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습관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첫 책을 2015년에 출간했으니 작가가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당시에는 직장에 다니는 중이었고, 아직 내가 작가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그래도 예술인등록은 야무지게 받았다. 퇴사 후 창작지원금(창작준비금, 창작디딤돌 등 여러 사업명을 거쳐 2026년에는 예술활동준비금으로 명칭이 바뀌었다)을 받고 2017년에 두 번째 책을 썼다. 격년에 한 번 책을 내겠다는 목표는 운 좋은 출간 계약으로 이뤄질듯도 하였으나 다시 취업하게 되면서 미뤄졌다. 2021년, 어쩌면 다시는 임금노동자로 살지 못할 것 같다고 예상하면서 드디어 ‘진짜’ 작가 혹은 프리랜서가 되어버렸다. 힘들게 힘들게 고쳐쓴 원고로 세 번째 책을 내고, 알음 알음 제안 받은 집필 노동, 기획과 편집 일을 하며 6년차 프리랜서 작가로 산다. 2024년부터는 연필농부라는 이름으로 독립출판도 한다.
어젯밤 2025년 ‘연필농부 사업 결과 보고서’를 다 썼다고 포스팅하면서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5년동안의 활력그래프를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전에 2011년부터 2020까지 10년 동안의 활력그래프를 그린 적이 있고, 그뒤로도 꾸준히 마음날씨를 기록해왔으니 하기만 하면 됐다.
(표를 그릴 생각에 너무 설레서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는 주로 봄부터 여름까지 기운이 없고 우울했던 것 같은데,
2021년부터는 겨울이 힘들다. 본격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서인 듯하다. 날씨 탓도 있을 테고.
3월까지 괴로웠다가 봄이 되면서 서서히 괜찮아진다. 한 해를 열심히 살고 나면 11월부터 다시 기력이 없어진다.
2022년에 대전에 이사오고, 적응하고, 계속 글을 쓰고...
2024년에는 확실히 기운이 넘쳤다. 이사온 대전에 적응도 끝나가겠다. 연애도 시작했겠다. 처음으로 책을 만들고, 팟캐스트를 하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새로운 생활을 만들었다.
2019년부터 꾸준히 해온 상담 덕에 별일 없는 날을 감사하게 여기고, 괴로운 날도 덜 힘들게 느끼는 안전감 덕분이기도 했다.
활력그래프는 마음날씨표를 바탕으로 정확한 수치를 입력해서 평균을 내면 다를 수도 있는데,
(붙잡고 하면 가능은 할듯, AI가 쉽게 해줄 수 있으려나)
대충 보고 전체와 비교했을 때 이 정도라고 생각한 지점으로 점수를 매겼다.
나는 2019년부터 매월 마음날씨표를 그린다.
일기는 여기 저기 쓰다말다 하다가 2019년 9월 1일부터 거의 매일 쓴다. 일기장 표지에는 날짜를 쓰고, 책등에는 번호를 붙여 책장 맨 아랫칸에 모아두었다. 가끔 들춰본다.
국민학교 때부터 썼던 일기와 편지는 대학생 때 살던 반지하 자췻방에 수도가 터져서 물에 잠겼다. 물에 젖은 그 잔해를 1~2년 끌어안고 있다가 큰맘 먹고 버린 기억이 난다. 가지고 있어봐자 읽을 수가 없었으니까. 누가 준 거였지...하면서 추억에 젖을 순 있었는데. 그뒤로는 여행다닐때만 한 권씩 여행일기를 썼다.
배낭여행으로 맨 처음 미국으로 해외여행 갔을 때, 중국 연변에 교육 봉사 갔을 때, 국내외 여행 다닐 때 일기 많이 썼다. 직장 선배님들이랑 멕시코도 가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도 갔었지. 아... 까마아아아아아득한 옛날이다. 여행사 가이드로 일할 때 네팔 담당이어서 카투만두에서 수첩 사서 거기에 일기도 썼고.
2011년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할 때는 아이패드랑 키보드 들고 다니면서 매일 타이핑해서 일기 썼다.
2011년 연말에 회사 그만두고 제주, 부산, 대전 등등 돌아다니다가 발리까지 가고.
2013~2014년 일기부터 좀 본격적으로 쌓아기 시작했다.
블로그도 그나마 2011년 부터 쌓일랑 말랑.
2015년 9월 21일에 브런치에 첫 글을 쓰면서 드디어 온라인에 내집 비슷한 걸 마련하고 정착하게 되었다. 시작할 때는 이번에는 오래가려나, 제발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10년 가까이 지금까지 쓴 글을 모아둘 수 있어 다행이다. 그전에는 다음, 네이버, 티스토리, 이글루스, 텀블러, 워드프레스 블로그를 전전하며 띄엄띄엄 글을 썼다. 물론 싸이월드에도 썼다.
독서기록도 일기장, 노트, 웹페이지 여기저기 기록해보다가 2020년부터 노션 페이지에 적었더니 벌써 5년이 됐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배껴쓰거나 타이핑해서 노션페이지에 저장해두거나 여기저기 흩어두었다가 어제부터! 파일 하나로 정리해볼까 싶다. 읽은 책을 적어두는 습관을 만드는 데 5년 걸렸다. 이제 내용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천천히 만들어보자. 5년 보다는 덜 걸리길 바라면서.
가계부도 2015년 10월부터 꾸준히 쓴다. 지출 관리를 전혀 안 한 건 아니지만 다이어리에 메모하고 그 해가 지나면 버리는 식이었다. 월급 받는 생활도 하다 말다, 가계부 기록도 하다 말다, 일기도 쓰다 말다, 나는 늘 하다 마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엔 쌓이고 있다. 습관 들이는 데 그만큼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2016년 데이터부터 정리되어 있지만, 본격 프리랜서가 된 2021년부터 5년동안의 월평균 수입과 지출을 먼저 보기로 한다.
음. 2021년 수입이 높은 건 퇴직금을 받아서일테고, 2022년 지출이 평균보다 웃도는 건 대전으로 이사했기 때문일 터. 지출 규모는 늘 비슷비슷하다. 일이 언제 들어오고 돈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월별 수입과 지출을 보는 게 더 중요하겠지? 이것도 매해 다르겠지만 경향성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2021년 돈 많이 벌었네? 연초에는 퇴직금, 상반기에는 실업(구직)급여, 8월에는 외주 알바를 두 건이나 했더랬다. 그리고 본격 프리랜서가 된 뒤로는 비슷비슷. 연차가 쌓일수록 좀 늘어나는 것도 같고... 지출은 꾸준히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 100만원으로도 충분히 산다고 했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120~150만원에서 자동차보험료나 수리비, 필라테스 결제하는 달에는 지출이 훅 뛴다. 하반기에 벌어서 상반기까지 산다. 월별 수입이 거의 없는 달도 있는데 3월에서 5월사이가 보통 그렇다. 어차피 프리랜서라 월별 소득이 연간 꼭 그렇게 돌아갈 리는 없지만 경향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또 그래프를 그려본다.
오. 내가 보고 싶은 게 이런 거였다. 역시... 2025년에는 4월에돈을 제일 못 벌었다. 2024년에는 2월에 제일 못 벌었고 2023년에는 3월에 제일 못 벌었다. (30만 원 수준) 연초에 일이 없으면 6월이 되기 전까지 수입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물론 6월 이후에도 수입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 2022년에는 이사 준비하느라 3~5월 수입이 전무다. 그래도 대전으로 온 지 4년 되어가니 조금씩 벌이가 늘어나는 것 같다. 이걸 안다고 상반기 불안이 덜해질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그냥 모르는 채 막막하게 있는 것 보다 낫더라. 그래도 6월이면 조금 나아질거라는, 여름되고 가을 되면 살만해질 거라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12월 수익을 1~2월에 들어온 것처럼 가계부에 적기만 해도 마음이 조금 나았다.
올해도 3월과 4월에 딱히 수입이 없을 예정이긴 한데, 뭐 어떻게 되겠지.
일기장 사진 찍느라 뒤적거리다가 일기장에 붙어 있던 옛날 사진이 너무나도 싱그러워서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