에 도움을 요청했다. 요일별로 한 명씩 집에 와서 물을 갈고 화장실을 치우고 밥을 주고 조금 놀아주고 가는 식이다. 믿을만한 친구들이고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어 고맙지만, 하루 종일 혼자 있다가 모르는 인간이 와서 밥만 주고 돌아가는 게 가지에게 좋을 리 없다. 가지를 나만큼 예뻐하는 친구야 혼자 있는 가지가 안스러워서 놀아주기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차원에서 낮잠도 자고 책도 보면서 쉬다가 가겠지만 대부분의 부탁받은 사람들은 밥을 챙겨주고 가기에도 급급하다. 나도 모르는 사람의 집에 고양이를 챙겨주러 간적이 있어서 그 마음을 안다. 아주 친하지 않은 사람의 집에 어색하게 오래 있기도 그렇고 고양이가 나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놀아주지도 않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가지는 평소와 달리 내품에 꽤 오래 안겨있었다. 아, 이제는 가지를 두고 긴 여행도 못가겠구나.
그 뒤로는 내가 가장 길게 집을 비운 기간은 3일 정도 됐으려나. 서울로 주2일짜리 수업을 들으러 갈 때는 일요일 밤에 올라가서 화요일 아침에 내려왔고, 월요일밤에 동네 친구가 들러줬다. 외박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엔 혼자있는 가지한테 미안해서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뛰게된다. 가지도 내 발소리를 알아듣고 문앞에서부터 울며 기다리고 있다. 힝. 미안.
그러니 그 이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떠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나도 모르는 불만 같은 게 쌓여있었던 것 같다. 남편이 너무 싫지만 자식 걱정에 가출도 이혼도 못하는 그런 엄마 같은 마음이랄까. 그렇지만 너 때문에 내가 참고 살았다는 엄마에게 자식들은 그런 엄마보다는 이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엄마가 더 좋았을 거라고 말하니까. 우리 가지도 내가 가지 때문에 이렇게 불행해지고 있어, 라고 원망하는 것보다는 우리 둘에게 최대한 덜 해로운, 가능한 방법의 대안을 찾으라고 했을 거야. 강릉으로 떠나는 순간부터 가지가 옆에서 저렇게 빽빽 울어대고는 있지만 정말 후련한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알아, 가지 힘든 거 알아, 근데 인간은 지금 너무, 너무 고맙고 행복하단다. 우리 앞날을 잘 헤쳐나가보자. 미안하다. 이런 인간이어서.
나는 트위터를 하는데, 트위터란 무릇 오늘 아침에 먹은 반찬과 고양이의 콧구멍과 내 구멍난 양말의 사진 같은 걸 올리는 데다. 고양이가 대시보드 위에 앉아있다? 이것이야 말로 트위터에 올려서 널리널리 자랑하고 싶은 사진인데 그때 나는 사진을 올리지 못했다. (물론 결국 나중에 올리긴 했다.) 사람들이 고양이 데리고 여행다니는 개념없는 집사라고 뭐라고 할까봐, 저러고 운전한 거 아니야 라고 의심할까봐, 귀여운 사진으로 관심받고 싶어서 인간과 고양이 모두에게 위험한 일을 일삼는 사람으로 여겨질까봐, 아니 고양이를 차에 태워 인간 좋자고 여행 다니는 건 고양이한테 너무 몹쓸짓이라는 비난을 받을까봐 그랬다.
고양이랑 여행다니는 내 모습 너무 부럽죠? 라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리 고양이는 늘 귀여우니까 차안에 있는 모습도 귀여우니까 트위터에는 귀여운 사진을 올리는 거니까 너무너무 올리고 싶은 마음이 들고 동시에 어디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고양이랑 여행다니는 사진을 올리는 거냐는 호통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지가 처음 왔을 땐 외출을 종종 나가던 고양이였는데 그 모습 역시 너무 귀여워서 나무를 타는 가지, 풀밭을 걷는 가지 사진을 종종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올리곤했다. 동물병원 선생님들과 상의해 주사도 매달 맞고 병원도 자주 가서 외출로 인한 감염(?)은 없게 하려고 노력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썩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행히 몸줄을 풀거나 그 사이로 빠져나가 가지가 달아난 적은 없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거고, 길에서 좋지 않은 걸 주워 먹고 탈이 날 수도 있고, 병에 걸릴 수도 있고, 놀라 갑자기 뛰쳐나가면 줄을 놓치기도 너무 쉽다.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잘못인줄 모르고 잘못을 전시하는 일, 그걸 보고 혹시 누군가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하는 일,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일이 모두 두려웠다.
그렇지만 결국 또, 이렇게 우울을 박차고 여행으로 결단을 내린 내 행동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고 말았다. 혹시 누군가 맹비난을 할까, 악플 같은 게 달릴까, 조리돌림을 당할까 조마조마했지만 하지 않으면 좋을 일을 하는 게 또 나란 인간이기도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일에 관심이 없고, 나의 행동과 발언이 주목을 받는 유명인도 아니다보니 걱정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꼭 나쁜 일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쓴다. 내가 얼마나 가지를 사랑하는지, 그렇지만 가지만을 위해서 살 수는 없는 인간이므로 조금은 나를 위해 살기를 선택한 방식과 그 변명에 대해서. 가지에게 하고 싶은 말과 나를 비난할 것만 같은 타인과 혹시라도 지금과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될 미래의 나를 위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런 방법을 택했지만 가지의 고통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