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짓이 아니란 건 알지만

분노 표현하기

by badac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오면 우울해지는 편이다. 기력이 넘쳐서 무리한 일정을 괜찮다고 소화해대던 시기가 지나가면 급격히 의욕이 저하된다. 세상만사 다 귀찮고 의미없고 하기 싫다.


회사가 싫어진 건 계절탓만은 아니다. 원래 회사란 다니기 싫은 곳이라며 유머로 소비하고 싶지는 않은데 다니던 회사마다 사람 귀한 줄을 모르고, 시대가 변해가는 것도 인정하려고 들지 않고, 자기 생각만이 여전히 옳다고 믿고,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않는 불의를 행하는 무능한 상사들이 길을 막고 있는 느낌이다. 사회란, 조직이란 어느정도 문제적인게 기본이고, 서로의 입장은 다 다르고, 갈등은 언제나 존재하고, 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인정한다. 그렇지만 입장의 차이가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하고, 그 위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무지를 휘두르는 현장에서 점점 메말라가는 나와 동료를 발견할 때면 참담하고 처참해서 무력해진다. 한 줌의 용기를 다 끌어모아 문제를 제기하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다가도 벽에 부딪히며 타격이 너무 크다.


나는 일을 하고 싶고 좋아하고 계속 하고 싶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책을 읽는다. 제목에 일이 들어가는 책을 모조리 찾아본다. <출근길의 주문> <일하는 마음>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 <여성의 일 새로 고침> <일의 기쁨과 슬픔>


도저히 안 되겠다. 여기까지가 끝이다. 정말 할만큼 했지만 더 이상은 견딜수 없다, 고 느껴지면 어쩔 수 없이 사직을 해야겠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제법 멧집이 생겨서 아직 이 정도에서 못해먹겠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기도 하다. 일의 기쁨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비참할 정도로 나의 존엄을 해치면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까지는 아직 안 드니 적당히 더 버텨보자싶다.


10년 전쯤 다니던 회사에 말도 안하고 출근 안 한 적이 있었다. 동료가 걱정하며 전화를 계속 했다. 당시의 나는 회사가 너무 싫고 곧 그만둘거긴 한데 당장 맡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나몰라라 할 수는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 때문에 너무 괴로웠던 것 같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연락도 되지 않고 주변인들을 걱정시키는 무책임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꽤 들어본 적 있었고 그게 얼마나 별로인줄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하루인지 반나절인지 잠수를 타고야 말았다. 내 불안함과 회사에 대한 분노를 누구를 향해 표현해야 할줄 몰라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회사에 대한 분노는 어쨌거나 결정권을 가진자, 영향력을 가진자, 조직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리더를 향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렇게 했다. 잘한 짓이 아니었을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만 할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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