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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양이, 우리 고양이, 네 고양이

가지와나_002_반성 또 반성, 그리고 사랑.

by badac

인간 아가가 예방접종을 맞듯 고양이 아가도 기본 3번은 예방접종을 맞는다고 한다. 엊그제는 가지의 3차 접종일이었다. 우리 가지는 고양이치고는 흔치 않게 가슴줄 매고 산책도 나가고 자동차에 타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편이라 나는 종종 가지를 차에 태운다. 고산처럼 가까운 데를 가거나 인간 동승자가 있을 때는 이동장에 넣지 않는다. 가지는 얌전히 내 무릎에 앉아있거나 자동차 안을 여기저기 탐색하다가 동승자의 무릎에 앉아 간다. 병원에 갈 때는 주로 나 혼자 가는데 20분 이상이니 들어가기 싫어해도 이동장에 넣어야 한다. 애옹애옹 꺼내달라는 소리를 들으며 가곤 했지만 이번엔 무슨 생각인지 그냥 ‘쌩으로’ 태워갔다. 대시보드에 인형처럼 앉아서 잘 다녀왔는데 아무래도 잘못한 것 같다. 다행히 아무일도 없었을 뿐이지 만에 하나 운전석으로 뛰어든다거나 하는 돌발행동을 하면 백퍼센트 사고다. 내가 보기에 귀엽다고, 우리 고양이는 특별해서 안전하다고, 우리 개는 안 문다고, 술은 마셨지만 취하지는 않는다고, 잠깐이니까 괜찮을거라고 하는 생각이 결국 큰 불행을 가져오지 않던가. 반성한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한 사건이 하나 더 있다. ‘여성들을 위한 2박 3일 기술워크숍’을 진행하려면 집을 비워야하고, 그러면 고양이가 혼자 있어야 하고, 나는 고양이가 혼자 있는 꼴을 아직 볼 수 없는 지극 정성의 집사람이고, 그래서 새벽같이 고양이를 데리고 행사장으로 갔다. 고양이 화장실, 밥그릇, 물그릇을 바리바리 챙겨서. 미리 공지하지 않았지만 참가자들은 다들 가지를 예뻐해주었다. 스태프 숙소에서 같이 자고, 현장 실습처럼 (고양이에게) 위험한 곳에는 데려가지 않았지만 실내 프로그램을 할 때는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두었다. 행사 끝난 평가 설문지에도 고양이 덕분에 더 분위기가 좋았다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참가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소수자를 배려하겠다는 취지로 식성, 알러지여부, 장애여부를 묻는다면서 고양이 알러지를 생각못했던 거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게스트가 고양이 알러지 때문에 2주 이상을 고생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들었다. 아 이렇게, 사랑에 눈 먼 대상 때문에 사리분별이 흐려질 수 있겠구나. 운이 좋게도 참가자 중에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거나,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병원에 가는 길에 운 좋게 가지가 얌전히 앉아있었던 것처럼. 음주 운전을 했지만 운좋게 도로에 차가 없었고, 경찰 단속에 걸리지 않은 것처럼. 반성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스개로 이런 말을 한다. ‘네 (인간) 자식은 너나 귀엽지. 나는 관심없다. 하지만 네 고양이는 내가 봐도 정말 귀엽구나’ 그렇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기본 전제가 없는 불특정다수에게는 내 고양이 사랑은 앞서 말하는 유난한 남의 자식 사랑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인간 아기를 사랑하는 성인들도 얼마나 많은가. 나는 유난한 고양이 집사였던 것이다. 주변에 다들 유난한 고양이 집사만 있어서 비(非)집사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반성한다.


일하는 카페에서는 공동대표와 전에 일하셨던 한 분이 팀으로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챙겨준다. 가끔 내가 밥을 (그분들이 채워놓은 밥통에서 꺼내) 주기도 한다. 그들은 음식 쓰레기를 뒤지며 연명하는 녀석들이 안쓰러워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하루 한 번 최소한의 사료를 내준다. 녀석들은 우리의 고양이다. 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사랑을 표현하면 된다. 남에게 강요하거나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행동하되, 지나친 혐오나 공격을 막아내면서.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내 고양이지만 공공장소에 데려가거나 불특정다수와 만날 때는 더 신중하게 따질 게 많다는 걸 배웠다. 누군가에게는 네 고양이일뿐이니까. 의도치 않더라도 우리를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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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는 병원에서 받아온 피부병 약을 하루에 한 알씩 먹고 있는데, 아니 내가 무릎꿇고 앉아서 먹이고 있는데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아름답고 소중한 가방에 스크래치를 냈다. 아! 그래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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