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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현 Jul 15. 2019

7. 무덤들(Graveyard)

오늘은 죽음에 대해 적어볼 계획입니다. 평소 우울증, 조울증 등 기타의 증상으로 마음을 앓고 있거나,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다른 글을 읽기를 권합니다. 계속해서 언급했던 것처럼 제가 적는 글은 보통 '나쁜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게 나아'라는 것들에 대한 질문의 연속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번 연재의 주요 소재는 죽음, 상실, 이별 같은 게 될 예정이고, 글은 사람의 심리를 의도치 않게 흔드는 일이 많기에 다른 글을 읽기를 권합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의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습니다.http://www.spckorea.or.kr/index.php 또한 상담 전화번호는 1393 입니다. 힘들다는 이야기는 오히려 생판 남에게 하는 게 도움될 때가 많습니다. 저 또한 중학교 때부터 여러 정신질환을 앓아왔고, 몇 년 전에 이제는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아졌지만, '절망의 벼랑에는 바닥이 없다'는 문장의 뜻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급적 내면의 어두운 마음에 음식을 주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적는 건, 적고 싶은 글이 생겼을 때는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브리짓, 영국에서 온 브리짓, 두 사람의 브리짓이 첫 번째 철의 십자가에 도착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브리짓은 남미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돌아왔다고 합니다. 산티아고 '은의 길'을 걷고 두 번째 순례길을 걷고 있답니다. 영국에서 온 브리짓과는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용하게 혼자 걷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브리짓과는 대성당에 함께 도착했지만 영국의 브리짓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브리짓은 참 많이 울었습니다. 왜 우냐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순례자들은 점점 질문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안아줍니다. 그것이 세계를 넘는 말의 약속이었습니다.


크리스와 함께 언덕을 오릅니다. 크리스는 며칠 전부터 샌들을 신었습니다. 가져온 신발탓에 자꾸 물집이 잡힌다고 합니다. 발목이 아프다고 해서 다이소에서 산 이천 원짜리 발목보호대를 나눠줍니다. 나도 발목이 아프지만 참을 수 있는 기분입니다. 아프지만 친구와 함께 아픔을 나누고 걸을 수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크리스에게는 내 모자도 나눠줬습니다. 햇빛 알러지로 크리스의 양쪽 귀와 목덜미에 수포 같은 게 생겼고, 내색은 않지만 고통이 내게도 전해졌습니다.


나는 촌놈이라 햇빛에 익숙한 편입니다. 크리스에게 모자를 주고 캐나다에 여행갈 일이 생기면 생색낼 계획입니다. 순둥이 크리스는 싱글벙글합니다. 인생에 공짜는 없습니다. 크리스는 본래 창틀을 납품하던 비즈니스-워커였습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회사생활은 나보다 오래했을 게 분명합니다. 모자와 발목보호대는 인수합병 대비 분산투자입니다. 디스 이즈 코리안 자본주의다 애쓰-홀


영 좋지 않은 곳이 찢어졌던 크리스의 등산바지가 두 번째 철의 십자가 언덕을 내려오는 동안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부욱-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똥 쌌냐? 크리스가 가랑이 사이를 보여줍니다. TMI가 뭔지 알아? 크리스가 고개를 젓습니다. 콩글리시로 투-머치-인포메이션이다 인간아. 우리는 따라오는 친구들을 위해 바지를 묶어둡니다. 이곳은 바지의 무덤입니다. 바람에 실려 크리스 냄새가 날 겁니다. RIP


첫 번째 십자가의 언덕에서 크리스가 돌 하나를 주으라고 합니다. 그걸 왜? 그냥 시키면 하랍니다. 삼십 분 넘게 돌을 줍냐 마냐 싸웁니다. 아니, 왜, 설명을 하라고! 크리스는 특유의 어벙한 표정을 합니다. 하라면 하랍니다. 결국 하얀 돌 하나를 주웠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주겠답니다. 뭐라뭐라 씨부리는 것 같은데 나는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그러므로 해석을 거부합니다. 인간의 뇌는 대단합니다. 모르겠다 생각하면 몰라집니다. 크리스는 중국계 캐나다인입니다. 너는 네가 캐나다 사람이라고 생각해? 크리스는 그렇다고 합니다. 다섯 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는데, 명절이면 중국에 돌아갈 때마다 사촌 사이에 자기가 제일 바보처럼 느껴진답니다. 사촌들은 중국어가 유창하고, 자기는 겨우 숫자 몇 개 음식 그리고 매우 간단한 회화를 할 뿐이랍니다. 대화는 십 분 이상 이어지기 힘들고, 사촌들과는 몸으로 하는 대화에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캐나다 사람이라고 합니다. 크리스는 캐나다 국적의 여권을 사용합니다. 가끔 보면 조선인처럼 생겼습니다. 그는 명예 코리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김크리스라고 부릅니다. 김크리 석양이 진다


그의 아버지는 영어가 서툰 편입니다. 이민 후 강산이 두 번 변했고 두 아들과는 영어로 대화하지만 가끔은 통역이 필요한 정도랍니다. 밥상머리에서 잔소리가 시작되면 종종 중국어가 튀어나오고, 두 아들은 엄마에게 묻습니다. 아빠 뭐라셔? 아빠는 노발대발이지만 캐나다인 아들들은 중국인 아버지의 말을 모릅니다. 퐈둴, 플리즈 슬로우 앤 퀌 다운. 플리즈 스피크 잉글리시. 아빠는 밥을 먹다 말고 집밖으로 나갑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집밖은 더 넓은 캐다일 뿐입니다. 캐나다는 춥습니다. 오줌을 누면 오줌이 슬러시가 되어 쌓인다고 합니다. 증거사진을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다음 겨울에 같이 오줌을 싸자고 합니다. 응 아니 TMI 감사


두 번째 십자가의 언덕에 도착합니다. 첫 번째 십자가에서부터 보름 정도 걸었던 기분입니다. 거리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 있었다는 게, 그리고 기억이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덴마크에서 온 앨런과 독일에서 온... 이름이 생각나질 않습니다. 미안한 일입니다. 앨런과는 둘째 날부터 이십 일 정도 함께 걸었고 독일 친구와는 이틀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름을 잊는다는 건 미안한 일입니다.


크리스가 말합니다. 형(그는 한국어로 나를 형이라고 부릅니다. 위대한 조선어 패치에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돌을 버리자. 뭐 이새끼야? 애지중지 짐을 꺼낼 때마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가져온 돌을 버리라니 나는 집으로 가져가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뒷통수에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는 기분입니다. 물론 나는 GOD의 <같이 걸을까>를 보지 않았습니다. 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도 조선 버라이어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책에서 읽었답니다. 첫 번째 십자가에서 돌을 챙기고, 버리고 싶은 근심을 담아 두 번째 십자가에 놓아야 한다고 읽었답니다. 이런 씁... 지는 보름 가까이 뭘 버릴까 생각했으면서 내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할 시간 오 분 준다. 사람이 이렇습니다. 별 것도 아닌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돌 쪼가리에 이렇게 빡칩니다. 돌은 내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습니다. 나도 돌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시키니까 시키는 것처럼 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애정을 느낄까요. 돌 하나를 버리는 왜 이렇게 망설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내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의 근심을 살펴봅니다. 발 아래 무덤처럼 쌓인 돌에는 온갖 나라의 말이 적혀 있습니다. 한국 사람의 이름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와의 어색한 동행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글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사진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신발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즐거움이라고 적힌 돌을 주웠습니다. 나무로 된 십자가 기둥에 누군가 자기의 근심을 박아뒀습니다. 그 위에 내 돌을 올립니다. 내 돌 뒤에는 즐거움을 올려둡니다.


친구들이 난리납니다. 즐거움을 버리면 어쩌자고? 왜, 재밌잖아. 여기 이 돌이 있다는 건 누가 자기 즐거움을 버리고 갔다는 건데. 난 이 사람 생각에 동의해. 즐거운 거 말고도 인생에는 여러 감정이 많아. 저거 미친놈이네, 즐거움이 없으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 그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고, 난 1년 365일 중에 대부분이 별로야.


그리고 나의 365일을 설명해줍니다. 1년 중에 300일은 내가 뒤져야 이 악몽이 끝나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지랄을 하는지 생각합니다. 60일은 이만하면 그래 평범하구먼, 5일은 그래 내가 이 맛에 살지. 친구들은 경악합니다. 지난 1년 중에 5일은 대체 어떤 게 있었냐고 묻습니다. 글쎄, 산티아고로 오는 비행기를 예약한 날? 그러면 생일은 어떻냐고 묻습니다. 그건 60일에 속할 때가 많지. 엄청나게 만족한 섹스를 한 날은? 이 코쟁이들(크리스는 생물학적 남성이고 앨런은 여성입니다)은 섹스에 환장한 인간들 같습니다. 우리로 치면 손병호 게임(OO 해본 사람 손가락 접어)이나 내가 만일 OO라면 게임이나 진실게임 같은 걸 하는데 허구헌날 섹스 타령입니다. 평생 돈 걱정 없는 부자로 살기 vs 평생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기 따위로 양자택일 게임을 합니다. 세 사람은 오르가즘으로 타협합니다. 돈 주고도 오르가즘은 얻기 어려운 탓입니다. 즐거움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저는 대머리로 살기 vs 고자로 살기에서 고자가 되기를 택했습니다. 남자는 머리빨...


종종 이렇게 신발을 두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먼 곳에서 온 순례자는 모스크바에서부터 7개월을 걸어왔다는 체코 총각이었습니다. 그는 30대 중반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나무 지팡이 하나를 들고 길에서 잡니다. 휴대전화도 없습니다.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 필요한 건 적당한 신발과 적당한 배낭과 적당한 나무 지팡이라고 합니다. 그의 지팡이는 150cm 가 넘는 크기로 시작했으나 70cm 정도로 줄었다고 합니다. 그럴싸하니 믿기로 합니다. 그는 하루 평균 60~70km를 걷습니다. 그를 만났다는 앞선 친구들의 제보가 이어집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7개월 정도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건 아니야. 대단히 무서운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 세상에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라구. 신발은 그의 것이 아니지만 순례길에는 주인 잃은 신발이 많습니다. 두 번째 십자가에도 신발이 있었습니다. 두 발은 어쩌면 근심의 출발일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걷는 것에서 근심이 걸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보다 큰 근심을 싣고 이동하는 마차인 셈입니다. 그리고 근심은 우리의 어깨 위에 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를 아십니까는 여러가지에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불에서 연기가 나고 있습니다. 뻥입니다. 사실 론세스바예스에서 나와 윤태 건우 세 코리안 쁘라더는 새벽 5시 정도에 출발했습니다. 피레네 산맥을 내려오는 길에 그 흔한 가로등이 없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곳에 마을이 있습니다. 시커먼 윤곽은 숲과 나무의 실루엣입니다. 총각 셋이 무서워서 노래를 부르면서 걷습니다.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풀 야도란...


귀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두 총각은 기겁합니다. 듣지 않겠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평균 고도 1200m의 산길에는 해가 늦게 뜹니다. 세 시간을 걸으니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지 않아도 어슴푸레 길이 보입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성당 알베르게 사람들은 코쟁이고 조선인이고 죄다 우리를 미친놈이라고 불렀답니다. 우리 이제 다시는 이렇게 어두울 때 걷지 않기로 합니다. 우리는 슈퍼마리오가 아니기에 목숨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여명은 아름답습니다. 한국에서는 지평선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들판 위로 솟는 해를 봅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여전히 별이 떠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 두 눈보다 좋은 렌즈는 없겠지, 풍경은 기억에서 서서히 흐려지겠지만 지금의 기분을 잊지 않기로 하자.


이 그림은 세잔의 <비애(Sorrow)>입니다. 조선어로는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찾기 어려우니 대충 번역합시다. 죽은 사람은 성으로 부릅니다. 폴 세잔, 클로드 모네, 구스타프 클림트, 앤디 워홀.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은 풀-네임으로 부릅니다. 데미안 허스트처럼. 우리나라로 치면 김홍도는 김이고 백남준은 백이고 김아타는 살아있으니까 김아타죠.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가문의 이름(성)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끔찍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태어난 이후 내가 내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내 이름을 정해두고 나를 부르고 평생 그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는 것도 끔찍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스스로 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의 이름도 필명입니다. 저는 개똥도 유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폼나게 살고 싶으니 이름을 만들어보기로 합시다. 하늘에 계신 큰아부지께는 쏘리. 암 낫 리스펙 츄 유 노우 나띵


사실 성씨 성(姓)을 뜻하는 한자어 풀이는 고대에 아이가 태어나면(生) 엄마(女)의 성을 따라서 저런 한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자의 성을 따르고 있으니 요상한 노릇입니다. 무튼 저는 평등을 가급적 따라가고 싶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이상하면 치과가야 하는데 치과에서는 이상한 사람들을 침대에 눕히고 오징어 타는 냄새를 맡게 만드니까 내가 타는 냄새는 다시 이상하고 이상하면 또 치과가야 하니까 적당히 넘어갑시다.


저는 사진가가 아니기에 사진이 삐딱한 것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죄송합니다. 귀찮습니다. 삐딱하게 보는 것이 목적이기에 삐딱하게 남겨둡니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어떻게 보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원망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액자 밖 사람들과 눈을 맞추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그림 속의 사람이 그림 밖을 응시하고 있으면 불편을 느꼈다고 합니다. 불쾌한 느낌까지 들어서, 중세 이전의 초상화나 그림을 보면 주인공들이 정면이 아닌 아래나 다른 곳을 볼 때가 많습니다.


세잔의 <비애>는 그래서 불편합니다. 본다는 것은 그렇습니다. 응시는 권력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는 귀족이 화가를 고용해서 인물을 그리게 만드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귀족입장에서 누가 자기를 계속해서 바라보는 경험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았을까요. 드라마나 회화에도 묘사되는 것처럼 귀족과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동일한 높이에서 눈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아주 멀리 있거나, 아주 낮은 곳에서 올려다 보거나 했죠. 가까운 거리에서는 고개를 처박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림을 보는데 그림이 나를 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가 나쁘고, 기분이가 나쁘니까 저거 다른데 보게 만들어 했을 거고, 기분이가 나쁘니까 땅콩을 던진다던가 비행기를 세우라던가...


연재를 거듭하면서 글이 길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입니다. 사진이 많아서 오늘은 더 긴 기분입니다. 까를로 성님이 걸어갑니다. 팜플로냐의 성곽이 보입니다. 태국에서 브라질 사람을 만난 적 있습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미안한 일입니다. 내게 어디를 다녀왔냐 물어서 앙코르와트에 다녀왔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가본 적이 있답니다. 그리고 다시는 고대 유적에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한 미스테리하고 장엄한 고대 유적이 생길 때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노동하며 죽어가지 않았겠냐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고대 유적에 대한 흥미를 잃었습니다. 팜플로냐의 성곽도 남산의 성곽도 내게는 슬픈 공간입니다. 군역을 살았던 혹은 노예로 살았던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성곽을 쌓기 위해 고통받았을 겁니다. 유럽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처럼 평범한 이들의 피와 고통과 울부짖음으로 얼룩진 공간을 인간의 위대함으로 포장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믿고 싶도록 설계되어 왔는지도 모릅니다. 오키나와의 슈리성에 다녀온 적 있습니다.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점령당한 다음 태평양 전쟁 당시 벙커로 사용된 곳이라고 합니다. 류큐왕국의 왕궁이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 류큐왕국의 역사와 조선의 역사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키나와 토박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본어가 아닌 다른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러한 사실을 모릅니다. 일본은 일본이고 스페인은 스페인이고 한국은 한국일 뿐입니다.


유럽은 십자군 전쟁으로 이슬람의 영토를 침공했습니다. 이후 대항해시대를 거쳐 식민지를 확장했습니다. 남미와 인도의 수많은 이들이 문화를 빼앗기거나, 죽어야 했습니다. 콜롬비아의 에스코바르와 쿠바의 체 게바라 같은 이들은 미소 냉전 사이에 생겨났습니다. 순례길을 걷는 일은, 머리털 나고 한 번도 유럽에 가보지 않은 내가 그 대단한 유럽을 가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파리는 실제로도, 비유적으로도 지린내가 진동합니다. 그들은 식민지에서 수탈한 문화재를 '인류의 문화'로 포장하여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합니다. 여행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시아 사람을 중국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의 말에서는 냄새가 납니다.


유럽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한국인인 나에게도 유효합니다. West와 East는 유럽 중심의 세계관입니다. 중세 이전의 유럽 사람에게 East는 페르시아 정도까지였지 중국이나 동아시아는 본 적도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East로 퉁 칩니다. 때로는 중국의 중화중심주의가 부럽기도 합니다. 그냥 전부 다 middle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톨킨을 좋아하는데 또 김용도 좋아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의 곳곳에는 이름 모를 순례자의 무덤이 있습니다. 작은 십자가가 세워진 돌무덤이 종종 길 주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가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수많은 팔찌와 묵주와 관계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우리는 무덤 주인의 이름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길의 역사를 생각했을 때 그리고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의 전쟁과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생각했을 때 이 길에서 죽어간 사람은 우리가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겁니다. 그러면 어딘가에는 아직 부패하지 않은 뼈의 조각이나 유품이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죽음의 흔적은 인간의 것 외에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우리는 지구가 생각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확인되었다는 걸 핑계로 생물과 무생물의 관계를 정리해뒀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정의는 사실 지구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도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생성된 것일 뿐입니다. 수만 년 동안 사람은, 무생물에도 영혼이 깃든다고 믿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운율 따위 난 아무래도 좋다. 나란히 선

나무 두 그루가 똑같기란 드문 일.

꽃들이 색을 지니듯 나는 생각하고 쓰지만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덜 완벽하다

왜냐하면 온전히 외형만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단순성이 내게는 없기에.


나는 본다 그리고 감동한다,

물이 경사진 땅으로 흐르듯 감동하고,

내 시는 바람이 일듯 자연스럽다......

-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민음사, 2018, 53쪽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1년 365일 중 300일 정도는 죽어있다고 느낍니다. 저 시는 포르투갈 작가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100년 전에 쓴 시일 겁니다. 나는 생각과 말로부터 자유롭기 어렵고, 글을 쓰면서 늘 자유로운 순간으로부터 실패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려는 모든 것을 글로 옮기고 싶지만 나는 완벽하지 않고 또 내 글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지연됩니다. 나는 늘 늦게 도착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도착하지 않습니다. 내게서 출발한 아주 작은 조각이 조각나도 뭉개져 도착할 뿐입니다. 나는 나를 만난, 혹은 나를 읽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살아있음-을 증명할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우크라이나에 사는 모 아무개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그가 존재하는지 아닌지조차 자료를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처럼 우크라이나에 사는 모 아무개가 조선에 관심이 생겨 조선어 패치에 수천을 투자한 전직 순례자(Pilgrim)를 찾는 건 백사장에서 바늘 찾을 확률보다 낮을 거고, 노력해보더라도 나사가 지적생명체를 발견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60억이 넘는 지구인 입장에서 살아있지 않은 존재인 편이 좀 더 맞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그들 모두에게 증명할 수 없다면, 그러니까 메시나 호날두처럼 유명해지더라도 또 많은 사람들은 메시나 호날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살아있는 인간인지 짐승을 구분하는 생물종 이름인지 새로나온 아이스크림인지 알 방법이 없으니까요.


나는 글쓰기와 여행을 좋아합니다. 딱히 누가 읽지 않더라도 글을 쓰고 있으면, 이게 세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몇 명은 나의 생각과 나의 흔적을 읽고, 그 중에서도 일부의 사람은 내게서 긍정적인 어떤 걸 얻어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의 글이 아무리 날카롭고 싶더라도, 누군가를 죽이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인터넷 댓글에 개갞끼들이 다는 악플이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게 훨씬 쉽겠죠. 여행에서, 나는 다른 지구인을 만납니다. 그들의 생각과 그들이 살아온 세계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각자 하나의 세계를 내게 전달해줍니다. 이보는 이보의 세계를 가진 하나의 세계이고, 루카스는 루카스의 세계를 가진 하나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십자군 전쟁 같은 한국 전쟁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배려합니다.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충돌할 게 분명합니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유혈이 낭자하고 순순히 다이아몬드를 내놓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벌어지겠죠. 간디 아조씨가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저작권은 시드마이어에게 있습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일은 죽음을 실천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우리는 길 위에 남은 무덤을 보고 주인의 생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라는 말을 혐오합니다. 사는 게 훨씬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고통에 나를 노출시키고, 인생의 무계획적이고 우발적인 사태에 나를 마주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인생은 언제나 내 뜻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지랄 같은 건 페소아가 말하는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자연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어렵게 만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생이 내게 X 같게 굴려고 하는 게 아닌데 내가 X 같아질 때가 더 X 같습니다.


365일 중 5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나이지만, 그 5일을 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360일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살아있음-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대부분 인생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걸 찾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다른 일을 겪지 않겠죠. 해서 그런 사람들은 죽음을 상상하지 않는 편이고,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편입니다.


내가 죽어도 세상은 돌아가겠죠. 그만큼 나는 세상에 별 쓸모가 없는 인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세상에 살아도 별 타격은 가지 않을 겁니다. 죽는 건 쉽지만 사는 건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은 반대로 생각하지만 사는 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살아있음-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건 몸의 병이나 마음의 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죽음의 이유보다, 삶의 이유를 훨씬 찾기 어려웠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기에, 나는 고통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 위대하게 보였습니다. 어떻게 길을 뒤덮은 죽음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내일을 희망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내 눈에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는 이 땅에 대체 무슨 수수께끼가 있어서 오늘을 버티게 만드는가?


내일로 살아가는 모두가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대단한 일을 해보고 싶어 살아가기를 택했습니다. 나는 존엄사에 동의합니다. 한국도 육체의 병과 정신의 병을 가리지 않고 존엄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남은 내 자신에게 선택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나의 허락을 얻고 나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나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이만하면 나는 최선을 다해 보통이 되기를 노력해왔어, 라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살아있음-을 유지해보려고 합니다. 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온 몸으로 스스로의 살아있음-을 증명해내는 것처럼,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일은 나쁩니까? 살아있음-은 죽음의 순간보다 압도적으로 길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시간은 대부분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어떤 시간들은 내가 나를 죽여야 하는 시간의 연속체이기도 합니다. 타인은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나의 고통을 대신 겪어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상상하는 일은 나쁩니까? 생명을 어떻게든 연장하는 일은 도덕적입니까? 그러면 그러한 생명연장을 위해 동물실험에서 죽어나가는 수많은 동물들의 목숨은 가볍습니까?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내가 소비하고 먹는 행위가 내 주변을 얼마만큼 위협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존은 가치 있습니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가치만큼 세상에 이롭습니까? 인간에게도, 다른 존재에게도, 지구에게도 이로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그렇게 거대하게 이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무용합니까. 무용함을 인정하는 일에 얼마나 인색했습니까. 나의 유용함을 인정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얼마나 많은 패자를 만들어 왔습니까. 이런 생각은 나쁩니까? 복잡하고 힘겹다는 핑계로 나쁜 생각들로부터 멀리 회피해온 것은 아닙니까? 죽음을 보는 일은 나쁩니까? 죽음을 응시하여 죽음과의 권력을 정비해보려는 일은 나쁩니까? 죽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나쁩니까? 기록되고 기억되기를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장식하는 나쁜놈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작은 일입니까.


나는 천국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글을 쓰지 않을 때 죽어있다고 느낍니다. 글을 쓰고 글에 대해 상상할 때 살아있음-을 감각합니다.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글을 써서 행복할 때마다 글을 쓰기까지가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회사원이 회사에 가서 일하고 운동선수가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나는 작가가 아니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계속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극복하고 내가 나를 넘어서고 내가 나를 탈피하고 반성하고 나를 수정해나가는 과정이 글쓰기에서 반복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이 되어보려 몸부림칩니다. 타인을 이해해보려고 몸부림칩니다. 내가 나 하나도 이해하고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포기하기에는 아무런 대가 없이 내게 친절과 사랑을 나눈 이들이, 그런 기억이 풍경처럼 나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영원히 다시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를 다시 쓰고 싶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중요한 문제입니다만, 영원히 열리지 않을 무덤 같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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