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묘하게 어긋난듯 어울리는 맛

by badac

아침 식사를 하기엔 조금 늦은 8시, 오거리콩나물해장국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벽걸이 티브이 화면을 뚫어져라 보시던 사장님이 왠일로 ‘여자’혼자 국밥을 먹으러 왔냐고 말을 거신다. 좋아합니다. 친구가 맛있다고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직접 먹어봐야 알지 뭐. 무심하게 계속 티브이를 보시다가 천천히 국밥을 준비하러 솥 옆으로 옮기신다. 그 모습이 불친절한 응대라 느껴지기 보단 자신감 넘치는 장인의 거들먹거림 같아서 기분 좋게 자리에 앉았다. 잠깐 문 밖으로 나가서 정면 사진도 찍고 슬쩍 슬쩍 매장 안을 찍어본다. 사진 찍는 걸로 말씀을 시작하시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후딱 몰래 찍었다. 그러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 테이블에 앉아 콩나물국밥 만드시는 걸 봤다. 십수년은 쓰신 듯 반질반질 윤이 나는 칼을 들고 뒷부분으로 먼저 마늘을 탕탕 빻고, 대파와 청양고추도 쓱쓱 썰어내신다. 뚝배기에 밥을 말고 콩나물을 꺼내는 동작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우아한 손짓으로 내게 손을 내미신다. 왜 저러시는가 싶어 의아해하다가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한번 더 손짓하시며 뒤쪽 셀프 반찬 코너에서 반찬을 집어오라고 얘기해주셨다. 딱, 알아먹어야지! 하면서 아주 조금 나무라셨는데 그 장면이 웃기고 사장님이 귀여워서 큭큭 웃으며 반찬을 가지러 갔다.

가지를 고춧가루 양념으로 무친 가지 김치와 깻잎 김치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다니던 콩나물국밥집에서 보지 못한 반찬이라 신기했다. 잠시 뒤 파가 가득 올라간 콩나물국밥이 나왔다. 수란이 나오면 같이 먹으려고 사진 한 장 찍고 기다리고 있으니 왜 안 먹냐고 또 다그치신다. 수란이랑 같이 먹으려고요. 일단 파를 익혀야지 하시길래 네, 하고 수저를 들어 콩나물국밥을 섞었다. 다른 콩나물국밥집과 달리 국물을 넣은 다음에 마지막으로 파와 청양고추를 고명으로 올리니 파가 생생히 살아있었다. 음식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사장님의 다른 말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겠다. 이분은 내가 상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눈밖에 나지 말아야지. 그냥 대단한 쉐프님 우러러보면서 얌전히 얼른 콩나물국밥만 먹고 가야겠다. 국물을 한 술 떠 먹어본다. 특이하다. 그런데 맛있다. 멸치 육수와 고춧가루 양념과 김치 맛의 조화가 특별하다. 평범하게 맛있는 보통의 맛이 아니다. 뭔가 삐끗한 것 같지만 매력적인 단조처럼 흔치 않은 맛이다. 남부시장에 있는 운암식당 콩나물국밥은 국물에 김치 맛이 강하다. 왱이집은 그보단 약하지만 기분 좋게 조화로운 게 아니라 어정쩡하게 국물에서 김치맛이 나서 딱이라는 느낌을 못 받았다. 여긴 뭔가 묘하게 어긋나는 듯한데 어울린다. 세지도 약하지도 않아 적당하긴 한데, 잘 맞아떨어진 조화로움이 아니라 서로의 개성이 여전히 살아있는 특색있는 조합이다. 서울 이수역 근처 디델리(구 나들이 떡볶이)에서 케찹을 넣은듯 새콤달콤한 떡볶이를 먹었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맛이 특이해, 먹을 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는 기분이야. 그리곤 가끔 딱 그 맛이 생각났다. 이집의 콩나물국밥도 어느날 갑자기 생각나겠거니 음미하며 먹고 있으니 사장님이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신다. 맛있어요, 라고 대답하고 뒤늦게 나온 수란에 국물과 김을 넣고 섞어 마셨다.


사장님은 티브비에서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대화 소재는 무궁무진. 전주 시내에서 최근에 문을 닫은 다른 국밥집 현황, 그 국밥집의 가정사, 요즘 장사가 잘되는 업종, 단골 손님의 가족 모임 형식과 소비 형태 등 말씀이 끊이질 않는다.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 잘 못나누는 편인데 이건 듣기만 하는 거지 대화가 아니니까 적당히 네네, 그러니까 말이에요, 하며 맞장구를 친다. 이 집은 콩나물국밥의 맛 못지 않게 이 사장님이 가게의 특별함을 만들어낸다. 이영자 님이나 백종원 님과 말로 겨루기를 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은 말솜씨와 온갖 주제를 넘나드는 말의 양. 한차례 썰물처럼 아침 식사 손님이 다녀간 모양인지 ‘남자’ 손님들은 이미 다 먹고 벌초하러 갔다고 또 묻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은 게다가 성차별적인 이야기를 이어가시며 내가 오늘 어쩌자고 별 얘기를 다 하고 있는데 ‘여자’손님이 와서 그런 거라고 하신다. 아, 네 그러세요. 굳이 이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은데, 또 모르지 케찹맛 떡볶이가 딱 떠오르는 그 날처럼 오거리콩나물국밥이 그리워질지도.


사장님은 (혼자만의) 대화를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이셨지만 나는 일어섰고, 전주사랑상품권 카드를 내밀었다. 야, 이거 안되잖아. 어디서 나를 둘러먹을라고. 막무가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아무한테나 장난을 치기 좋아하는 오지랖 넓은 아주머니 같아서 나도 아 그거 전주사랑카드예요. 제가 돈 안내고 갈까봐요 하며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내 대답은 중요하지 않지, 또 다시 자신만의 이야기 세계로 사장님이 빠져드실 참이다. 카드기를 처음 사용했을 때 사용을 잘 못해서 돈 못 받고 여럿 그냥 보냈지만 지금은 아주 잘 하신다고. 예예, 이 카드는 되지요? 잘 먹고 갑니다. 나는 서둘러 가게를 나선다.

*오거리콩나물해장국(전북 전주시 완산구 공북로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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