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 Apr 18. 2022

씨앗들이 짓이겨지지 않기를

올가 그레벤니크, 『전쟁일기』

놀이터에서 천진하게 노는 아이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이 책을 펼쳤다.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상황과 8일간의 지하실 생활, 두 아이와 국경을 넘는 과정 등을 그리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유엔 난민기구의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에 후원하고 작아져 못 입게 된 아이들 옷을 정리해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에게 옷을 전달하는 비영리 단체에 보내기도 했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타국의 일은 내 안에서 조금씩 작아지고 멀어져 갔다.


공습, 전쟁, 난민… 먼 과거의 일도 픽션도 아닌 실재하는 아픔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전쟁일기』를 읽으며 다시 느꼈다. 책에서 작가가 자신을 소개한 부분에 나를 연결 지어 보았다. 엄마이자 아내, 딸, 일러스트레이터로 살고 있고 일곱 살, 다섯 살이 된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남편과 인생의 정원을 가꾸어 가던 잔잔한 일상에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이 찾아온다면, 서른넷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완전히 무너져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어떤 선택도 내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 들일 것이다.


공습이 일어날 때마다 지하실에 몸을 숨겨야 하고 집안에 남아 있는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가려면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날들,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공습을 기다리며 말수도 줄고 웃음도 잃고 귀만이 예민하게 살아 있는 하루하루. 인간의 존엄을 훼손당한 생존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남지 않은 삶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국경을 넘을 수 없게 된 남편과 거동이 불편한 조부모를 챙겨야 하는 엄마를 우크라이나에 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가는 일에 생존을 대신할 다른 선택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의 상황과 빗댈수록 전쟁이 일어나기 전 작가의 모습이 지금의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더 먹먹해졌다. 누구도 타인의 삶과 터전을 침범하고 전복시킬 수 없다는 걸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왜 깨닫지 못할까.


작가가 연필 하나로 그리고 써 내려간 『전쟁일기』를 읽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악몽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뿐인, 하루하루가 저항과 생존이 된 이들을 생각했다. 실재하는 아픔에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해 책을 읽었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움켜쥔 연필이 총과 칼보다 강하다는 걸 믿는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애쓴 이들을 떠올리며 독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책을 사고 읽고 말하는(생각을 쓰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픔을 함께 감각하는 것만으로도 연대가 될 수 있다면.  


아이들은 지하실로 몸을 피하면서도 그 안에서 놀이를 만들고 폭격 소리가 들리는 순간에도 분필로 지하실 벽에 평화를 적는다. 아이의 팔에 이름과 생년월일, 부모의 전화번호를 적어야 했던 현실의 끝에는 평화가 기다리고 있기를, 씨앗들이 부디 짓이겨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올가 그레벤니크 『전쟁일기(2022)』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삶이 무너진 한 작가가 지하 피난 생활을 하며 연필 한 자루로 전쟁의 참혹과 절망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일기장.

기출간된 원서 없이 우크라이나 작가와 한국의 편집자가 직접 소통하여 완성해냈다.

*이 책의 번역료 전액과 출판사 수익 일부는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기부된다.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Seed for sowing should not be milled, 1942)>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아들을,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손자를 잃은 케테 콜비츠가 전쟁 반대 의지를 담아 만든 판화 작품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