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작은 행복들을 찾아서
상담을 다닌 지는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멀고 먼 길, 귀찮고 피곤하지만 생활의 일부로 포함시켜 놓았다. 돈과 시간을 들이는 일이고 드라마틱하게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냥 가고 싶고 가야할 것 같다.
아침마다 가기 싫어도 월급 생각하며 회사에 가는 것처럼 가봤자 뭐 뾰족한 수가 있겠어 생각하지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땐 한번 해보는 편이니까. 그리고 굉장히 좋았던 경험들이 있으니까.
어떤 순간들을 믿고 기다리는 심정으로.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덤덤해진 것도 덕분인가 싶기도 하고.
어젯밤은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금요일에 제법 큰 일이 있었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무덤덤했는데 실은 아니었나보다. 그래도 꼭 집어 어떤 사건이 영향을 크게 미친다기 보단 2월부터 주욱 이어진 우울과 무기력의 시간 때문에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정도다.
상담에선 좋지 않은 이야기를 주로 하고, 다짐의 왕답게 그럼에도 이렇게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요. 라고 상담이 끝나갈 때쯤에야 겨우 자기 긍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잘하고 있다.' '달라지고 있다' '좋아보인다'라고 말을 해주시면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고 또르르 흐른다.
4월 1일 아침에 허겁지겁 책상을 치워서 글을 쓸 자리를 마련한 일, 4월 2일에 양에 안 차지만 그래도 글을 쓴 일, 2월과 3월 내내 적극적으로 무기력한 나를 그대로 놓아두고 지켜보려고 노력한 일, 내가 원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무기력과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태산 같은 목표를 정해놓고 엄두도 못내면서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았고, 당장 가능한 방법으로 조금씩 목표와 행동을 수정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인정하고 대견하게 아껴주었다. 자신을 인정하고 긍정하며 작은 행복들을 찾아갔다.
우울한 시기에는 무기력한 시기를 지나보려고 뭐라도 억지로 하면서 그거 하느라 에너지를 쥐어짜내느라 더 고통스럽고, 그 행동의 결과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아서 또 서글퍼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한다는 강박에 이거 아니면 다른 거라도 하면서 계속해서 나를 빡세게 굴린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 시기의 무기력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무기력한 나를 그저 바라보면서 기다리기만 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고 스스로를 미워하기는 너무 쉽다. 올해의 나는 그래 3월까지는 봐주자, 하면서 기다리는 방식을 택해본 것 같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트레킹도 가보고, 새로운 모임도 꾸리면서 전과 같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담선생님이 적극적으로 쉬어주라고 그랬어, 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더 했다.
코로나로 세상은 흉흉하고, 회사일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면서 회사 업무도 원활히 돌아가진 않는다. 의사결정이나 업무관리를 리더가 제대로 해줬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러지 않아서 최소한 내가 관여하는 일만이라도 제대로 정리하고 싶어서 건의하고 재촉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 맺음에 관한 업무 메일을 쓰면서 좋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와 상대가 더 나은 과정과 결과를 찾아가며 일하고 싶고, 그런 마음을 드러내는 다정한 글쓰기가 너무 좋다. 그런 소통과 교류가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역시 나는 마음을 담은 글을 쓰고, 그 마음을 읽어주는 독자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래서 4월에는 매일매일 30개의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일터에서의 고민, 일과 일자리에 대한 거대한 주제를 가지고 엄청 좋은 글을 쓰고 싶다보니 너무 어려워서 미루게만 되길래. 일단 매일매일의 일과 사람과 관계와 나의 마음들에 대해 꾸준하게 써야겠다고 방법을 바꿨다. 책상과 옷장과 책장과 방전체를 대대적으로 치워야만 뭐라도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일단 책상 위의 물건들을 그냥 방바닥에 내려놓고 자리만 먼저 만들기로 한 결정처럼. 그리고 4월 4일. 벌써 네 개의 글목록이 쌓였다. 30개가 쌓인 4월 30일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