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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현 Nov 30. 2022

2. 서울 밖에서 서울 바라보기

선택이라는 자율, 결과라는 책임

1.

바깥에서 내부를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10년 전 글쓰기 소모임을 운영하며 매 시즌 첫 시간에는 구성원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주도'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했죠.


섬, 돌하르방, 바다, 말, 휴식, 관광, 비행기 등등


이런 단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제주도 바깥의 사람이 바라보는 인식이 담겨 있다는 거죠. 제주 사람은 종종 '육지', '뭍'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육지 사람에게는 일상 언어의 영역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배송비'도 제주 사람에게는 민감한 이슈입니다. 제주는 택배비를 추가로 받거나 배송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많은 경우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 혹은 환경에 적응하고, 이런 기준을 바탕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대기업 환경, 스타트업 환경 등등 HR 이슈는 이런 '환경'에 대응해야겠죠.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출근길 HR 트렌드 동향, 일본 기업환경 변화, 주요 방송사 뉴스 등을 봅니다. 노동 관련 다큐멘터리도 자주 보는 편입니다. 언론은 곧 '바깥'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KBS, <MZ, 회사를 떠나다>, 2022.07.26 

위 다큐멘터리에서는 2030의 변화 원인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해보고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과 긱워크의 등장, 이력서 공개 등으로 대표되는 구직시장의 환경 변화, 사용자(경영진)와 구성원(2030)의 온도 차이 등 그 원인을 여러 방향에서 찾고 있죠.


2030은 대체 회사 '바깥'에서 무엇을 보았고 어떤 프로세스를 통해 '떠난다'는 의사결정을 내린 걸까요.



2.

연차와 직급이 올라갈수록 '사측'이 된다고 합니다. 그 점에서 저는 회사에 가까운 시선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연차와 직급이 오르면서 관리자들은 생산성과 효율, 리스크 등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팀원을 관리해서 팀이나 사업부 차원의 성과를 올릴 것인가, 이때부터 관리자는 팀원을 '자원'으로 생각하게 되죠.


2030과 관리자(CEO를 포함한)의 온도차이는 사람을 '자원'으로 사고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요? 1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구성원의 업무기여도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KPI(핵심성과지표)나 수평식 성과평가 등을 동원하지만 '사람'과 그의 '행위'를 수치화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개발자들은 '코드를 보면 근무량이 보인다'고 말하지만 회사는 '사람'이 움직이는 곳이지 공장이 아니거든요. 물론 일론 머스크는 사람을 갈아넣는 방식에 익숙합니다만...


스페이스X 설립 초기 R&D 인력 대부분을 태평양의 외딴 섬으로 보내버린 머스크쨩...

관리자가 구성원을 '자원'으로 생각한다고 가정하면, 구성원의 행위는 효용을 기준으로 분석되겠죠. 그러나 시스템을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직이 커질수록 인적자원 관리는 팀장, 파트장 등 관리자급에게 역할이 분배됩니다. 때문에 스타트업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수직-수평평가 등등 평가모델을 세분화하기 위해 고민 중에 있죠. 


일론 머스크가 우주선 개발 당시 달랑 3명의 구성원을 시작으로, 청년들을 모아 외딴 섬에서 실험을 계속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재택근무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라"고 외치는 CEO가 있는데,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왜 망하지 않는 걸까요?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퍼포먼스가 부족하다면 언젠가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를 기본 전제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3.

최근 점심시간을 활용해 구성원들과 함께 덕몽어스(Goose Goose Duck)를 했습니다. 마피아 게임의 온라인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무튼 저는 열심히 구성원들을 죽이고 다니다가 투표를 통해 처형되었습니다만(...)


덕몽어스는 회사 필수교양이 되었읍니다 이 중에 살인범이 있다... 이말이야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 게임을 하다보니 수다를 떨게 되었죠. 누가 범인인지 너무 쉽게 유추가 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인범이 누구인가'를 토론할 때를 제외하면 게임을 하는 내내 아무도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게임이 다 끝나고 서로 피드백을 나누는데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A. 평소에도 대화를 해야 더 재미있다 (나)

B. 아니다, 토론 시에만 대화를 해야 더 재미있다 (20대 구성원 모두)


저는 대체로 20대 구성원의 피드백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며칠 동안 이 차이에 대해 고민했죠. 결론은 이렇습니다. 저는 게임을 통한 '친목도모 및 소통'에 키워드를 맞추고 있었고, 구성원들 대부분은 게임을 한다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구성원에게는 '게임의 재미'가 더 중요한 가치였던 셈이죠.



4.

이 게시물을 작성하는 사이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10월 초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실무가 바쁘다 보니 벌써 11월 말이 되었군요. 목표는 2주에 한 번 정도 글을 쓰는 거였는데, 그래도 시작한 것을 계속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 사이 회사에서는 프론트엔드 인턴 개발자 채용공고를 내고, 서류접수가 끝나고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2명을 선발하는 게 목표였는데, 3명을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합류할 무렵 구성원은 13명 정도였는데, 이제 24명이 되었습니다.


투-더-문 출처는 AI 제너레이터입니다 : 달리(DALL - E)


최근 인턴개발자들과 1:1로 저녁식사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의 능력과 인품이라면 얼마든지 더 좋은, 예컨대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회사에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인턴 경험을 통해 회사가 여러분을 테스트하는 셈이지만, 반대로 여러분 또한 회사를 경험하고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겁니다. 왜 우리 회사에서 일해보기로 결정했나요?"


이들에게서 공통적인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회사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열린 가치관과, 면접대기실에서 느꼈던 사무실의 밝은 분위기 덕분이었다는 이야기였죠. 주니어들에게 물었더니 면접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평소처럼 웃고 떠들었다고 합니다. 주니어들은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던 이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다과를 선물하곤 했다네요.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면접이 딜레이 되었을 때 그 원인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던 일, 대기실에 놓여있는 다과와 음료, 소액이었지만 면접이 끝난 뒤 지급되었던 면접비, 약속한 합격 발표일보다 빨리 연락했던 부분, 일방적인 합격 통보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 회사에 대한 설명을 먼저 진행했던 점, 팀 구성원의 연차와 주요 개발 분야를 설명했던 점 등등... 인턴 개발자들은 수많은 디테일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5.

저는 신규입사자들의 의견에 많은 관심을 갖는 편입니다. 이들은 '제주도 바깥'에서 조직 내부로 합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는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유연한 사고방식'과 '너드 문화'를 조직문화의 주요 키워드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믿음을 갖고, 그를 바탕으로 주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구성원들의 건의사항을 경청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키워가고 있죠.


제가 이제까지 여러 회사를 다니며 싫었던 부분들이 있습니다. 면접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죠. 가장 불만이었던 부분은 탑-다운 방식의 의사결정구조였습니다. 의도와 목적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주어지는 업무는 위에서부터 내려왔었죠. 우리는 지금, 회사를 운영하며 가장 먼저 탑-다운 방식의 업무지시와 운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떼는 말이야... 불과 20년 사이 기업근로자 평균 연령은 약 7세 정도 증가했습니다...


현재의 인구분포상 2030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정원을 채울 수 없어 벚꽃피는 순서로 망하기 시작했다는 농담을 보셨을 겁니다. 부울경 클러스터의 인구유출, 수도권 이남의 노동인구 부족, 제조업 기반 지방 회사들의 근로자 평균연령 상승 등등... 2030은 계속 수도권으로 유입되고, 정말 큰 기업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회사는 인력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10년, 20년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를 대비한 조직문화를 준비해야겠죠. 우리 회사에서는 매주 조직문화 세미나를 운영하고, 인턴 입사자들과 매주 1시간 정도 토론식 HR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의 주제는 '세대 갈등'이었습니다.


삼프로 TV에도 나왔던 자료입니다. 집단을 구성하는 환경은 계속 변화하고 있죠.


4050은 왜 '우리'와 '조직'을 우선시하는 사고를 갖게 되었나? 국민학교를 다닌 세대는 수십 명의 그룹생활을 유년시절부터 경험한 이들입니다. 이에 비해 지금의 20대는 한 반에 30명 내외의 학생이 있는 유년시절을 보냈죠. 대여섯 명의 형제와 한 집에서 투닥거리던 4050에 비해, 2030은 형제자매가 하나 뿐이거나 혼자 크거나 했습니다. 국민학교가 나라에 소속된 대상으로써의 '국민'을 길렀다면, 초등학교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대상으로서의 '유소년'을 기르는 것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지난 세미나에서는 이 부분을 중심으로, 4050과 2030의 성장환경이 어떤 의식구조를 만들었는지를 주로 토론했습니다. 결론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면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보자"에 불과했지만요.


최소 한 가지 정도의 외국어를 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던 세대 경험은 '나'가 직접 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원인을 추론하는 사고방식을 강화했습니다. 게임에서의 '소통'을 중시했던 제 주장에 비해 20대 구성원들은 '재미'라는 '나의 경험'을 우선시했던 겁니다.


4050의 비교대상이 이웃과 사촌이었다면, 2030의 비교대상은 전세계 각국의 또래이지요. 기존의 조직문화가 한정된 자원에 대한 '양보와 희생'을 기반으로 했다면, 21세기 2030의 조직문화는 취업난을 바탕으로한 '승자독식'과 '나의 생존'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네요. 2030에게 '국가와 사회가 개인을 보호해줄 수 없다'는 사례는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참사를 통해 공통의 감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나'는 언제든 조직으로부터 희생을 요구받을 수 있고, 나는 '생존'을 위한 결정을 해야만 할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역사적 경험이 되겠지요...


바야흐로 대-퇴사 시대입니다.

얼마 전 구성원들과 함께 회사에서 월드컵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직을 종용하는 TV광고가 나올 때 가슴이 철렁했죠. 다행히 구성원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이직은 계속 자유로워지고 있습니다. TV 광고조차 퇴사를 부추기는 시대입니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며 TV를 볼 사람이 없어진 탓일까요? 아마도 잡코리아는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인터넷 생중계로 경기를 보는 사람이라면, 회사 사람들과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HR포털은 대-퇴사 시대를 반기고 있을 겁니다. 이 모든 사회적 변화가 곧 그들의 수익으로 연결되니까요. 야속하게도 이들은 문제를 해결할 의향이 없죠. 그 때문에 저런 공격적인 광고를 과감하게 집행할 수 있었겠죠. HR포털에 광고비를 집행하는 것은 회사들이지만, 인구감소에 따른 인재 수급은 차차 구직자 우위의 시장을 형성할 테니까요.


2030은 이제 '대-퇴사 시대'라는 회사 밖의 분위기, 구직(경력)자 우위 노동시장 변화, 회사가 아닌 '나'를 중심으로한 사고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겁니다. 퇴사-이직으로 이어지는 고리는 곧 기업 입장에서는 인사관리비용의 증가와 신규 구성원의 온보딩 이슈, 조직적응에 대한 소요시간 증가 등으로 연결되겠죠. 기존의 조직문화 대비 '우리'회사는 무엇을 대비하고 있는가, 어떤 조직으로 성장하기 위해 방향을 잡고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이 없다면 기업의 성장은 정체되겠죠.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질 테니까요. 지방 제조업이 직면한 문제는 이제 대부분의 중소기업에게도 시작될 겁니다. 이 시기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다가오겠죠... 때문에 회사의 경영철학을 강화하고, 이에 동의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며, 소규모 그룹핑이 가능한 '구성원 케미'를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게 제 나름대로의 결론입니다. 다행히 대표와 각 관리자들은 이런 문제의식에 적극 동의해주었죠. 테슬라에 동의하는 사람은 테슬라를 선택할 것이고, 구글에 동의하는 사람은 구글로 가겠죠. 


제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기 싫은 회사를 만들자.


덕분에 2022년은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회사모험일지는 또 계속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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