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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선쓰소

싫어하는 마음이 미움으로 돌아와,

by badac


네가 싫어

네가 미워


나는 너를 싫어하지만 밉진 않았거든. 그런데 너는 나를 미워했다는 걸 알게 됐어. 싫은 마음과 미운 마음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싫다와 밉다가 사실 비슷한 느낌이긴 하잖아. 모를 땐 역시 사전을 찾아야 한다.


싫다 : 마음에 들지 아니하다
밉다 : 모양, 생김새, 행동거지 따위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눈에 거슬리는 느낌이 있다


싫다와 밉다 둘 다 부정적인 마음이 드는 상태, 그런 느낌을 말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실제로 비슷한말이라고 사전에 나와있다. 밉다가 미워하는 대상이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거슬리는 마음이 더 크고 정확한 뉘앙스가 있기는 하다.


나 너 그 헤어스타일 싫어

나 너 그 헤어스타일 미워


너의 헤어스타일이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는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네가 그런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게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잘 어울릴 수도 있지만 왠지 그냥 나는 별로일 때도 싫다고 말할 수 있다.

밉다는 곱다의 반대말이다. (곱다 : 모양, 생김새, 행동거지 따위가 산뜻하고 아름답다. 색깔이 밝고 산뜻하여 보기 좋은 상태에 있다.) 아름답지 않다는 뜻이다. 내 눈에 거슬릴 뿐더러 아마도 다른 사람 눈에도, 객관적으로도 거슬리는 상태일 때, 보기에 좋지 않을 때 주로 쓴다. 너의 헤어스타일이 별로다. 어울리지 않는다. 엉망이다. 좋지 않은 모양새라는 뜻.


싫어하다와 미워하다로 가면 더 큰 차이가 느껴진다.


싫어하다 : 싫게 여기다
미워하다 : 밉게 여기거나 밉게 여기는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드러내다


싫어하다는 싫다의 연장선에 마음에 들지 않아 거슬리는 느낌이 있는 상태, 그러하다고 인정하거나 생각한다는 뜻이다. (여기다 : 마음속으로 그러하다고 인정하거나 생각한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물론, 아직까진 내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남들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상태, 그 상태를 넘어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내면 미워하는 것이다. 혹은 타인들도 싫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을 수도 있다.


너는 걔를 좋아하겠지만 나는 싫어해

너는 걔를 좋아하겠지만 나는 미워해


미워하는 마음이 커지면 혐오가 되겠지. (혐오하다 : 싫어하고 미워하다)


핫도그를 싫어해

핫도그를 미워해

핫도그를 혐오해


나는 너를 참 좋아했고,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가까워질수록 차이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지. 우리는 다르구나, 그렇지 사람은 모두 다 다르니까. 그러다가 우리는 서로를 싫어하게 되었을 거야.


너의 그런 행동이 싫어. 안 그랬으면 좋겠어. 내 생각엔 잘못인 것 같아. 그러지 말아야 해.


나의 말은 과격했을 것이다. 그래서 너에게 상처를 주었겠지. 그렇지만 나 역시 상처를 받았어.


너의 행동도 잘못됐어. 네 말도 틀려.


나는 인정할 수 없었고, 아마 너도 인정할 수 없었겠지. 그렇게 서로를 좋아하진 않는 상태가 되어 서서히 멀어졌을 거야. 그래도 나는 너를 싫어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어. 전처럼 좋아할 수 없다. 좋아하진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너는 나를 미워하고 있었구나. 나의 말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었지. 내가 사과를 했던가, 안 했던 것 같다. 나는 너의 말에 상처를 입었다는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처럼, 너도 나를 싫어하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싫은 상태로 여기는 것을 두고보기보다 미움으로 마음에서 몰아내고 싶었나보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를 싫어하면, 그 마음을 받고 너는 나를 싫어하는 것보다 더 싫은 마음이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싫은 마음을 주면 미움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구나.


심지어 '서로 미워했다'고 하던데 나를 미워하는 것, 내가 미워했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자유지만 '서로 미워했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내가 하는 행동이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의 그것이라고 여겨졌을까. 나는 내게 명백한 불이익을 주는 사람조차도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미워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말야.


내가 미운 말을 하고 다닌 건 사실이지만 미워하진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야? 네가 밉다, 고 생각한 적도 입밖으로 꺼낸 적도 없는데 내가 미운 짓을 하고 다니면 미워하는 티가 나는 건가? 아닌데, 다른 건데..


나는 너를 싫어하고, 너를 싫어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싫은 마음과 미운 마음을 분리하는 연습을 했어. 싫어하지 않기는 쉽지 않지만 싫은 마음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후의 나는 여전히 미숙하지만 내 말과 행동들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행동하려고 노력해. 그런데 돌고 돌아 미움이 드디어 내게 도착했어. 미숙한 과거의 내가 뿌려놓은 싫은 마음의 씨앗이 돌아온 거겠지.


아주 오래전에, 정말 그때보다 더 철없던 시절에, 싫은 마음이 슬픔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단 나아진 걸까. 어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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