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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Aug 27. 2024

컨셉 : 어떤 책으로 만들까


내용에 맞는 책의 꼴이 정해져 있나요?


꼭 그렇게 하라는 법은 없지만 서점에 나와 있는 책을 보면 어느 정도 분류는 된다.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중고등 교과서나 대학 교재, 사진집이나 도록, 소설책이나 시집의 크기는 다르다. 표지의 스타일, 본문의 구성도 다르다. 무엇이 다른지 설명할 순 없겠지만 글만 있는 책이라도 생각과 경험을 쓴 에세이와 재테크를 위한 자기개발서, 철학이나 사회과학을 다루는 인문서의 느낌은 다르다.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가면 이미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지금껏 봐온 경험 안에서 주로 상상할 테니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은 내가 봐 온 책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대로 만들어도 된다. 다만 원하는 게 뭔지 알기 어려울 수는 있다. 책의 크기뿐 아니라 표지와 본문 색감, 글자의 크기와 형태, 배치 등 모든 것이 디자인 요소로서 책의 느낌을 결정한다. 정해진 법은 없지만 내용에 어울리는 디자인, 지금까지 많이 봐온 익숙한 느낌, 뭔지 모르지만 이 디자인보다는 저 디자인이 어울리는 것 같은 촉이 있을 것이다. 모르겠으면 적당히 결정한다. 내가 쓰고자 하는 내용과 비슷한 책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비슷하게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자. 너무 베끼면 창작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똑같이 하려고 노력해도 꼭 같은 모습으로는 못할 것이다.



책 크기(판형) 정하기


주로 읽는 에세이나 소설의 판형은 거기서 거기처럼 보였다. 아주 작은 문고본이나 큰 글자 책을 제외하고는 가로와 세로가 몇 센티미터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 디자인 전문가라면 그 작은 차이가 미묘하게 책의 느낌을 달리 만드는 걸 알겠지만 비전문가이자 초보자인 우리는 적당히 평소에 많이 본 판형,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 판형, 왠지 마음에 드는 책의 판형을 따라 결정하자. 우선 판형을 정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앗, 판형이랑 책의 크기다. 가로*세로 형식으로 밀리미터로 표시한다. <소탐대전>은 127*188이다.


몇 년 전에 전자책으로만 나왔던 <나 혼자 발리>를 편집해서 종이책으로 만들었다. 개인 소장용으로 딱 한 권만 뽑았는데 <소탐대전>과 나란히 세워두면 귀여울 것 같아서 크기를 맞췄다. 맨 처음 어쩌다 그렇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나고 봐도 괜찮아서 그대로 가기로 했다. 가로나 세로가 특별히 긴 판형은 아니고 무난한 형태였다. 

<오늘 또 미가옥>은 이미 나와 있는 음식 에세이의 판형을 따라 만들었다. 출판사 투고용으로 그 시리즈의 일부처럼 만들어서 보낼 목적으로 책을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의도했든 우연이었든 이렇게 연필농부에는  두 종류의 판형이 생겼다. 앞으로 여행기나 지역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소탐대전>의 판형과 같게, 특정한 주제를 다룬 책은 <오늘 또 미가옥>처럼 만들어 시리즈로 구성할 생각이다. 지금 쓰는 <속속들이 독립출판>은 책에 대한 사랑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이니 음식에 대한 사랑을 썼던 <오늘 또 미가옥>과 결이 같다. 혹시 전혀 성격이 다른 책을 기획하고 다른 판형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아서 더 어렵지 이렇게 하고 싶다, 저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아주아주 반가운 일. 그게 아니라면 무난하게 정해놓은 판형을 따라 내가 만든 책에 통일성을 주어도 좋다.


표지와 본문의 느낌 상상하기


막상 내가 직접 책을 다 만든다고 하니 표지부터 사진이나 그림을 넣을지, 도형과 색으로 단순하지만 추상적인 디자인을 할지, 글자만 넣을지 막막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책을 다 만들어주는 저자로서 참여할 때는 본문 원고만 열심히 쓰면 본문 디자인은 확정된 시안을 확인하는 정도로, 표지는 시안 두어 개 중에서 의견을 말하는 정도로만 참여했다. 막연히 편집자의 교정 작업이 끝날 즈음 표지 디자인 작업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이자 편집자이자 디자이너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독립출판 제작자는 어차피 나중에 하든 먼저 하든 자기가 해야 한다. 책의 꼴을 상상할 때부터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 작업한다. 처음엔 부담스럽겠지만 표지와 내지 디자인을 동시에 떠올리며 작업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한다. 모든 걸 내 마음대로! 시도 때도 없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그보다 더 앞서가면 원고를 쓰면서 표지나 본문의 모습을 그려보며 어떤 책으로 만들지 상상한다. 내 이름으로 만든 책을 간절히 원해서 특별히 책에 원하는 느낌이나 분위기가 있을 때면 이 상상의 순간이 신날 것이다. 마음껏 상상하고 구현시킬 방법을 궁리해 본다. 역시 이번에도 별생각이 없다면 닮고 싶은 책을 정하고 좋은 요소를 가져온다. 표지를 디자인한 방식, 색의 분포, 본문의 여백, 한 쪽에 들어가는 줄과 글자의 수 등.  많이 보면 어렴풋이 자기 취향을 알게 된다.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을 때는 그냥 잘 팔리는 책, 재미있게 읽은 책, 좋아하는 책을 길잡이로 삼고 비슷하게 만들자. 모방은 창조의 첫걸음이다. 너무 똑같이 만들어서 창작자에게 실례가 될 정도로는 말고. 그 정도 실력이라면 자기만의 디자인을 충분히 할 수 있을 테니 본인의 개성을 살린 작업을 어서 시작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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