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람의 말에 무너지고, 길고양이 눈빛에 일어선 하루.

by wona




나에게는 집 앞 창고에 사는 친구가 있다.

어찌나 겁쟁이인지, 문을 열면 호다다다 뒷모습이라도 본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그래도 어디선가 내 인기척을 느끼고 있겠지, 생각하며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넋두리를 한 적도 많다.








오늘은 그런 넋두리조차 하기 힘든 날이었다.

뭘 해도 되는 게 없고,

지난 일들을 후회하려 해도 어떤 부분을 후회해야 할지 모르겠고.

세상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오늘만큼은 “괜찮아, 최선이었어.”

그 말 한마디가 너무도 간절했지만, 들을 곳이 없었다.

조금 극단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내가 살아 숨 쉬는 것조차 민폐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콩떡이를 처음 본 날. (원래 챙겨주던 끝순이가 지어준 이름이 무색하게 딸래미를 데리고 왔다.)






​마음이 들쑥날쑥하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콩떡이 밥을 챙기러 창고로 갔다.

.

.

.









그런데, 콩떡아… 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호다닥 나와서는 어디 숨지도 않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바깥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눈을 맞춘 건 처음이었다.


먼지 쌓인 바닥에 철푸덕 앉아 자세를 낮추고 한참을 바라봤다.

언제 이렇게 컸니.






참 모순적이다.

사람 손을 타지 않고, 잘 적응하며 살길 바라면서도

오늘만큼은 나를 보고 도망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순간을 많이 기다린 걸까.

하필 이렇게 힘든 오늘, 너는 내 마음을 느낀 걸까.

말보다 강한 눈빛으로, 조용한 존재감으로,

작지만 분명하게, 아주 강력한 방식으로 너는 나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있었다.




나에게 독박육아를 시키고 바깥생활을 즐기는 끝순.





기다림은 나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너도 나를 기다렸구나.

그 사실만으로도 이렇게나 위로가 되다니.


하루에 몇 번씩, 날씨가 궂은날에는 더더욱, 너희를 찾아 나서는 나를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너에게 주는 것보다

너로 인해 내가 얻는 것이 훨씬 많다는 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각을 잃은 노견과 함께 산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