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동네 주민들의 인터넷 컴뮤니티에서 아르바이트를 검색했다. 운전을 하다가 덜컥 이제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도 해야하는 없다. 심심하다.
2주 전 상담을 할 때 그래도 아직 불안하진 않아서 다행이에요. 쉬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마음이 생기겠죠, 라고 말했었는데 가장 먼저 생기는 마음은 역시 불안이다.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
어젯밤엔 소파에서 잠을 잤다. 맛있는 걸 먹고 싶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결국 치킨을 사 먹고 말았는데 배가 불러오는 것도 무시하고 더 먹을 수 없는 순간까지 음식을 입에 밀어넣었다. 속이 답답해졌다. 모든 것들이 다 맘에 들지 않아서 기분이 나빠졌다. 휴대폰을 붙들고 시간을 보내다가 소파에 누웠다. 뭔가 작은 변화라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잠들기 전 찝찝한 느낌에 화장실에 갔더니 생리혈이 비친다. 이것 때문이었나, 하는 안도와 짜증.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을 맞으면 기분이 좀 나아지기도 할까 기대해봤지만 그냥 그랬다. 커피가 떨어진 김에 걸어서 카페에 갔다. 걸어가서 운동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밀린 일기를 쓰기로 했다. 15분 헉헉 거리면서 걸으니 땀이 났다. 상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카페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니 땀이 나기 시작한다. 숨이 찬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우아하게 어제의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진정이 잘 되지 않는다. 원두를 받아온 유리병을 이리저리 살피다 뚜껑이 열려서 커피콩이 와르르 쏟아진다. 썅. 책상 위에 쏟아진 콩과 내 다리 사이에 쏟아져서 살린 콩을 유리병에 쓸어담는다. 바닥에 쏟아진 원두는 쓸어서 치워달라고 부탁한다. 혹시나 내 불행에 공감하며 원두를 조금 서비스로 주시지 않으려나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밀린 일기를 대충 다 쓰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럴 바엔 집에 그냥 가자고 생각한다. 다시 숨차게 걸어서 집에 왔다.
어제 남긴 치킨 네 조각을 에어프라이어에 데워 먹었다.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는 텔레비젼 예능프로그램을 휴대폰으로 봤다. 식탁에 앉아 있다가 쇼파로 가서 누워 계속 봤다. 재미없었다. 저녁은 집앞 마트에서 냉동피자를 사다 에어프라이어에 구워먹었다.
오늘은 5일글장의 셀프 마감이 있는 날이다. 덜컥 겁이 난다. 와, 이렇게 무능하고 무력한 나를 작가라고, 혹은 계속 작가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을 써야할까. 가만히 기다리다보면 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까.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를까. 재능도 열정도 없으면서 그런 척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겨레21의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들 인터뷰를 읽으면 가슴이 뛸까 싶어서 몇꼭지 읽었다. 다들 너무 훌륭한데, 저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작가를 하는 건데, 나는 뭐냐. 게으르고 애정도 욕심도 없는 거 아니냐. 철학도 없고 특징도 없고. 오늘은 불안과 자책의 날인가. 호르몬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겐 일부러라도 감사와 칭찬의 말을 많이 해야할 것 같은데, 앗, 나는 또 그런 것도 왜 못하냐 하고 나를 꾸짖을 뻔했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호르몬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작정하고 편히 지내보자고 생각해놓고 자책이나 하고 있다니! 이런 기분에도 셀프마감을 지키는 나의 성실함을 우선 칭찬해보도록 하자. 1일 1드로잉을 4일이나 성공시킨 이번주의 성취도 축하해주자. 오늘 안 한건 생리휴가인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