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가 말하는 청소년 페미니즘 <걸 페미니즘> (양지혜 외 지음)
아무래도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나 소속을 설명하며 자기를 소개하게 된다. 어디에 사는 몇 살 누구라고 소개하는 자리는 줄어드는 편이지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무슨 일을 하는지는 궁금해한다. 나는 하루 서너 시간 카페에서 일하고, 친구들과 재미로 팟캐스트를 만들고, 글 쓰고 강연도 한다. 일은 나를 설명하는 말인 동시에 자아를 실현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며 생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활동이라 학교를 졸업한지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진로를 고민한다.
‘뭘 해서 먹고 살까’라는 질문 앞에서 이것저것 고민하고 시도해보는데 올해는 ‘성희롱, 성폭력 예방 강사’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작년에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사’에 도전하여 국가자격을 취득했다. 실제 강사가 되기보다 ‘강사 양성 과정’을 수강하는 걸 더 좋아하는 거 같기는 하지만...
자주 만나는 동네의 비청소년들(성인들)은 자녀들을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이 오늘을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다양한 활동을 한다. 청소년의 인권을 존중하고 잘못된 성별 고정관점을 벗어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성교육과 성평등에도 관심이 많다. 좋은 강사가 되어 청소년들, 비청소년들과 여성주의를 같이 공부할 수 있다면 재미있을 거 같다. 성평등을 이해하고, 성희롱과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수업을 할 자격도 실력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도 없지만 강사가 된다면 청소년이나 교사, 학부모 대상의 교육이 가능할 터다. 그런데 나는 청소년 당사자들과 직접 만나는 일이 적어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역시 이번에도 책을 들었다. 지난달에는 운동을 책으로 배울 기세더니 이번엔 청소년들의 마음을 책으로 알아볼 참이다.
물론 <걸 페미니즘>의 청소년 저자들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며 청소년 인권,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계속해온 사람들이다. 이 책이 ‘일반’ 청소년들이 아니라 ‘특별한 일부’ 청소년들의 사례이 않을까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얘들은 아직 어려서 뭘 몰라’라고 생각하기 쉬운 비청소년의 고정관념을 깨기에는 적절해 보인다. 또한 누구를 ‘일반’ 청소년으로 볼 것인가도 쉽지 않은 문제다. 어짜피 ‘일반’이란 허상에 가까운 개념이지 않을까. 많은 청소년들이 인권이나 성평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고 한들, 이 책의 저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청소년 사회의 현실을 해석해낸 결과물이 의미 없지는 않다. 청소년들이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안 했는지 말 안 해주면 알 수도 없을뿐더러 비청소년들이라고 이러한 이슈에 대한 인식이 ‘일반’적으로 딱히 다를 것도 없지 않나. 복잡하게 말을 했지만 비청소년이 청소년사회를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강조다.
청소년들은 신체와 복장의 자유를 제한 받고, 욕망을 제지당한다. 특히 여성 청소년의 경우에는 행동과 용모를 성차별적으로 규정하고 농담으로 성희롱이 소비되는 등 더한 상황에 처해 있다. 청소년 저자들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 노동자로서 받았던 부당한 대우와 성폭력의 경험, 여성혐오적 남성 문화를 고발하고 성찰하며, 대상화되는 아이돌 문화, 성소수자로 살아가기, 데이트 성폭력, 성매매와 임신중절까지 아우른다.
예쁘고 착하기만한 아이가, 하루 종일 말도 안 섞고 게임만 하는 아이가, 순진하게 귀여운 연애만 했으면 좋겠는 아이가, 사실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며 지내는지 다 알 수는 없다. 꼭 다 알 필요는 없지만 혹시 인권을 침해받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는지, 누군가를 억압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비청소년이 그런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해결해야 하겠지.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함께, 동등한 인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