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도 아무것도 안했네, 라고 말할뻔했다

실은 꽤 많은 일을 했다

by badac

아침에 일어나서는 양배추를 한 접시 썰어서 발사믹을 뿌리고 달걀 후라이를 두 개 올려 와구와구 먹었다. 그리고는 1.5공기의 밥을 지어서 김가루에 비벼 먹었다. 매우 배가 불렀다. 이런 컨디션이면 오후에는 방청소든 빨래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 잠이 와서 좀 더 잤다. 오후에는 커피를 내려 마셨고 <김지은입니다>를 읽었다. 산 지는 꽤 되었는데 읽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책을 들춰볼 기력이 없기도 했다. 오늘은 뭐라도 읽어야지 생각하며 정신없는 책 무더기를 살펴보다가 보기에 고통스러워서 피한다는 말의 비겁함에 대해 생각했다. 눈물 흘리며 읽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시 일어나 마저 읽고 목욕을 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굴 때 느껴지는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고 싶었다.

욕조 목욕을 좋아해서 몸이 반쯤 잠기는 플라스틱 욕조를 샀지만 안에 두기엔 욕실이 좁아서 평소엔 샤워기 밑에 세워둔다. 샤워할 때는 문 쪽에 옮겨두고 샤워 후에는 다시 제자리에 둔다. 욕조 목욕 후엔 받아둔 물이 아까워서 욕실 대청소를 하거나 욕조를 그대로 며칠 두고 변기 내리는 물로 사용하곤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매우 번거롭고 귀찮지만 그걸 감내할 만큼 욕조를 좋아한다. 우울해서 기력이 없는 시기엔 욕조 목욕을 자주 못한다. 오늘 빨래와 청소까지 할 여력은 없다. 주중에 쓸 천마스크 5장만 얼른 손빨래했다.

낮에 밥을 많이 먹어서 배는 안 고팠는데 허전해서 저녁을 준비했다. 어제 사온 소면을 삶고 시금치를 살짝 데쳐 시금치비빔국수를 만들었다. 고추장에 식초와 꿀을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 깨를 뿌리고 참기름을 두르니 맛있었다. 대충 요리하느라 바닥이 어질러졌다. 쓰리잘비를 가져다가 주방 쪽만 밀었다.

이렇게 주말을 다 보내면서 나는 또 습관적으로 이번주에도 아무것도 안했네, 라고 말할뻔했다. 실은 꽤 많은 일을 했다. 책을 한 권 읽었고 두 끼 식사를 챙겨 먹었고 주방 바닥을 밀었고 마스크를 빨았고 고양이 화장실 모래를 모아둔 쓰레기통을 비웠고 욕조에 물을 받아서 목욕을 했다. 그 물로 화장실 청소를 했다. 청소하다가 주운 고양이 수염을 통에 모았고 고양이 털을 한참 빗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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