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빨래만

일요일의 집안일

by badac

일요일에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한다. 자신을 다그치지 않기로 했으니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하나쯤은 미루기로 한다. 그래도 청소나 빨래 둘 중 하나는 꼭 해야하고 식재료도 사러 다녀와야 한다. 이번주에는 빨래가 많아서 청소를 하지 않기로 했다. 청소도 하면 좋기는 한데, 토요일을 상담다녀오느라 다 써버리고 나면 일요일 반나절쯤은 늘어져 있고 싶으니까 방의 지저분함을 견딜 수 있다면 눈 꼭 감고 넘어가보기로 했다.


휴일에도 늦잠을 자지는 않는 편이다. 8시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밀린 설거지를 했다. 어젯밤 늦게 귀가하면서 오렌지 한 개, 대용량 요거트, 사이다를 사와서 먹고는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 설거지는 대수롭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해치울 수 있다. 빨래를 하려면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일단 걷어서 개켜서 옷장으로 넣어야 자리가 나는데 본격적인 집안일을 아직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내게는 남은 시간이 많다.


세 개의 책상 중 제일 작은 책상에 앉아 모닝페이지를 써내려간다. 아침의 기분은 어떤지, 어제의 기분은 어땠는지, 오늘은 뭘 하고 싶은지. 매일매일 생활글을 하루가 넘어가기 전에 브런치에 쓰기로 했지만 원래 쓰던 손글씨 일기장을 쓰는 뇌와 손은 다른 것 같아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뭐라도 쓰려고 한다.


청소를 하지 않기로 해서 해치워야 할 집안일 하나가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게 느껴진다. 우선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물을 받았다. 물이 다 차오르자 문을 닫으라고 경고음이 울린다. 이제 저 문을 닫으면 꼼짝없이 나는 한 시간 내로 집안일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고 싶지 않다. 미루고 싶다. 세탁기를 일시 정지 해두고 그냥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어제 올린 글의 조회수도 다시 확인하고, 잘 읽고 있다는 메시지에 감격하며 답장도 한다.


작년 생일날 친구가 보내준 상품권으로 산 <자기만의 방>을 아직 읽지 않아서 오늘은 시간이 많으니 그걸 읽어보겠다고 정리되지 않은 책장 한 켠에서 겨우 찾아냈다. 결국 오늘도 읽지는 못했다. 어제 만들어둔 음식을 아점으로 먹고 빈둥거릴 시간이 있다고 안심하며 누워있다가 동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공동텃밭에 산책삼아 나갈 건데 같이 가자고. 불러주는 친구가 있는 게 어디냐며 바로 나섰다. 가는 길에 벚꽃이 예뻐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어제 기차역으로 운전해 가는 길가의 꽃들도 참 아름다웠는데 걸으면서 보는 꽃나무는 훨씬 더 아름다웠다. 친구들을 만나서 잠깐 이야기하고 밭에서 잡초 캐내는 걸 구경했다. 나는 하지 않았다. 유쾌하게 웃고 우리집에 와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니 오후 5시가 넘어버렸다. 아이고 해가 져버렸네. 서둘러 세탁기를 돌린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 건조대를 치워야 하지만 빨래를 꺼내라는 알람이 울릴 때까지 결국은 휴대폰을 붙들고 누워있었다. 일단 빨래를 걷어 방바닥에 던져두고 젖은 세탁물을 꺼내 널었다. 그리고 또 한두시간 방치. 더더더 늦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마신 커피잔을 씻고 빨래를 개서 넣고 가장 큰 책상에 앉았다. 그 책상에는 항상 노트북컴퓨터가 놓여있다. 장보기와 청소는 빼먹어도 오늘의 글쓰기는 빼먹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다행히 지난 주말에 사놓은 식재료가 조금 남아있다. 서양식 만두 비슷한 반조리 식품 두 봉지, 순두부 2개, 양배추와 오이고추도 남아 있고 표고버섯 한 팩과 감자도 있다. 어떻게 일주일은 대충 버틸 수 있을 거다. 아니면 주중 퇴근길에 하루 마트에 들러 과일과 채소를 사면 된다. 어제 오렌지를 몇 개 더 살 걸 그랬나, 요즘 식탐이 잘 제어되지 않아 여러 개를 사면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버릴 거 같아서 한 개만 샀었다. 참외는 아직 비싼 데다 썩 좋아하지도 않아서 손이 안 가던데 그렇다면 먹을 건 결국 사과와 방울토마토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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