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셔블 밝은 달에 Jul 17. 2020

함께 경주 어반 러닝 클럽을 만들까?

주말 아침 경주를 달리는 즐거움  by 박pd

 러닝(running)이 핫한 시절이다... 취미가 뭐예요? '달리기'요. 혹은 '마라톤'요... 둘 다 본질은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달리기'라고 하니 왠지 없어 보이고, '마라톤'이라고 하니 너무 고되고, 전문적이라 엄두가 안나는 내게 ‘러닝'은적절한 취미 같다. 그저 달리면 되는 이 운동에 언제부터 그런 트렌디함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 사는 친구의 페이스북을 보면 깔맞춤 한 운동복을 입고 남산을 무리 지어 달리는 모습에 서울 어반 러닝 클럽이란 해시태그를 달아놨다. 그래 서울은 어반(urban)이고, 도시를 달리는 클럽이니 그런 세련된 이름이 붙는구나~ 하지만 경주에도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도심에서 가깝고 서울 남산 못지않은... 아니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받을 만큼 아름다운 유적 속 달리기 코스가 있다. 클럽까지는 못 만들었지만, 꼭 한번 여러분과 함께 달리고 싶은 곳이 있으니 이름하야 '경주 어반 러닝 클럽'의 달리기 코스이다.

 

 경주에 작은 세컨 하우스를 마련한 뒤. 주말을 보내러 올 때면, 내일 아침 동네 한 바퀴를 뛸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러닝 코스의 시작은 도심에 자리한 봉황대서부터다. 6월, 아직은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아침. 경주시민만의 특권인 유적지 무료입장의 혜택을 누려보기 위해 대릉원으로 달린다.

공식적으로 대릉원의 입장은 9시부터지만, 시민들의 운동을 위해 열어 놓은 후문을 통과해서 대릉원의 숲 속을 달린다. 크고 작은 능 사이에 조성된 소나무 숲 속으로 아침 햇살이 스친다. 도심에서 1분이면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고대의 공간으로 타임워프 한 기분을 낼 수 있다. 대릉원을 달리기로 통과하는 데는 채 5-7분이 걸리지 않는다. 다음은 넓게 펼쳐진 동부사적지구이다. 숲에서 폐가 시원해졌다면, 이곳에선 시야가 시원해진다.


왼편으로 보이는 첨성대를 지나면 옛 왕궁터 월성이다. 숲으로 둘러 쌓인 월성은 푸름의 공간, 산사의 일주문을 통과하면 속세를 벗어 나 종교의 공간에 들어가듯이 약간의 오르막인 월성의 입구를 통과하면 경주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 속으로 달리게 된다.

구릉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이곳에 들어서면 귀를 스치는 바람소리뿐... 발굴이 진행 중인 고대의 역사 공간 속을 달릴 수 있는 곳이 어디에 또 있을까? 로마의 콜로세움 앞에서의 조깅이 그럴까? (몇년전 로마 여행할 때, 꼭 한번 아침에 콜로세움 앞에서 뛰고 싶었지만, 시차 부적응과 숙소 선정 실패로 꿈만 꾸고 돌아왔다ㅜ.ㅜ)  월성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유적 발굴이 진행되는 지역 말고는 낮은 풀이 자라는 평지이다. 자연산 잔디 트랙에 숲으로 둘러싸인 길이라면 러너(runner)들이 꿈에서나 그리는 ‘황제코스~’ 아닐까? 잔디밭이라면 응당 잔디보다 먼저 눈에 띈다는 ‘자연보호’, ‘잔디보호’, ‘출입금지’란 팻말마저 없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그러니 눈치 보지 말고 맘껏 뛰시라~ ‘i am king of silla’라 외치며~


짧은 월성 한 바퀴가 끝나면 교촌마을로 이어진 길을 따라간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교촌마을이지만, 이른 아침만큼은 옛 정취 물씬 나는 고즈넉한 양반마을이다. 조금은 길어지지만, 최근에 복원한 월정교를 건너는 코스를 추천한다. 신라의 궁궐, 월성에서 신라인의 성지 남산을 향해 만든 다리가 월정교이다. 남천 바닥에 가라앉아있던 옛 월정교의 흔적 찾아내고 그 위치에 과거의 모습은 아니지만^^;;; 아~마~ 이랬을 것 같다는 상상력을 끌어모아 복원한 것이 현재의 월정교이다.

남천을 가로지르는 월정교는 꽤 큰 다리다. 기와지붕의 긴 회랑 같은 모습의 월정교 내부를 달리는 기분은 정말이지특별하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던 서라벌의 핫플레이스, 월정교에서 달리기를 하다니... 잠시나마 타임슬립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뻔뻔하게 붙였지만 ‘러너들을 위한 황제코스’란 제목에 당위성이 조금 생긴 듯 하다. 왕들의 무덤인 대릉원에서 시작하여 별을 관찰하던 첨성대를 지나 궁궐 월성과 월정교까지 지나고 보니 ‘황제’란 이름정도는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과하다면 러너들을 위한 퍼스트나 프리스티지 클래스는 될 것 같은데 지나친 동네 부심이려나.

 달리든 걷든 경주의 속살을 만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픈 마음에 글을 쓴다. 사시사철 아름답지 않을 때가 없지만 이른 아침의 경주는 계절과 상관없이 찬란하다. 특히 초여름의 푸릇푸릇함이 깃든 시절의 아침은 365 날들 중 최고다.


경주에서 보다 특별한 추억을 쌓고자 하는 분들에게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을 패러디 한 이 노래를 들려 드리고 싶다.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며~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달려요 이른 아침 경주의 왕릉 사이를”


그러다 경주가 만들어 낸 풍경의 매력에 빠져 계속해서 뛰고 싶어진다면 함께 달리자. 경주 어반 러닝 클럽의 이름으로.


<코스>

봉황대 출발-대릉원-첨성대-월성-월정교-교촌마을-첨성대-봉황대 도착. 소요시간 30-40분.


ps : 월성의 아침을 독차지하는 것이 나쁘지 않지만, 왜 이곳에서 달리는 이가 나밖에 없을까? 란 쓸모있는 고민을 해본다. (달리기 사진을 찍기 위해 셀카봉을 세워 놓고 두번씩 달렸다는-.- 누가 찍어주면 좋을텐데!) 경주 시청의 관광과 공무원분들에게 러닝코스개발과 홍보를 독려하고 싶은 생각이다! 경주를 러닝(running) 성지로~





매거진의 이전글 봄이다. 숲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