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영주권을 따내기 위한 처절한 사투
2023년 3월
8. 라오스인과의 관계증명서는 준비가 되었다. 서식에 직접 적을 수 있는 서류들도 다 수기로 적었다. 수기로 적어야 하는 분량이 만만찮아서 서식을 스캔해서 바탕에 깔고 기입해야 하는 내용들을 칸에 맞게 타이핑한 후 바탕을 빼고 서식 원본에 프린트하려고 했었는데, 먼저 영주권 신청을 진행한 동생이 절대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다. 라오스 공무원이 무슨 트집을 잡아서 빠꾸멕일지 모른다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직도 예쁘게 쓰기 어려운 라오어를 개발괴발 파란색 볼펜(옛날에 어떤 서류를 검정색 볼펜으로 작성했다가 잔소리들은 기억이 있다)으로 그리느라 손가락이 빠질 것 같았다. 이런 사소한 게 뭐가 중요한가 싶지만 라오스에서는 중요함의 포인트가 다르다. 교환교수로 라오스에 온 한국 선생님이 중학생들한테 수업시간에 빙고게임을 가르쳐주느라 공책에 5x5의 표를 그리랬더니 학생들이 가만히 앉아 있더란다. 표를 그리기 위해서는 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냥 게임이니까 자 필요없어 그냥 아무렇게나 선 죽죽 그으면 돼 했는데도, 학생들은 자 없이 선 긋는 일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 이렇게 라오스에서는 빙고게임에 있어 한국 학생들은 생각도 하지 않았을 자의 존재 유무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라오스에서 민원차 관청을 방문할 때는 꼭 점잖은 옷을 입어야 한다. 여자는 전통치마 신을 입어야만 출입을 시켜주는 부서들도 있다. 뭐 그 정도는 한국에서도 통용되던 사회적 예절이기도 하다. 구청 공무원이었던 이모가 반바지에 쓰레빠 질질 끌고 오는 민원인들에게 혀를 차던 게 불과 20년 전 일이다. 그런데 라오스에서는 긴바지나 신을 입기만 하면 발에는 쓰레빠를 껴 신어도 수팝(격식차린)한 것으로 쳐준다. 역시 포인트가 다른 것이다.
이제 라오스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들을 발급받을 차례. 건강상태확인서가 제일 만만해 보인다. 멀리 가기 귀찮아 집 근처 클리닉에 갔더니, 회사제출용 건강상태확인서는 발급해줄 수 있지만 정부관청제출용은 공립병원에 가야 한단다. 휴우~ 경찰병원인 103병원에 가서 건강상태확인서 발급을 신청했더니 사진을 가져오란다. 발급 후에 내가 직접 붙이면 안되냐 했더니 사진 위에 직인을 찍어야 한다고. 그리고 오전 근무시간은 다 됐으니(그때 시간이 11시 15분 전) 오후 1:30분에 다시 오란다. 휴우~ 사진 하나 때문에 왔다갔다 하기엔 번거로웠기 때문에 다음날 오전, 근처에 간 김에 사진을 첨부해서 다시 신청서를 제출했다. 확인서 수령 시간은 오후 3시라고 한다. 오후 3시에 갔더니 후아나(각각은 후아 ຫົວ=머리, 나 ໜ້າ=얼굴이라는 뜻인데 붙이면 머리얼굴이 아니라 상관, 대표가 된다)가 없어서 직인을 못 찍어 준다고 내일 다시 오란다. 휴우~ 건강상태확인서라는 건 정말 요식행위다. 접수비 2만낍과 사진만 갖다주면 별 문진하는 것도 없이, 심지어 혈압 맥박도 표준치를 그대로 써서 "건강에 문제 없음"이라고 적어준다. 이 아무 것도 아닌 서류를 받기 위해 병원까지 무려 4번을 행차해야 했다. 40도를 벌써 웃돌기 시작한 3월의 폭염을 뚫고 이 정도의 미션을 수행해 내는 사람이라면 실제 간수치야 어떻든간에 "건강에 문제 없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긴 하다.
다음은 라오스 범죄사실증명서. 이건 별로 어려움 없이 비엔티안시 법원에서 발급받을 수 있었다. 만 낍인가를 주고 신청서식을 사서 나오는데, 주차를 도와주던 경비가 서식을 자기한테 맡기면 15만 낍에 급행으로 해주겠단다. 원래 한 일주일 걸리는 걸 바로 다음 날 받는 값치곤 싼 거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환전도 그렇고 쇼핑도 그렇고 10불도 안 되는 사소한 금액에는 목숨걸지 않는다. 그렇게 티끌을 버려가며 언젠가는 태산을 깎아 먹고 말겠지만 뭐, 어떤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