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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Oct 30. 2023

경하 미안

월30-11


오랜만에 경하 온천에 갔다. 아무래도 대전에서 마음 붙일 곳은 유성구의 온천 지구, 그 중에서도 적당히 오래되어 정겹고 아담한 경하 온천이라고 생각한 게 넉 달 전인 지난 6월이다. 5월 중순에 유성호텔 온천에 처음 가보고 월요일마다 그 동네 수십 군데의 온천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리라 결심했다. 경하 온천은 그로부터 2주 후에 방문한 두 번째 온천이었다. 


미가옥 콩나물국밥을 처음 먹었을 때처럼 가슴 뛰는 첫 만남이었다. 입구에 쓰인 글자 모양부터 일하는 분들의 옛날식 친절까지 눈 가는 곳곳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여러 온천에 다 가보겠다는 따끈따끈한 결심은 경하 온천탕에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미가옥 콩나물국밥을 거의 매일 먹으러 갔듯 경하 온천에 매주 오게 될 듯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에 빠진 것 같으니 더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말겠다 다짐했다. 그런데 한동안 가지 못했다. 경하 온천에 대한 호감이 사라져서 그런 건 아니었다. 바로 다음 방문에 다른 이용자로부터 하지도 않은 수영을 탕 안에서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어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그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정말 아닌가? 이렇게 쓰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는데, 경하 온천이 전처럼 마냥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게 그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경하 온천을 비롯해 온천에 가지 못하게 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갑자기 너무 자주 온천에 가서 그랬는지, 너무 오래 온천탕에 몸을 담가서 그랬는지 없던 비염이 생겨서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만 했다. 게다가 바로 여름이 찾아왔다. 더운 날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사람이지만 경하 온천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 숨 막히는 한여름에 30분이나 차를 타고 가서 더 뜨거운 목욕탕으로 들어가 40도 열탕에 몸을 담구고 싶어지는 날이 언젠가 올 수도 있겠지만.


긴 장마가 이어지다 여름이 끝나가던 날 뜨끈한 물에 몸을 담구고 싶어졌다. 온천에 대한 사랑이 착각은 아니었나봐 안심하며 노천탕이 있는 온천을 찾아갔다. 날이 아직 덥지만 비가 내리니 야외에 있는 욕탕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희미해진 과거의 확신은 당시에만 진심인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뭔가 개운치 않은 상태로 존재하기도 하고,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유성 온천에 대한 반짝였던 관심과 경하 온천을 아끼는 마음이 거짓이었나 싶어 조금 민망해지던 순간에 다시 온천이 그리워지니 반가웠다. 다시 슬슬 온천을 알아가면 되겠거니 싶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온천에서 처음처럼 강렬한 무언가를 느끼진 못했다. 이름뿐인 노천탕이라 조금 실망스러웠던 유성온천불가마사우나에는 또 가진 않을 것이다. 그로부터 2주 후엔 ‘월요일엔 유성온천’ 글을 쓰기 위해 어디라도 가야한다는 의무감에 계룡스파텔에 갔다. 기대 없이 찾아갔던 터라 그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재미있었지만 글은 쓰기 싫어서 겨우겨우 방문 후기를 짧게 썼다. 그리고 한 달 뒤에 경하 온천에 갔다. 


솔직히 말해야겠다. 그냥 그랬다. 이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아서 더 더 쓰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봐 경하온천에 가는 걸 미뤘나 보다. 불과 몇 달 전에 너무 좋다고 미가옥 급으로 사랑에 빠진 것만 같다고 말했는데, 아니 누구에게 말한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고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꼭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거다. 이쯤 되었으니 가보긴 해야겠지, 경하 온천 좋다고 했으니까 또 어떤 점이 좋은지 찾아봐야겠지, 다시 가도 좋겠지, 좋아야만 해! 내가 좋아하기로 했으니까, 좋은 게 맞겠지. 이런 생각으로 갔다. 나오면서 다음엔 계룡스파텔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누구에게 들킬새라 그 생각을 밀어냈다. 이게 뭐라고. 경하에게 미안해서 그랬다. 아니다. 경하는 상처 따윈 받지 않을 거다. 너무 좋다고 호들갑 떨었다가 그게 아니었나봐 인정하는 게 싫고 민망해서 그랬다. 자기 마음을 모르는 게, 마음이 변하는 게 부끄러웠다. 어휴, 진짜. 이런 내가 또 싫어지려고 한다. 그게 뭐라고. 


속시원히 털어놨으니 다음에 계룡스파텔에 가야겠다. 싫은 점을 발견하면 싫다고 써야지. 경하가 그리우면 그립다고 써야지. 온천에 안 가고 싶으면 안 가고 싶다고 써야지. 그래도 온천에 더 가기는 할 거다. 책도 쓸 거다. 쓰고 싶으니까. 쓰는 사람이니까. 하기 싫어도 할 건데, 생각과 마음까지 하고 싶은 것처럼 억지로 꾸미진 말아야지. 하기 싫으면 하기 싫은 마음에 대해서 써야지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거라도 마음대로. 마음을 알기가 가장 어렵고 그 마음을 다른 누가 아니라 나한테 들키는 게 싫은 복잡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쓰면서는 들여다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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