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글감을 따와서 글을 씁시다
어떤 이유로든 책 내고 싶은 마음을 환영합니다
아빠는 자서전을 내고 싶어하셨다. A4용지에 당신의 가족 이야기부터 힘들게 학교 다니고 취직해서 결혼하고 자식 키운 이야기를 손으로 꾹꾹 눌러 썼다. 환갑잔치 때 몇 권만 책을 만들어서 나누어 갖자고 하셨는데 사는 게 바빠서 그 바람을 못 이뤄드린 게 내내 마음이 걸린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도 엄마는 너희 아빠 고생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한 권이야, 라고 말하곤 했는데 언젠가 지나는 말로 엄마도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인생이라고 책이 되지 못할 리가 있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모두 책이 될 것이다.
꽤 많은 사람이 자기 책을 갖고 싶어한다. 자기 책이 아니면 자기 가족의 책이라도. 육아일기를 책으로 만들어 성인이 된 자녀에게 선물하거나 생신을 맞이한 모부를 위해 자서전이나 사진집을 만드는 일은 제법 흔하다. 저자가 되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든, 책이라는 형태로 이야기를 묶어 정리해서 갖고 싶은 마음이든,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은 마음이든,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은 환영이다. 아까운 나무를 버렸구나 싶을 때도 있지만 섣불리 이런 것도 책이라고 만들었냐 같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책을 만든 사람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식에게 책으로 전해주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책으로 남겨 두길 바라는 사랑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하게 나 책 낸 사람이야,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기로 한다. 더 나쁜 짓으로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존재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허다한데, 그런 허영심 정도는 귀엽다. 그나저나 큰언니가 엄마 팔순 때 엄마책을 내자고 하는데….
#자비출판 #상업출판(#기성출판 #기획출판) #독립출판
어떻게든 책을 내고 서점에 정식으로 유통되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어떤 이는 자비출판이라는 방식을 택한다. 돈과 원고만 있으면 된다. 원고가 없어도 되긴 하겠…지만 대필 작가의 세계는 내가 모르는 영역이니 이해하고 있는 선에서 자비출판에 대해 말하자면, 책 만드는 데 필요한 제작비를 저자가 직접 부담하는 방식이다. 잘 팔리지도 않는 책이라는 상품으로 이익을 남기기 어려워 영세한 출판사는 자비출판을 일종의 사업 분야로 여긴다. 이를테면 출판 대행. 저자가 원고를 가져오면 편집하고 디자인해서 책으로 만들어 주고 서점에도 넣어준다. 오프라인 서점에 직접 책이 깔리기는 어렵겠지만 온라인 서점에 등록해서 구입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저자는 나 알라딘에서 파는 책을 낸 작가야, 하고 자랑할 수 있다.
서점에서 살 수 있는 보통의 책은 출판사에서 이 저자의 이런 책을 만들면 팔릴 것이다, 혹은 팔리지 않아도 다른 이유로 책으로 꼭 내야 한다고 출간을 결정한다. 출판사에서 인세를 포함한 제작비를 원가로 상정하고 책을 만든다. 저자는 얼마되지 않지만 인세를 수입으로 얻는다. 자비출판을 주로 하는 출판사에도 이런 기성 방식의 출판을 하기도 하는데, 구별하기 위해 기획출판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책을 만드는 독립출판에 대응하는 개념으로는 상업출판이나 기성출판이라고 하기도 한다. 상업출판에서 회사는 팔릴만한 원고를 찾는다. 블로그, 인터넷 게시판, 최소한의 필력과 인지도가 보장된 기성 작가, 책을 한 권이라도 낸 저자의 연재 원고 등을 탐색한다. 예비 저자는 그냥 저자가 되기 위해 출판사에 내 원고로 책을 내주십사 투고를 한다. 인지도가 높거나 출판사의 특징이 명확한 회사일수록 투고가 출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데 투고를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출판사는 책의 판권면에 안내가 되어 있으니 투고를 원한다면 그런 곳 위주로 시도하는 게 좋겠다. 평소에 좋아하는 출판사, 꼭 책을 내보고 싶은 출판사에 투고 해서 책이 나오는 경우는 정말이지 극히 드물다. <오늘 또 미가옥>의 원고를 출판사 여러 곳에 보내 모두 거절당하고서야 안 사실은 아니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에도 투고 원고에 거절 답장을 보내는 게 일이었기에 무작정 대표 메일로 투고 원고를 보낸다면 제대로 읽히지도 않을 걸 알았다. 친분이 있거나 소개 받은 편집자에게 원고를 전달했음에도 성사되지 않았다. 원고를 쓰고, 다 쓴 원고를 여러번 고쳐쓰느라 힘들었지 출간 계약은 그리 어렵게 하지 않았던 그간의 책들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뒤늦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소탐대전>은 출판사에 원고를 보여줄 생각도 안했다. 이렇게 지역성이 강한 원고에 관심을 가질만한 출판사가 떠오르지 않았고, 직전의 거절로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독립출판.
독립출판은 저자가 직접 책을 만드는 거다. 책을 내고 싶은 사람이 글을 쓰고 편집을 하고 디자인을 해서 인쇄를 맡긴다. 직거래든 독립서점 거래든 판매도 직접 한다. 온라인 서점에 등록하는 일도 쉽진 않지만 아주 못할 정도는 아니고, 그 부분만 대행해주는 곳도 있다. 그렇다, 남이 내 책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만들자. 내가 누구냐, 집수리도 직접 하는 <안 부르고 혼자 고침>의 저자, 경험주의자 직접 언니가 아니더냐. 책도 한번 만들어보지, 뭐. 아빠나 큰언니처럼 책 좀 한번 만들어봐라, 하고 시킬 사람도 없으니까. 기꺼이 연필농부의 첫번째 의뢰인이 되기로 한다. 이런 날이 올 줄 알고…는 아니었지만 출판인이자 작가로서 독립출판에 대해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 워크숍에서 책도 두 번이나 만들어봤잖니. 할 수 있단다. 그때 만든 책, 나쁘지 않았어. 아니 잘 했어. 편집자가 보고 남의 책 대신 만들어줘도 될 실력이라고 했어. 출판사에서 책을 몇 권 냈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 적도 있고, 독립출판 제작 워크숍 강의까지 한 사람이야. 책 잘 만들 수 있겠지?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알잖아.
원고 마감을 한다. 원고를 수정하고 구성을 조정해서 원고를 다듬는다. 인디자인으로 내지와 표지 디자인을 한다. 교정지를 뽑아 교정을 본다. 교정을 여러 번 본다. 인쇄를 맡긴다. 책을 받아보고 판다.
별 거 없네. 진짜? 그나마 저자와 편집자 경험은 있어서 어려워도 할 만했지만 디자이너의 영역은 정말이지 어려웠다. 저자의 입장으로 원고를 쓰고 책을 상상할 때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책을 생각해야 했다. 그걸 제가 잘못해서 아주 고생이 많았답니다. 다음엔 더 잘해야하지 하는 마음으로 아쉬운 점과 꼭 기억할 점을 속속들이 다 적어둘 테다!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가요?
책을 낼 때는 글을 쓰다보니 원고가 생겨서 책으로 내게 되는 경우와 책을 내기 위해 작정하고 원고를 쓰는 경우로 나뉜다. 내가 만든 책이 글만 있거나 그림이나 사진을 포함하는 글 위주의 책이라 그림책이나 사진집처럼 이미지가 중심인 책과는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글 원고든 그림이나 사진이든 출판을 위한 콘텐츠로서의 원고라는 점은 같다. 그림이나 사진이 많아서 책으로 엮어보자 할 수도 있고,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이미지를 수집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도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쌓여있기만 한 원고는 목차를 수정하거나 책의 컨셉에 따라 구성을 새로 해 원고를 보완해야 한다. <오늘 또 미가옥>과 <소탐대전>은 계속 써온 글이 있어서 책으로 엮어볼 마음을 낼 수 있었다. 반면 <속속들이 독립출판>은 책을 내기 위해 기획하고 목차를 정해 원고를 쓰고 있다.
기성출판사와 함께 만들었던 책도 마찬가지다. <안 부르고 혼자 고침>도 생활기술 워크숍 신문기사를 보고 편집자가 생활기술에 대한 책을 내자고 제안해주어 이리저리 궁리해서 구성하고 목차를 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 냈던 <나 혼자 발리> <귀촌하는 법> <이왕이면 집을 사기로 했습니다>는 이미 써놓은 글을 토대로 출간 계약을 했다. 거의 다시 쓰는 수준으로 여러번 고치기는 했지만. 어떤 컨셉으로 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최초의 원고는 로데이터(가공되지 않은 측정 자료)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원고가 있어도 없어도 기획에 맞게 원고를 생산해야한다는 점에서는 결국 같은 과정을 지나야 할 것이다. 이미 원고가 있으면 수월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수정과 보완이 쉬워서는 아니다. 어떨 땐 새로 쓰는 게 훨씬 쉽다. 그래도 자꾸 보고 또 고치고 다시 쓰고 여러번 봐야 원고가 좋아지니까, 한 번 해봤다고 두 번째는 할만 하니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쓰는 것보단 뭐가 있으면 해볼만 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다.
책을 내고 싶다면 막연하게나마 어떤 내용을 책으로 만들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봤겠죠?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나 할 말이 많은 주제가 책이 된다. 예를 들면 인생을 돌아보는 자서전, 여행을 추억하는 책, 특별한 사건이나 시간에 대해 쓴 책, 친구나 연인이나 가족처럼 사랑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대해 쓴 책이 가능하다. 혹은 지긋지긋한 무엇, 특별한 관계를 맺는 대상, 좋아하는 곳, 일이나 취미와 특기에 대해서, 힘든 일을 지나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 등도 쓸 수 있다. 완성될 책을 상상하며 소개를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미 나와 있는 책 중에서 비슷한 내용이나 컨셉을 가진 책을 살펴보고, 내가 만든 책이 어떤 독자들에게 가 닿을지 예측해봐도 좋겠지만 어렵다. 그럴 때일수록 더 진지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면 좋겠다. 누군가는 독자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쓰고 책으로 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뭔지도 모를 뿐더러 내 입장에서는 그러려고 독립출판씩이나 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책이라면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지 않을까요. 잘 팔리면 좋겠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이 잘 팔리는 책인지 내 맘대로 만드는 책인지 만드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 그 둘의 타협점을 찾는것도 본인 몫. 나에게 책의 시작은 쓰고 싶은 이야기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럿이라면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흥미를 끌만한 걸로 골라도 좋다. 주변인에게 의견을 물어보자. 독자의 반응이 쓰고 책을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므로.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칠게 구분해서 내용과 형식이 정해져야 한다. 무엇에 관한 책인가가 내용이라면 어떤 꼴의 책인가가 형식이다. 형식에는 판형을 포함한 디자인 요소, 특히 얼굴인 표지가 중요하다. 작고 귀여운 책이어서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든지, 묵직한 느낌 또는 단순하고 세련된 디자인이면 좋겠다든지 하는 책의 모양에서부터 색감이나 본문과 표지의 디자인 스타일을 포함한다. 평소에 좋아하는 책의 디자인이나 분위기를 잘 기억했다가 참고하는 게 좋다. 책을 만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책의 꼴을 상상하면서 구체화시켜가는 게 좋다. 모든 일이 그렇듯 다양한 분야의 협업에 필요할 때는 초기부터 기획의도와 컨셉을 공유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내가 출판사라고 상정하고 저자,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가 초기 기획회의부터 같이 하는 거다.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자아와 편집 방향과 디자인 컨셉을 정하는 자아, 향후 책을 어떻게 팔면 좋을지 사은품 굿즈나 입고 서점을 미리 둘러보는 자아까지 다양한 역할로 동시에 활약해야 한다.
글만 써서 편집자에게 넘기기만 하면 그 뒤로 크게 신경쓸 게 없던 저자 자아만 강력해서인지 막상 편집 및 디자인 단계에서 갑자기 막막해졌다. 독립출판물 제작자의 강연이나 독립서점 북토크 행사를 다니면서 분위기 파악을 한다고는 했는데도 많이 부족했다. 기성 출판물이든 독립 출판물이든 다양한 책을 접하되, 전처럼 단순히 독자로서 책 재미있고 예쁘고 보기 좋네, 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내 책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그려봐야 훗날이 편하다. 표지 디자인이나 판형(책의 크기), 읽기 편하거나 마음에 드는 서체, 구체적인 목차나 제목의 디자인 형태, 본문 내용의 구성을 전문가의 마음으로 분석한다. (앞을 나올 내 책에 대해서는 전문가 맞으니까요.)
*매주 화요일 뉴스레터로 [소탐대전+속속들이 독립출판]을 받아보실 분은 여기에서 구독신청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