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껏 공들인 의존 출판

<리모트 페이런팅> 제작 후기

by badac

독립출판은 원하는 모습으로 책을 만드는 것이다. 원고 방향이나 디자인 컨셉에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만들고 싶은 책에 가까워지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충분한 여력이 있다면 원하는 걸 대충 말하고, 최고의 전문가가 찰떡 같이 알아 듣고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줄 지도 모르겠다. 그런 행운을 누구나 누릴 순 없으니 많은 제작자는 귀여운 예산과 능력으로 편집과 디자인을 직접 하곤 한다. 서툴지만 개성 넘치는 그 ‘직접성’이 독립출판의 매력이자 핵심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독립출판이라도 모든 걸 직접 할 수는 없다. <소탐대전> 표지를 디자인할 때 어찌나 마음 고생이 심했던지 <속속들이 독립출판 알고 보니 의존출판> 표지는 직접 하지 않았다. 혼자 다 하려고 하다가 그 부담감에 짓눌려 시작도 못하거나 기껏 작업을 해놓고도 불안해할 바에야 믿을만한 이에게 의뢰하기로 했다. 표지 디자인뿐이랴 원고를 읽고 의견을 주고, 인디자인 사용법을 일러주고, 그림을 그리도록 독려해준 친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책은 결코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지만 결국 ‘의존’이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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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서로 의존하는 독립 출판에 또 한 번 도전해볼 기회가 생겼다.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인 염주희 작가는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달라진 양육의 형태와 그에 적응하며 함께 성장하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썼다. 이 책은 사적이고도 구체적인 가정사지만 누구네 집에나 있을 법한 자녀와의 에피소드다. 평범한 날들에서 저자는 단단한 인생의 진리, 관계의 질서를 발견했다. 따라서 이 책은 소박하면서도 위엄있어야 했고, 세심하고 다정하면서 곧고 바른 저자의 성격과 문체를 드러내야 했다.


초고를 쓰고 책 만들기를 결심한 순간부터 저자는 ‘한 손에 들어오는 길쭉한 판형에 표지는 하드커버’로 책을 만들기로 했다. 예상 독자의 연령층을 감안하여 글자 크기는 너무 작지 않게,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내지 디자인은 무난하게 했다. 책은 기숙사나 군대로 떠나 보낸 아들들을 여전히 멀리서 양육한다는 내용으로 저자는 오랜만에 집에 온 자녀와 대화하면서 놀라고, 놀라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가고, 대화를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서 본문에는 대화체가 많고 각 글의 제목은 모두 아이들의 입말이다. 밝은 회색 배경 표지는 단정하면서 세련된 저자의 문체를 닮았다. 떨어져 있지만 아주 떠나지는 않은 사이, 양팔을 벌리고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는 이의 모습도 연상된다.


온 힘을 다해 원고를 읽고, 함께 검토하고,

꾸민듯 안 꾸민듯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옷을 입히고,

실밥이 터진 곳은 없는지, 바느질이 가지런히 잘 되었는지 여러 번 살피면서,

좋은 재료를 시간과 정성을 들여 요리한 음식이 점점 더 맛있어지는 것처럼

좋은 글감과 사유로 글을 쓰고, 집중해서 읽고 고치고, 나은 만듦새를 위해 기꺼이 의존하면

점점 아름다운 책이 된다. 읽기에, 보기에, 마음에 모두 아름다운 책.

봄이 오는 길목에서 그런 아름다운 책을 함께 만들었다.


염주희 작가님, 출간을 축하합니다.

함께 의존할 수 있어서 참말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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