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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Mar 12. 2024

작품 너머로 이어지는 재미

이응노미술관

 


서구 만년동 일대, 갑천과 유등천변에 넓게 둔산대공원이 자리한다. 엑스포 시민광장의 양쪽으로 동원과 서원으로 나뉘어 한밭수목원이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 대전예술의 전당, 대전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 대전시립연정국악원까지, 도심 속 공원이자 문화예술의 중심지다. 길 건너 정부청사 쪽에도 너른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도심 한복판이지만 눈 돌리는 곳마다 녹색이 가득하다. 대전의 센트럴파크라고 하던데, 공원도 무척 크고 그 거대한 공원을 둘러싸고 높은 빌딩이 빽빽하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건물도 많고, 나무도 많은 대도시의 모습이다. 


차로 가면 금방이니 못 갈 거리는 아닌데,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니 자주 오지는 못했다. 대전천과 갑천을 따라 자전거로 와도 올만 할 것 같은데 아직 시도는 안 해봤다.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몇 번 들러보기만 했다. 가까이 살았더라면 산책하듯 오다가다 들렀을까, 예술을 가까이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시즌별로 들렀을까 싶지만, 현실은 아주 가끔 문화인이 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온다. 


아직 봄이 오기 전, 여전히 쌀쌀한 계절에 이응노 미술관에 다녀왔다. 10대로 보이는 소녀 너덧 명이 돗자리를 깔고 바닥에 앉아 라면과 김밥을 먹고 있었다. 공원으로 소풍 나온 걸까, 바로 옆 광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잠시 쉬고 있는 걸까, 둘 중 뭐라도 그 체력이 부럽다. 나는 서 있기도 추웠다.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2023.11.28~2024.3.3)>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이응노 미술관은 다른 건물들에 비해 키가 작고 옆으로 길었다. 입구 쪽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기념사진 촬영 장소인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느릿느릿 걸어가 입장권을 뽑았다. 입장료는 천 원.(대전시민 500원). 건물의 생김새며, 나무 사이를 통과해 입장하는 기분, 지하로 이어지는 커다란 창과 창밖의 대나무, 건물 내부로 보이는 정원 등 작품만큼 미술관을 이리저리 여행하듯 둘러보는 재미가 좋았다.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라는데, 많은 작품을 보다보다 지치는 것보다 만만하게 느껴져서 편했다. 도슨트의 설명을 기다렸다 듣는 대신, 조금 오래 머물면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지 기다려보았다. 잘 모르겠다. 다만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은 그림, 내 눈에 특히 귀여워 보이는 그림은 있었다. 1976년 작 <거북>은 처음에 보고 배를 내놓고 누운 곰인줄 알았다. 제목을 보고 나서야 거북이로구나 생각했지만, 여전히 귀여운 곰돌이로 보여서 따라 그려보았다. 


이응노는 충남 홍성 출생으로 공주, 대전 등지에서 활동했고, 전주에서는 개척사라는 간판집을 운영했다고 한다. 홍성에는 생가기념관인 ‘이응노의 집’이 있는데 이응노 미술관이 왜 대전에 있는지 궁금했다. 대전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러다 전주에서도 개척사를 복원하는 건 아닌가 싶다. 전시 관련 신문 기사에 개척사가 있던 정확한 주소가 나와 있길래, 전주에 사는 애인에게 알려주었더니 전라감영 근처의 골목길로 찾아가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극장의 그림과 간판을 그리며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이응노 선생이라니. 하기 싫은 일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했을까, 그림을 그리는 일이니 기쁜 마음으로 했을까. 아마 후자였을 것 같다. 집안의 반대로 그림을 뒤늦게 시작했다고 했으니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어서 기뻤을 것 같다. 의뢰를 받고 글을 써서 돈을 벌게 되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 기뻤던 나처럼.

고암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포함해, 주차장에서 만난 학생들의 모습, 가는 길에 스치듯 본 한밭수목원,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의 옛 가게 터까지 이응노미술관 나들이는 여러 군데로 재미가 뻗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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