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지만 하고 나면 결국 좋은 것이 있지.

저기력시기를 지나는 법

by badac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널 자리가 없어서 급하게 마른 빨래를 걷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뒀다. 2주전에. 도서관이 휴관하기 전 대출한 책들도 그대로 쌓여있다. 한 달이 넘었다. 치료제가 없는 전염병은 사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의 불안과 우울도 쉽게 지나갈 것 같지 않다.


4월이 되면 지금처럼 불안정하게 살지는 않겠다 다짐했지만 3월이 다 지나가도록 기력은 차오르지 않았다. 결국 책상을 치우지 못하고 4월의 아침을 맞이했다. 같이 사는 고양이 가지는 오늘 새벽에도 나를 깨웠다. 밥을 달라는 건지 놀자는 건지 인간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가지의 마음을 확인할 수 없지만 보통 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밥을 조금 준다. 5시 쯤이었나, 일어나기가 너무 싫어서 모른 척하고 뒤척이다가 6시가 되었다. 그리고 3월 중순부터 해오던 결심을 떠올렸다.


'4월이 되면, 가지가 깨우는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에 글을 써야지. 붙잡고 들여다보고 생각이란 걸 좀 해야지. 억지로라도 기력을 끌어올려봐야지'


책상을 생각하면 한숨이 난다. 베를린 브레이트의 집에는 책상이 집안 구석구석 8개 이상이라고 한다. 멋있는 건 따라하고 싶어서 큰 방에만 크고 작은 책상을 세 개 두었는데 주로 작업용으로 쓰려는 가장 큰 책상에 빨래와 각종 잡동사니가 가득하다. 가지는 계속 이불을 긁는다. 저걸 언제 다 치우냐, 빨래 개기 싫다. 책 꽂으려면 책장도 치워야 하는데. 할일이 태산이네. 하기 싫은 마음 90과 그래도 일어나보자는 마음이 10. 지겹고 괴로웠던 2월과 3월처럼 4월에도 똑같이 지내고 싶진 않다. 일단, 책상 위를 비우는 것만 하자.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바로 벌떡 일어서진 못했다. 10분 정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있었다. 다시 눕고 싶은 마음 70과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힘내보자는 마음 30. 드디어 일어섰다. (아 기억은 역시 사실을 왜곡한다.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똥마려워서다. 참을 수 없었다) 가지 밥통에 밥을 부어주고 책상 위의 빨래를 그대로 들어 다른 책상으로 옮겼다. 책들은 책장 앞 어지럽게 놓인 책무더기 위에 그냥 놓았다. 일단 책상부터 비우고 다시 힘을 내서 내일이나 모레 빨래도 개고 책도 치우자. 시작은 책상을 비우고 책상 앞에 앉는 거다.


성공.

책상 앞에 앉으니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다. 커피를 내리고 사과를 깎고 식빵을 구워 야무지게 아침을 먹었다. 7시였다. 5장 넘게 일기를 썼다. 일어나길 잘했다.


하기 싫지만 하고 나면 결국 좋은 것이 있지. 등산이랄지, 청소랄지, 달리기랄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그렇다.

별다른 내용없는 일기라도 수년째 빼먹지 않고 쓰는 습관을 길러놓은 것도 장하다.


4월에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글쓰는 힘도 길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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