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마우스북페어 일정이 말일과 겹쳐서 월말정산이 늦었다.
집에 돌아온 후로도 체력이 뚝 떨어져서 쓰러져 잠들기를 며칠, 겨우 정신을 차리나 싶었는데 갑자기 사탕 먹다가 이빨이 깨지지를 않나, 별안간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질 않나,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기가 이렇게 힘들다.
더는 밀리면 안될 것 같아 오늘은 집밖으로 나왔다. 아직 책상 위에는 정리되지 않은 종이뭉치가 쌓여있고, 베란다가 추울까봐 방으로 들여놓은 빨래 건조대에 옷가지가 걸려있어 심난하여서. 밀린 일기라도 쓰려고, 밀린 11월의 월말 정산을 오늘은 꼭 하려고 좋은 곳으로 출근했다.
친구가 집 근처에 기가 막힌 공유오피스를 찾아내어 소개해주었다. 개관한 지 두 달남짓 되었다. 아직 이용자가 많지 않아 쾌적한 분위기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 앞으로 종종 찾아올 듯하다.
연말이라 애인이 많이 바빠서 힘듦을 토로하는데 공감, 위로, 격려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이를 위로하는 법’ ‘위로의 말들’ 같은 책을 읽거나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11월부터 문화센터 다니는 기분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자수와 도자기 수업을 받는다. 수요일엔 무시래기그림회, 금요일엔 필라테스로 주 4회 일정이 가득 찬다. 12월엔 슬슬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계획하면서 보내려고 한다. 이미 일정이 가득차 느슨하게 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기운이 떨어지기도 하고, 조금 올라오기도 하는데 그나마 좀 괜찮다는 신호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빨라지는 거랑, 끼니를 잘 챙겨먹는 것이다. 그래서 기상시간 일지를 표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2월부터 제대로 해야지 하고 11월 말쯤 생각했는데 벌써 달이 바뀌어버렸다.
식사 일지는 종종 쓰다가 말았는데 다른 작업을 할 기운이 없다면 좋아하는 일, 그나마 하기 쉬운 일로 표를 그리면서 작업을 해볼까? <먹는 데 진심>이라는 브런치스토리 카테고리가 있으니까 신경써서 먹은 식사에 대해 사진, 그림, 글로 기록하면 좋겠다.
10월에 휘리릭 정리해서 <속속들이 독립출판>과 <표의 세계>를 상상마당 독립출판과 브런치북 공모에 냈다. 전자는 미선정이고 후자는 아직 발표 전인데 선정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그 두 원고의 앞날도 정해야 한다. 쉬고 있는 팟캐스트도 그렇고…
- <소탐대전>연재 재시작
- <속속들이 독립출판> 연재 재시작 및 출간 계획
- 팟캐스트 <어쩌라고> 재시작
- <표의 세계> 원고 완성 및 출간 계획
‘연필농부’ 이름으로 책을 만들고 판매하고 북페어에 나간 경험도 정리해 보고 싶은데, 그래야 앞으로 작가 혹은 출판인으로서의 나의 입장이 정해진 것 같다.
글을 쓴다. 책을 만든다. 책을 판다.
책을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계속 할 건가. 어땠나.
적성은 아닌 거 같다. 적성에 맞는 일만 할 건가. 아직 모르지 않나. 한 번 해보고 만다는 건가.
12월은 연필농부 연간활동 평가와 향후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뭔가 엉킨 실타래처럼 생각하고 결정할 일이 많은 것 같다. 확인하기 어려운 불안덩어리가 가득 내 앞을 막고 있는데, 뭐 어쩌겠나. 하나씩 풀고 들여다보면서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내야지.
11월의 회고
지쳐서 기운 없는 한 달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적당히 좋았고 아주 좋은 날도 몇 번 있었다.
애인과 멀리 전시를 보러 가고, 북페어를 준비하면서 책을 만들 때 재미있었다. 어떤 문제 앞에서 할 수 있는 걸 뭐라도 할 때 스스로 제법 괜찮다고 느낀다.
대전과 부산 북페어에 나갈 때 들고갈 작은 책 <나의 살던 시골은>을 후딱 만들었다. 3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가볍게 독자를 만나고 싶었다. 북페어는 많이 피곤했고 예상치 못한 기쁜 만남에 조금 행복했다.
대전 북페어는 참가사들 사이에 말이 많았다. 운영팀의 미숙한 운영과 무례함에 많이들 화가 났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의견을 모아 두었다.
https://padlet.com/slowbadac/padlet-4ueus7gk971ar0or
출판워크숍에서 인디자인 실습 수업을 2차례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