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한 적 없는 곳에서
폭풍 같던 요 며칠,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졌다. 사건 한 복판에 있게 되면 어떤 말이든 행동이든 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는 그 일들을 벌인 당사자가 된다. 그런 걸 나비효과라고 하던가. 계획한 적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그 결과를 따라 상상한 적 없는 곳에 와 있다. 갈림길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온힘을 다해 최선의 선택을 한다. 작은 배 한 척이 급물살을 타고 어딘가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기억나는 말들을 떠올린다. 내가 이해한 만큼만,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만.
기록은 기억을 만들어낼 텐데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 할 수 있는 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사건을 따라 기억해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다. 기억도 기록도 나의 입장과 시선으로 편집된 가공된 사실 일뿐이다. 한 자리에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기억나는 대로 복기한 오늘의 대화가 사실인가, 녹음된 음성은 정말 그 의미인가.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각자 오늘을 다르게 기억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어떤 말을 했던가.
하고 싶었던 말도 떨려서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 말이 내 말인가, 떨리는 음성을 타고 밖으로 나온 횡설수설이 내 말인가. 상대가 이해한 만큼이 내 말인가. 내가 했다고 적을 수 있는 말은 또 다른 말이 될 것이다. 그런 말들은 모두 어떤 의미를 담게 되는가.
상대방이 말을 한다. 내게로 오던 말이 길을 잃고 그와 나 사이에 떠다닌다. 나는 눈앞에 놓인 노트의 글자와 책상의 무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 말들이 내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결계를 친다. 상대는 대답을 원한다. 빠르게 생각한다. 정확하게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했지만 일단 답한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것을 대화라 할 수 있는가.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대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말하는 이의 조건이 같아야 하지 않나. 흔들리는 배 안에 머무는 자와 뭍에 앉은 자는 협상을 할 수 없다. 나를 뭍으로 들여보내주든 당신이 바다로 나오든. 아마 오늘 내가 한 말은 자리를 바꾸자는 말로 들렸겠지만.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일을 벌였다고도 할 수 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별 일이 다 벌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