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정신없이 정성 가득, 어수선하고 다정한 맛

정원콩나물국밥

by badac

미가옥을 생각할수록 콩나물국밥에 대한 내 사랑은 커져만 갔기에 세상의 모든 콩나물국밥을 먹어보고 싶어졌다. 콩나물국밥 전국투어라도 할 기세였지만 말만 그렇지 실제로 여행을 떠날 기백은 없기에 겸사겸사 새로운 동네에 가면 근처에 콩나물국밥집이 있나 찾아본다. 장장 4개월동안 진행할 독립출판 워크숍의 장소가 평화동 도서관으로 정해지자마자 근처의 콩나물국밥집을 조사했다. 전주에는 동네 곳곳에 콩나물국밥 맛집이 있으니까 분명 근처에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콩나물국밥집이 있을 것이다. 친절한 사람들이 남긴 후기 덕분에 어렵지 않게 정원콩나물국밥과 함지박콩나물국밥을 후보에 올렸다. 가격과 메뉴면에서는 두 가게가 비슷한데 함지박보다 정원에 마음이 더 갔다. 함지박은 최근에 업장 리모델링을 마쳤는지 평범하게 깔끔했다. 메뉴판 위에 성경 말씀이 적힌 명패가 걸려 있고, 소포장된 제품 조미김이 같이 나왔다. 그런 점들이 정원보다 덜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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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콩나물국밥에는 김가루가 가득 담긴 통이 나온다. 양껏 먹어도 부족하지 않다. 벽에는 유명한 사람이 남긴 사인처럼 보이는 흔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교 앞 분식점에 청소년들이 남긴 낙서처럼 보이는 지저분한 메모들, 몇차인지도 모르고 따라온 취한 이들이 쓴 글귀 같은 것들로 가득차 있다. 등산 동호회의 관광버스 옆면에 걸려있을 법한 계절별 풍경사진이 벽을 둘러쌌고 콩나물국밥과 더불어 바지락국밥이 대표 메뉴인지 콩나물의 효능과 바지락의 효능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하하하, 바로 이거지. 나의 미가옥이 이렇게 너저분하지 않아서 좋은 만큼, 작정하고 이렇게 생긴 업장은 정답고 매력적이다.


아침식사를 하러 온 주민, 해장하러 온 술꾼들로 이른 시간부터 식당은 북적북적했다. 토렴식 국밥의 온도만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은근한 접객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정작 콩나물국밥은 펄펄 끓이는 식이었다. 따뜻하고 다정한데 부담스럽지 않아서 기분 좋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정리도 청소도 잘 못하는 엄마가 사는 집, 지저분하진 않지만 깔끔하다고는 절대 말 못하는 그런 곳, 그래도 당신의 사랑과 정성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 기본 반찬으로는 수란과 깍두기, 묵은 배추김치, 고추장아찌, 장조림, 새우젓, 청양 고추와 김이 나온다. 공기밥이 나오길래 따로국밥인가 싶어 콩나물국밥을 뒤적거려보니 밥이 안에 있다. 여기도 간을 딱 맞춘 국물에 어울릴만큼 밥을 국밥에 넣고, 양이 적을까 맨밥을 조금 더 주나보다. 공기밥도 가득 채운 한 공기가 아니라 맛보기 맨밥 정도의 양이다. 업장 인테리어는 어수선해도 이런 세심함과 정확함이 고수의 내공이겠지. 수란 대신 후라이로 바꿀 수 있고, 오징어 젓갈은 달라고 하면 주고, 안 뜨거운 국밥, 따로국밥, 계란을 넣어서 끓인 국밥 등 기호에 맞게 주문할 수 있단다. 메뉴도 정신없고 안내도 정신없고 매장도 정신없는 게 아주 마음에 든다. 입천장을 데어가며 키득키득 혼자 콩나물국밥을 기분 좋게 먹고 나왔다. 주차장이 마땅치 않아서 적당히 긴장하며 골목에 차를 대는 것까지 완벽하게 신경 쓰이는 식당이다.


여름이 막 시잘될무렵 정원콩나물국밥에 들른 뒤로 아직까지 재방문을 한 적은 없다. 매주 토요일 아침 단 한번 콩나물국밥을 먹을 기회가 있다면 그건 미가옥에 내주어야 하고, 전주의 수많은 콩나물국밥을 차례차례 다 먹어볼 욕심에 마음이 바빠서다. 그래도 매주 출근길에 보는 ‘뒷골목 콩나물국밥집’이라는 광고판의 존재감이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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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콩나물국밥(전북 전주시 완산구 맏내3길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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