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어떻게 지키나요?
글은 마감이 쓴다고들 한다. 공모전 제출, 숙제 검사일, 기획안 발표, 청탁 원고 보내기로 한 날 등은 밖에서 정해준 마감은 오히려 쉽다. 우리는 지금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원고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원고를 쓰고 있다. 매주 한 꼭지씩 쓰겠다고 마음만 먹어서는 마감이 잘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마감을 지키는 뾰족한 수는… 없다. 그저 울면서 어떻게라도 쓰는 것뿐. 그래서 최대 역량의 70% 정도를 쓰면 지킬 수 있는 마감 일정을 잡는 게 중요하다. 어쩌다 한 번은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끌어다 쓸 수 있겠지만 그러면 다음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잠을 줄이고 밥 먹는 시간을 아껴서 원고를 쓰는 게 아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지 않게 하듯 어영부영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관건. 너무 하기 싫은 것과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능력은 본인에게 있다. 시험공부 대신 책상 정리만 야무지게 하는 것처럼 글 쓰겠다고 컴퓨터 앞에서 원고와 전혀 상관없는 에너지 캐시백 회원 가입을 두 시간째 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딴짓하는 시간을 줄이고 바로 일로 돌입하는 방법을 찾고, 그렇게 작업해서 마감을 지키는 습관과 성공의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혼자만의 다짐을 잘 지키는 사람도 가끔 있지만, 평범한 사람은 강제력이 동원될 때 그나마 마감을 지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글쓰기 플랫폼에 시리즈를 연재하겠다고 등록하고 매주 글을 올리거나, 마음 맞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서 벌금을 걸고 서로의 마감 친구가 되어주는 방법도 있다. 벌금이 동기부여가 되려면 부담스러운 금액으로 책정하고, 누군가는 정확하게 재촉하고 벌금을 걷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친구와 둘이 글을 써서 만나자고 약속해 놓고 흐지부지되었던 경험이 내게도 있다. 나는 구독자를 모집해서 누군가는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마음을 동력으로 삼았다. 약속을 어기는 걸 지독히 싫어하는 내 성향에는 매주 화요일 뉴스레터 발행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는 각오가 큰 힘이 되었다. 시간이 없으면 뭐라도 써서 보냈다. 하기 싫어도 울면서 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런 습관이 몸에 붙기까지는 최소 2~3년이 걸렸다.
글은 그나마 쓰기 실어도 어떻게든 화면을 노려보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으면 뭐라도 쓰게 된다. 나는 마음이 힘들 때, 기쁠 때, 누군가 미울 때, 복잡한 심경을 어찌할 줄 모를 때 일기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어제를 돌아보며 찬찬히 일기를 쓰고, 바빠서 일기가 밀렸을 때도 그날 한 일을 간단하게 몇 줄이라도 적는 하루를 10년 가까이 살았다. 책을 위한 글쓰기는 일기와 다르지만 일단 첫 문장이 시작되면 어떻게든 글은 흘러간다. 지금 종이만 보면 막막한 사람이 뭐라도 쓸 수 있는 사람, 어떻게든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냐고요? 당연하죠. 됩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지 그림 그리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고마운 친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약속을 지키고 싶은 마음, 친구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동력 삼아 매주 숙제 검사를 받는데 처음 3개월은 너무 하기 싫어서 울면서 숙제를 그렸다. 다음 3개월은 두렵지만 울지 않고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6개월이 지났을 때야 비로소 아무 생각 없이 우선 쓰소의 마음으로 그냥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3개월쯤 흐른 지금은 재미있는 걸 스스로 찾아 어려운 것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기 싫어도 그냥 하는 시간이 6개월 이상 쌓이면 어떻게든 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 같다. 내 경험이 모두에게 적용되진 않을 수 있지만 마감을 지키는 것도 훈련과 연습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함께 할 좋은 동료, 믿고 따를 이끔이는 필수.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어떻게 하나요?
어떻게든 쓴 글과 완성한 그림이 마음에 드는 일은 여간해선 생기지 않는다. 공들여 만든 결과물이라고 늘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지 않을까?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하는 수밖에. 끝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되는 게 더 빠를 것도 같다. 다음에 더 잘하지 뭐,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다면. 중요한 건 그냥 또 하는 것. 그래도 책으로 만들어서 손에 쥐면 그나마 낫더라고요. 우선 쓰세요. 초고를 완성하세요. 뒷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세요.
조금 더 쉽게 쓰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일단 쓰려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잠깐 이메일 확인하고, SNS 둘러보고, 꼭 지금 당장 보내야 할 것 같은 문자가 생각난다.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것 잠깐 결제만 할까. 노동요 좀 골라볼까. 이러다 보면 훌쩍 한 시간이 간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작업 모드로 진입해야 하는데 사람마다 먹히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준비하는 마음을 다잡아 책상에 앉는다거나, 앉기 전에 노트에 오늘의 작업 계획이나 시간을 적는 식으로 자기만의 시작 의식을 행하는 사람도 있다. 좋아하는 책의 한 페이지 정도를 타이핑하면서 읽고 쓰는 글의 세계로 진입하기도 한다. 작업 공간과 휴식 공간을 분리하라, 작업 시간 40분에 쉬는 시간 20분을 지키면서 떠오르는 딴짓을 적어뒀다가 쉬는 시간에 하라는 프리랜서 선배님들의 훌륭한 말씀이 많다. 이 부분은 여전히 어려워서 아직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저 앉아서 어떻게든 쓰려고 노력할 뿐이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무조건 원고를 써야 하는 프로그램을 켜고 빈 화면을 응시한다. 제목을 적거나 쓰고 싶은 내용에 대해 글이 되지 않은 상태의 단어로, 어절로, 아무렇게나 적어본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이더라도 적어나간다. 계속 계속. 다음 문장을 채운다. 쉬운 방법을 찾기 못했으므로 어렵지만 어떻게든 쓴다.
도저히 도저히 쓸 수 없을 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밥을 지어 먹고 밖에 나가 조금 걷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아 어떻게든 쓰기 위해 힘겹게 힘겹게 단어와 문장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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