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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l 30. 2024

구성 : 목차 나오면 끝이다

글 쓰기와 책을 위한 원고 생산은 어떻게 같고 다를까요?


며칠 전 친구 귀뚜라미가 물었다. (이러쿵 저러쿵) 마음이 복잡하여 글을 쓰고 싶은데, 글 쓸 때 주제가 있는 게 좋을까? 그냥 쓰고 싶은 걸 쓰는 게 좋을까? 


함께 글 쓰기 수업을 했던 개구리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단상이나 일어났던 사건을 중심으로 글을 써왔다. 경험, 생각, 느낌을 쓰는 생활글에서는 무엇이든 소재가 된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아무일 하지 않은 날에는 그날의 무기력에 대해서 쓰고, 누군가를 만나 기쁘거나 화난 순간을 시작으로 나의 마음 상태나 인간 관계에 대한 단상을 쓸 수도 있다. 여러 번의 만남 혹은 수업을 지나면서 개구리는 글감이 있다면 쓰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개구리의 일상과 근래 고민하고 있는 생각을 알고 있기에 행동이나 풍경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기, 비교하며 쓰기, 강조하며 쓰기, 설명하고 설득하기,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보기, 과거의 경험과 현재를 연결하는 쓰기를 연습할 만한 소재를 정해보았다. 평소에 개구리가 많이 하던 이야기 중에 주제를 잡고 끌고 가면 좋을 것으로 골랐다. 


귀뚜라기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주제를 정해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건 이미 머릿속에 할 이야기가 가득 차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글감이 여기저기 놓여 있을 것이다. 할 말을 쏟아내는 심정으로 나열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갈래가 생기고 내용이 구성된다. 그걸 좀 다듬으면 일관된 주제로 묶을 수 있고, 좀 더 정리하면 글의 순서 즉 책의 목차가 된다. 시간 순서나 공간의 구조, 생각이나 감정의 이동 방향처럼 자신만의 기준으로 내용을 덧붙여간다. 이런 방식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선 쓰소. 쓰고 싶은 걸 쓰면 된다. 쓰다보면 관심이 어디로 치우쳐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잘 모르겠다고? 그래도 그냥 쓰면 된다. 어떤 때는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 이렇게 원고가 쌓이면 앞서 말한 것처럼 원고가 준비된 상태에서 책 만들 준비를 할 수 있다. (아마 다시 써야 하겠지만.) 


책을 위한 글쓰기가 그냥 글쓰기와 다른 건 책에 포함된 모든 글이 긴 호흡으로 한 방향을 향해  가야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대략적으로나마 어떤 책을 어떻게 만들지 결정했으므로 일관성 있는 글을 쓰자. 그렇지만 또 거기에 너무 집착해서 앞 뒤 양 옆을 못 보는 것도 재미없다. 독립출판이 뭐냐,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다. 분량이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이리저리 내용이 널뛰면 널뛰는 대로 그게 또 독립출판물의 매력이다. 다만 나는 여전히 옛날사람이라 얇고 작은 걸 특징으로 내세울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분량은 되어야 책처럼 보이기는 하더라. 아무리 얇아도 100쪽은 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글이 완벽하게 한 방향을 향해 가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주제에 맞는 글만 고르거나,  배치를 달리 하거나 , 비는 부분을 연결하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방향 설정이 기획이라면 조정과 보완은 편집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획은 기세다. 얇디 얇은 책도 괜찮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책도 괜찮다. (나는 알아야 한다. 모른다면 모른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한다.) 책의 내용을 구상하고 원고를 쓰는 작업은 창작, 즉 예술의 영역이므로 쓰는 사람의 세운 기준에 맞는 완결성을 가지면 된다. 내가 그렇다는데, 그렇게 믿고 썼다는데, 이게 나고, 내 작업이고, 예술이다! 자신을 믿고 우기기. 


글감을 골라 잘 분류하면 목차가 됩니다


목차 먼저 짜놓고 쓰실래요, 쓰면서 짜실래요?


<소탐대전>은 목차를 짜놓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매주 뉴스레터도 보내는 연재물이었기에 마감 전날 으악 오늘은 도대체 뭘 써야 하나 고민하면서 후다닥 소재와 주제를 정했다. 대전 구석구석을 작게 탐험하는 동네 여행기라는 컨셉만 정해놓고 장소는 임박해서 정했다. 처음부터 책을 만들 생각을 했다면 지역별로, 소개할 곳의 특징별로 나누어 겹치지 않게 장소의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썼으면 좋았을 뻔했다. 그래도 뭐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마음으로 그냥 쓰고 모아놓은 20개의 글로 책을 만들었다. 순서만이라도 바꿔서 분류를 해보려고 했지만 매주 글을 쓰면서 이전 글과 연결되기도 하는 바람에 그냥 두었다. 원고를 다듬고 뭔가 더 재미있게 구성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머리말과 중간에 들어가는 부록 원고를 덧붙였다. 책의 전개에 강양이 없는 듯해서 반의 반 지점마다 대전을 여행하는 저자의 내면을 둘러볼 수 있는 내용을 추가했다. 그 다섯 꼭지의 원고의 목차는 미리 구성했다. 


<오늘 또 미가옥>은 사랑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연애 초기처럼 미가옥 콩나물국밥에 한창 빠져있을 때 떠올린 거라 쓸 게 너무 너무 많았다. 매일 매일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고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식성, 취향, 노동, 관계, 성격, 관성, 오해, 선입견 등 모든 사람의 인생이 책이 되듯, 무엇이든 깊게 들여다보면 어디로든 다 연결될 이야기가 된다. 대략적인 글감을 추렸다.  다음은 당시 만들었던 목차(안)과 출간된 책의 목차다. 


미가옥 책  목차(안)

- 첫술에 반한 사랑

- 콩나물국밥을 먹다가 세월을 느끼는 마음

- 콩나물국밥 별로던데, 라고 말하던 과거의 나에게

- 난 콩나물국밥 제일 싫어, 라고 말하는 너에게

- 밥 먹으러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 하루에 몇 번, 연속 몇 끼니나 먹을 수 있을까?

- 매일매일 가면 창피할까? 주 몇 회까지 가능?

- 콩나물국밥 덕분에... 영어공부도 하고, 그림연습도 한다

- 삼례 미가옥 콩나물국밥 먹는 법, 군더더기 없는 조리 과정 관찰기

- 내 친구에게 콩나물국밥 소개하던 날

- 갈 수 있을 때 매일 가는 게 나을까, 질리지 않게 아껴서 가는 게 나을까

- 미가옥 지점별 차이, 전주, 완주, 군산, 익산 맛집의 비교

- 지역 주민이 가장 사랑하는 콩나물국밥집은?

- 허탕친 날의 기분, 만약을 대비하는 자세를 배우다


<오늘 또 미가옥>의 목차

[여는 글]   뜨끈한 사랑 이야기

- 사랑에 빠진 날

- 어떻게 사랑을 계산할 수 있습니까 

- 너무 사랑하니까 거리 조절

- 미가옥을 사랑하는 법

- 사랑이 나를 움직이게 해 

- 내 사랑을 강요할 순 없겠지

- 사랑을 나누고픈 마음

- 너는 사랑을 아직 몰라

- 네 사랑도 귀한 것을

- 사랑하는 자의 의무

- 사랑이 멀어졌습니다 : 롱디

- 사랑은 그렇게 변하지

- 이 사랑은 리필이 됩니다

- 예측할 수 없는 사랑의 현현

- 각기 다른 사랑의 모양

[닫는 글]

오늘은 어디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을까

[부록 1]  넓은 세상  여러 사랑의 맛

- 묘하게 어긋난듯 어울리는 맛

- 어수선하고 다정한 맛

[부록 2] 미가옥 방문 일지



처음부터 완벽한 목차를 만들 수는 없지만 시간순이나 공간순, 마음이 변하는 순서 등 자신만의 기준으로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대략적인 목차를 짜놓아야 일정 분량의 원고를 만들기 편하다. 나는 생각이 닿는대로 하고 싶은 말을 주욱 나열해보고 분류하고 순서를 정한다. 카테고리를 먼저 정해놓고 그 안에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넣는 방식도 가능하다. <속속들이 소탐대전>은 과정을 따라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라 기획-집필-편집과 디자인-제작과 마케팅으로 단계를 구분하고 각각의 단계에 해야할 일을 채워넣고 목차를 완성했다. 너무 막막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비슷한 주제의 책을 참고해서 남들은 어떤 순서로 어떤 내용으로 썼나를 살펴보는 것도 좋다. 쓰다보면 당연히 목차는 조금씩 변한다. 글은 다음 글을 자연스럽고 끌고 온다. 



하루에 얼마나 써야할까요?


하루에 몇 자 이상, 몇 시간 이상 기준을 정해두고 무조건 쓸 수만 있다면, 앉기만 하면 술술술 원고가 써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업 시간은 머릿속으로 뭘 쓸까 생각을 굴리는 시간, 써야지 다짐하고 책상 앞으로 가서 앉는 데 걸리는 시간, 컴퓨터나 공책을 펴고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할 때 걸리는 시간을 모두 포함한다. 한 번에 얼마나 오래, 어느 정도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는지 본인의 상황을 먼저 점검해보자. 어학 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하듯이 샘플로 한 꼭지의 글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인한다. 기획, 구상, 글쓰기, 퇴고를 포함해 며칠이 걸리는지 순수하게 책상에서 글 한편을 완성하는 데는 몇 시간이 걸리는 지 본다. 

샘플을 통해 생산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하루 이틀 정도 평상시 다른 일을 하면서도 뭘 쓸지 고민한다. 쓰는 날을 하루 정해서 인터넷 검색이나 참고도서로 자료를 조사하고 바로 이어서 글을 쓴다. 정체 없이 집중해서 쓰면 2천 자에서 3천 자 사이의 한 꼭지를 쓰는 데 서너 시간이 걸린다. 다음날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주간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생긴 리듬이다. 주 5일 근무라고 치면 이틀 구상하고 하루 그림 원고 하고 이틀 글 원고를 쓴다.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점심 시간에 짬을 내어 글을 쓰는 대단한 작가도 있겠지만  한 시간씩 5일 동안 모은 5시간보다 통으로 이어진 4시간 작업 시간을 확보해서 글쓰는 날로 정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딱 맞는 작업 스타일을 찾지 못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맑은 정신으로 글쓰기를 하는 게 좋은지, 밤 늦은 고요한 시간이 좋은지 그때그때 다르다. 되는 대로 열심히 한다.

하루에 몇 자를 쓸지, 몇 꼭지를 쓸지는 본인의 생산속도와 마감일을 고려해 계획을 세우는게 좋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마감을 하는 식으로 최종 마감일로부터 역순하여 전체 원고를 소분한다. 10꼭지의 글이 필요하면 10주로 계산해서 하루에 한 꼭지씩, 5주 밖에 시간이 없다면 일주일에 두 꼭지씩 마감한다. 그렇다면 하루에 써야 할 분량이 나온다. 도저히 내 성능으로 일주일에 두 꼭지를 쓸 수 없다면 작업 기간을 늘리든지, 전체 분량을 줄이든지 해야한다. 근력 운동을 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운동량보다 살짝 무리해서 계획을 세우라고 하는데, 원고 생산은 자신의 최대 생산성의 80% 정도를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 창작하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다. 다시 정리한다. 책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등 원고를 생산하고 있다면 능력에 맞는 일주일 단위 생산목표량을 정해서 하루나 이틀 정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다. 초기에 쓰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 매일 30분씩이라도 꾸준히 쓰는 것도 좋다. 한번 쓸 때 2천자 정도 A4 한 장 이상)으로 긴 글을 쓸 수 있게 연습한다. 할 수만 있다면 매일 2천자 씩 쓰면 좋겠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하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절대 책을 완성할 수 없다. 정말 안 써지네, 못 쓰겠네 싶어도 우선 분량을 채운다. 그리고 퇴고한다. 이번에도 명심해야 할 말은 우선쓰소! 



직접 찍은 사진과 그림을 넣고 싶다고요?


사진을 넣는다면 컬러인쇄를 고려해야 한다. 인쇄용 이미지는 CMYK모드로 작업하는데, 각각 한 가지 잉크색을 나타낸다. (쉬우면서도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좋은데, 잘 모르는 분야라 원리나 개념에 대한 이해보다는 책을 만들 때 알아야할 내용이나 방법만 언급하려고 한다.) 네 가지 잉크를 다 이용해서 풀컬러로 인쇄하는 걸 4도 인쇄라고 하고, 검정색 K만 쓰는 걸 1도, 검정색과 다른 색을 사용하는 걸 2도 인쇄라고 한다. 책에 녹색, 파랑, 분홍, 보라, 갈색 등 풀컬러는 아니지만 다른 색이 쓰인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1도나 2도 인쇄로 사진이 들어간 책을 만드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책의 컨셉과 예산에 맞게 결정하면 된다. 그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릴 때부터 색을 썼다면 컬러 인쇄를 하지만 한 가지 색만 이용해서 1도 흑백이나 2도 인쇄를 할 수도 있다.  1도 인쇄라 하더라도 검정과 흰색, 줄무늬나 체크무늬처럼 패턴을 이용해 색의 대비로 효과를 줄 수 있고, 검정, 연한 검정, 회색, 흐릿한 회색 등으로 명암을 이용해서 제한된 조건에서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 흑백 만화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또 그림을 그릴 때부터 판형에 맞는 크기를 고려해야 한다. 실제 책에 들어갈 크기보다 그림이 너무 크거나 작으면 안 된다. 크게 그린 걸 너무 많이 줄이면 찌그러지고, 작게 그린 걸 키우면 흐릿해진다.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다면 파일을 생성할 때부터 그림 크기, 해상도 300이상, CMYK모드 설정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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