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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블 밝은 달에 Jun 20. 2020

너무 더워지기 전에, 금장대 수변 산책로

-일부러 찾아오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 by 꽃작가

일부러 찾아오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만 머물다갈 여행의 브릿지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길지 않은 산책로에서 풍경은 다채롭게 변주되고 깔끔하게 들어선 나무 데크가 강가로 데려다 주는 길. 금장대 수변 산책로다.      



금장대는 예나 지금이나 이름난 여행 명소는 아니다. 시원하게 뻗은 형산강 가운데 선, 산이라고 하기엔 어색할 높이의 암벽일 뿐이다. 하지만 이 동네는 뒷마당만 파도 문화재가 쏟아진다는 ‘경주’이고 금장대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래쪽 암벽에는 선사시대 검파형 암각화가 남아있고, 정상 봉우리쪽에는 도굴의 흔적이 있는 거대한 고분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옛 건물의 주춧돌이 있던 자리에 지금의 금장대 누각이 세워졌다.

신라 시대부터 왕들이 아껴 찾았다는 둥 전해지는 이야기도 많고, 김동리의 단편 ‘무녀도’의 배경이 된 예기청소도 바로 금장대 앞을 흐른다. 숨어있는 이야기 거리가 한 둘이 아니지만 어마어마한 문화유산들 틈에 있다 보니 명함을 내밀지 못할 뿐.      


하지만 나도 금장대에 담긴 역사며 이야기는 다 밀어놓고 5월엔 그저 살랑살랑 수변 산책로를 걷자고 얘기하려 한다. 굳이 금장대 누각에 오르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다.



수변 산책로는 조성된 지 채 2년이 되지 않아 아직 경주 시민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다. 하지만 버드나무가 자생하던 습지에 걷기 좋은 나무 데크가 설치되고, 산책로 사이 노란 유채꽃과 야생화가 피어나면서 사진 촬영 명소로 SNS에 조금씩 이름을 알리는 중인가 보다. ‘사진’이 목적인 사람들에겐 짧은 시간동안 여러 장의 베스트컷을 뽑아낼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사진 촬영 포인트라고 소개해도 좋겠다.


이른 더위가 찾아온 5월, 금장대 산책로를 찾았을 때는 노란 유채꽃 사이로 하얀 민들레 홀씨가 눈처럼 날리고 있었다. 입구의 풍경부터 반해버린 아이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산책로로 뛰어들었다. 그 속에는 사진 동호회에서 나온 듯한 이들이 몇 보였고, 예쁘게 옷을 맞춰 입은 여자 친구 둘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고, 나 역시 신나게 걷는 두 딸아이의 뒷모습을 열심히 찍어대고 있었다. ‘사진 찍어야지’ 마음먹고 가지 않아도 절로 카메라를 열고 셔터를 누르게 되는 풍경이다.     


초록과 노랑이 어우러진 산책로는 둘째 아이 그림책 속 풍경을 닮았다가, 미술관 기념품 매장에서 보았던 엽서를 닮았다가, 어린 시절 보았던 수양버들이 늘어지는 작은 냇가를 떠올리게도 했다. 자주 가고 싶은, 우리 동네 좋은 동네라고 자랑하고 싶게 만드는 참 예쁜 산책로다.       



사람 없고 햇볕도 뜨겁지 않은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의 풍경이 훨씬 더 근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까이 살면서도 게으른 나는 아직 그 시간대의 풍경은 만나보지 못했다. 너무 더운 한낮에는 나무 그늘만으로는 충분치 못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서 시원한 음료 한잔 하며 쉬어가기엔 딱 적당한 코스가 아닐까 싶다. 사실 주변에는 대학과 병원이 전부인데다 다른 여행지와도 좀 동떨어진 곳이라 금장대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 올만한 곳은 아니지만 수변 산책로 덕에 앞으로는 봄, 가을 근사한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제법 찾아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근처에 은근 숨어있는 맛집들은 다음 기회에-)


* 차를 운전해 올 경우 네비게이션에 ‘금장대’로 검색해서 주차장에 도착하면 바로 앞이 수변 산책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동국대학교 병원에서 내려 2-3분만 걸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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