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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선쓰소

도서관에 온 거에요, 화장실에 온 거에요?

by badac

며칠 전 10시에 전주꽃심도서관에 갈 일이 있었다. 일찍 가서 여유롭게 책을 좀 보다가 친구를 만날 계획을 세웠다.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0분.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서둘러 화장실을 가기 위해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이 9시에 열던가, 작년에 내가 입주했던 완산도서관은 8시에 문을 열었기에 혹시나 하고 입구를 기웃거렸다. 문이 열려있었고 직원분께서는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도서관에 왔으니 도서관에 가지요. 조금 당황해서 “도서관이요.”라고 대답했다. “일찍 오셨네요.”라고 말씀하시길래 “아, 9시에 문을 여는 건가요?” 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셨지만 다시 나가라는 말을 안하시길래 안으로 들어섰다.


화장실이 급했던 나는 바로 서가로 올라가지 않고 두리번거리면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화장실 가려고 들어온 거 아니에요?”라고 성을 내듯 멀리서 소리쳤다. ‘어, 어,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화장실을 찾은 건 맞지만 도서관에 온 것도 맞는데요.’ 하며 주눅이 들었다. 그제야 입구에 붙은 안내문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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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심도서관은 전주시 선별진료소인 화산체육관 바로 옆에 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는 주차장도 가득차고, 코로나검사를 받기 위한 사람들의 줄도 매우 길었다. 입구에는 선별진료소를 방문하신 분은 도서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고 적혀있었다. 화장실만을 이용하기 위해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말인지, 선별진료소에 온 사람은 안전상의 이유로 도서관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인지, 조금 헷갈렸다. 정확한 문구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시설에서 일한 적이 있으니 저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화장실을 이용하겠다고 들락날락하면 관리가 어려울 수는 있을 거 같다고 이해했다. 당시에는 도서관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수를 제한하고 있어서 입구에서 번호표를 나눠주기까지 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공공시설인 시립도서관에서 화장실 사용금지 안내문을 버젓이 붙여 놓은 게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그날 아침의 나처럼, 지금 화장실을 가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도서관에 온 것도 사실일 때 나는 어떻게 행동했어야 할까. 나는 조금 주눅든 목소리로 횡설수설하며 “저 이따가 10시에 약속이 있어서 온 거에요. 일찍 온 거 맞아요.” 아니 내가 굳이 이런말을 왜 해야하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대답했다. 도서관에 온 건지, 화장실에 온 건지 물어보고 화장실만 온 거에요 하면 다시 나가라고 할 참이었던 걸까. 나는 화장실이 급해서 지금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지만, 화장실만 온 건 아니에요, 라고 부연설명이라도 해야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화장실을 사용하러 도서관에 오는 사람을 밀어내는 것은 잘못인 것 같다. 공공화장실을 샤워실인양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라는 뉴스를 읽은 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시설은 그런 역할을 해야하는 게 맞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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