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깜빡거리기만 하는 신호등이 많다. 지나다니는 차도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서 횡단보도의 빨간불에 길을 건너는 사람도 많다. 신호를 위반하는 자동차는 거의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신호가 없는 곳에서의 불법은 자주 목격된다. 주정차나 유턴을 하면 안 되는 실선의 도로에서도 차나 사람이 없으면 다들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차가 많은 읍내에서는 안되겠지만 차도 사람도 굳이 차선을 따지지 않는 곳들이 있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 마트에 가는 길이었다. 정문으로 나가는 큰 길은 신호등이 있고 돌아가야하지만 후문으로 나가면 바로 넓은 길과 ㅜ 자로 만난다. 우회전 해서 큰 길로 나간 뒤 1차선에서 유턴해 왼쪽으로 가면 되는데(경로1) 차도가 비어 있으니 많은 차들이 신호등 앞까지 가지 않고 최대한 동선을 짧게 해 유턴(경로2)을 한다. 그날도 나는 오른쪽이 짧은 ㅜ 자를 그리며 유턴을 했는데 뒤에 오던 차가 ㄱ자로 차선분리봉 사이로 운전해서 불법좌회전(경로3)을 했다. 그걸 본 순간, 솔직히 아니 저렇게 좋은 방법이 있다니, 라고 생각했다. 다음 번 마트 가는 길엔 그렇게 갔는데 내 뒤에 따라오던 차가 과거의 나처럼 짧은 ㅜ 자를 그리면서 뒤따라 왔다. 순간, 머릿속에 드는 생각 두 가지.
‘저 뒤차도 나처럼, 앗, 저런 방법이 있었네’라고 요령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저 사람 위험하게 왜 저렇게 운전하지?’라고 나를 비난할까, 였다.
내 스스로 판단하고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름해야하지만 이런 식의 눈치는 종종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차선분리봉을 세워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도나도 사람들이 불법좌회전을 하니 그러지 말라고 세워둔 것일텐데, 그 사이 틈을 노려 그 몇미터를 빨리 가겠다고 그렇게들 운전을 하고, 나는 그걸 보고 좋은 걸 배웠다고 생각한 거다.
시골길을 운전하다 가끔 앞 차가 가는 길을 보고 네비게이션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지름길을 우연히 알게 되면 기분이 좋다. 불법좌회전의 요령도 그런 동네특화지식이라고 여겨졌던 걸까. 아무리 차가 안다니는 순간이었다고 해도 야금야금 불법을 배우다보면 결국 큰 낭패를 보게 되겠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고, 처음이 어렵지 거짓말도 하나보면 늘고 점점 더 커지고 겉잡을 수 없어지는 거다.
얼마전 터널에서 전조등을 켜지 않았다고 경고문이 날아왔다. 다른 차의 공익제보로 나의 위반사실을 알게되었다고 적혀있었다. 덕분에 나는 터널 안에서 라이트를 켜야 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게 되었다. (일방 차로에서는 전조등을 켜고, 한 터널 안에서 왕복차량이 교행하는 곳에서는 마주 오는 차에 방해가 되지 않게 꺼야 한다.) 어떤 사람은 아싸, 하고 불법을 배우지만 어떤 사람은 불법을 신고해 세상을 조금이나마 안전하고 좋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