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이 뭐라고 7

라오스 영주권을 따내기 위한 처절한 사투

by Xay 싸이

2024년 2월


캄판 이즈 백!

선생님 본가는 우리 구에 있는데, 요즘 계시는 곳이 국립대 근처라 막히는 길을 뚫고 선생님을 모셔 와 극진히 점심을 대접하고 예의 구 공안과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만들었다. 일반 접수는 한 달이 걸리고 급행은 3일 걸린단다. 당연히 급행을 택했고, 수수료는 급행료 20만 낍에 신청서식 만 낍. 대리 수령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한국 사람이 라오사람 민증 만들러 데려왔다고 기특해하며 접수증만 갖고 오면 바로 내주겠단다. 몇 번 오지도 않았는데 한국인 영주권 신청자가 드물어서 그런지 공안과 사람들이 나를 다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흘 후 주민등록증을 찾으러 갔더니 접수증을 내밀기도 전에 선생님의 주민등록증을 내준다. 모눈종이로 수령인 장부에 서명하는 걸로 끝. 이런 장부들은 과연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시 기록을 뒤져볼 수 있기나 한 걸까. 얼마 전에 방문했던 한 관공서에서는 몇 년 전 폭우로 장부 보관실이 침수돼서 모든 기록을 유실했단 얘기를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선생님의 주민등록증을 찾았으니 그걸로 된 거.

G4UfqMUbkAA6fG5.png 라오스식 장부의 예: 학업에는 소홀하지만, 덕업에는 진심인 한 학생의 결석부. 사유: 탁발 공양-열남-공양-공양-"학교 노는 줄 알았음"-공양-결혼식-공양


모든 서류가 다시 완성되었다.

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착각이었다. 비엔티안시 공안국은 절대 서류를 쉽게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으로는) 틀린 것들을 한꺼번에 알려주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재산목록을 증빙해 오라는데 내가 여기 은행 통장 말곤 뭐 재산이 있을 게 있나. 은행잔고증명을 떼 갔더니 거래내역서를 또 가져오란다. 최근 1개월 치면 되냐니 1년 치를 떼 오라고. 가게에 모바일결제 건수가 하루에도 몇십 개씩 찍히는데 이거 1년 치 떼면 책 한 권 분량이 될 거라고 하니 그래도 상관없으니 떼 오란다. 악독한 놈들. 끝도 없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3월 내내 두세 번을 더 왔다 갔다 하며, 그 옛날 옛적 경남 지역 전화번호부만큼이나 두꺼워진 서류철을 계속 반복해 2세트씩 컬러 복사본을 만들어야 했다. 1세트는 원본이랑 같이 제출해야 하는 거, 1세트는 내가 계속 보관할 거.

지리멸렬한 공방전 끝에 (어쩌면 그게 다 돈 내놓으라는 압박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빡빡하게 나오면 나도 배 째라는 심뽀가 되면서 한 푼도 쓰기 싫어지는 좋은 성격 탓….) 2월도 반이 다 갔고, 지친 건지 포기한 건지 드디어 인터뷰 날짜를 잡아 주겠단다. 인터뷰는 영주권 신청자 본인만 하는 게 아니라 보증인도 같이 와서 하는 거라고. 하아....

IMG_4355.jpg 밉다. 제일 밉다. 비엔티안시 공안사령부. 흔히들 공안국 아니면 뻐꺼서 ປ.ກ.ສ.로 부른다.

두둥. 캄판 선생님은 2월 하순 내내 해외 순방 일정이 있으시단다. 뭐 나도 한국에 일이 있어서 가야 하긴 함. 일단 서류를 맡겨두고 인터뷰 날짜는 3월 초에나 다시 연락해서 잡기로 했다.

가 캄판 쌤도 나도 이런저런 일이 서로 엇갈리면서 3월이 통째로 날아갔다. 스멀스멀 불안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아니, 이러다 서류 없어지면 우짜지? 캄판 쌤의 잃어버린 지 20년 된 민증까지 살려가며 만든, 더러운 성질 죽이고 굽신굽신 하며 겨우 접수시켜 놓은 마이 프레셔스 내 서류!!!!

collage.png 살면서 내가 여태 본 악당들은 대부분 투투나 가재상이었는데, 이번 비엔티안시 공안국 외국인관리과 담당은 둘을 합쳐놓은 인상이었다. 관상은 과학.

2024년 4월


다행히 내 서류는 살아남아 있었다. 투투가재의 똘마니들이 제안한 인터뷰 날짜는 4월 8일, 라오스 새해 삐마이(4/13~15) 직전 주, 이날을 넘기면 흥청흥청 한 2주는 또 사라지게 된다. 다행히 캄판 쌤도 시간이 된다 하여 인터뷰를 하러 갔다. 그전에 인터뷰 날짜 잡으면서 추가로 가져오라 한 보증인의 이력서(양식을 5만 낍에 삼)에 붙일 사진을 뽑고, 이력서를 급히 작성해 근처에 있는 쌤 본가 주소지의 동사무소에서 확인 도장을 받고, 컬러복사를 했다.


인터뷰 내용은 별거 없었다. 이력서에 있는 내용을 각자에게 되물어보는 수준이어서 이력서를 직접 쓴 둘 다 쉽게 답할 수 있었다. 거의 이력서를 새로 쓴 인터뷰 기록지에 보증인과 함께 지장을 찍는 걸로 절차는 마무리되었다. 다만 작은 문제가 있었는데.... 쌤의 이력서를 검은 볼펜으로 작성한 걸 또 트집 잡았다. 하아.... 아까 차 안에서 쌤이 검은 볼펜으로 이력서 쓸 때 약간 쎄했지만, 몇십 년을 공무원 하신 분이니 어련히 잘 아시겠지 싶어서 잔소리를 안 했었다. 외국인인 나는 충분히 예상했지만, 라오스 현지인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이 대목에서 쌤이 이성의 끈을 놓으시려는 걸 간신히 다독였다.


"쌤 고정하시고요.... 아짠 짜이옌옌, 짜이옌옌 (쌤이 이러시면 제가 망해요....ㅠㅠ)"


알았다고, 인터뷰 끝나고 바로 파란색으로 다시 써서 제출하겠다고 하고는 일단 사무실을 나왔다. 얼른 새로 양식을 사서(이번에는 10만 낍에 삼) 차 안에서 아직 씩씩거리고 있는 쌤보고 다시 적으시라 (ㅠ울면서ㅠ) 부탁드린 다음, 동사무소 가서 다시 도장을 받는 것까지만 같이 하고 선생님을 댁으로 모셔다 드렸다. 그렇게 인터뷰 날의 긴긴 하루가 디 엔드.


다음날 바로 컬러복사를 2장 해서 원본과 함께 내 서류철에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수수료가 20만 낍이라는데 보통이었으면 한 40만 낍 줬겠지만, 여태 개고생 시킨 게 너무 괘씸해서 딱 20만 낍만 주고 말았다. 앞으로 또 뭐로 트집을 잡을지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하기로 하고.


2024년 5월


5월 말쯤 비엔티안시 공안사령부(공안국)의 인터뷰 결과 서류가 나왔다. 보통의 관청에는 때리는 시어머니가 있으면 말리는 시누이도 있는 법인데, 여기엔 정말이지 온통 시어머니와 시누이뿐이었다. (응?) 비유가 이상하지만 정말 이놈이고 저놈이고 할 것 없이 다 미운 놈밖에 없었다는 얘기. 정말 밉상인 자들이었지만 그래도 서류가 나왔으니 잊으려 한다. 다시 볼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

1876e6496b0561937.jpg 제발 그러자.


의외로 보증인 관련 정보가 중요한 거였던지, 다음 목적지인 비엔티안시청으로 가는 서류 목록 1번에 보증인 신원 증명서류 일체가 있고, 2번에 내 영주권 신청 서류 일체, 3번이 인터뷰 기록지다. 이런 부처 간 서류 배달을 민원인이 직접 다 해야 한다는 게 라오스 행정의 특징이다. 부처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지도에는 위치도 제대로 안 나오고, 간판도 눈에 안 띄고, 건물을 찾아갔다 해도 어느 부서로 가야 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보통 메인 건물 로비에 수납 창구가 있어서 거기에 바로 접수하거나, 아니면 창구에서 알려주는 부서로 가서 또 담당자를 찾아서 접수하게 된다. 부서별로 문에 간판이라도 달고 있으면 양반이고, 그냥 2층 왼쪽에서 세 번째 방 이런 식의 안내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구조를 잘 아는 전문업자가 아닌, 일반 민원인들은 헤매는 게 당연한 구조다. 그리고 나는 일반 민원인이다.

IMG_4719.jpg 이 정도면 굉장히 친절한 민원 안내이다.

사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게 비엔티안시청인데, 시청에 갈 일이 그간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좀 요령이 있어서 의전용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좀 드나드는 문이 보였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공무원을 붙들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세무공무원, 교육공무원, 공안들은 군복 비스름한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다른 일반 부처 공무원들은 복장에서 민원인과 별다를 바가 없어 이 사람이 공무원인지, 민원 보러 온 자인지 알기는 어렵긴 해도, 잘 보면 공간 속에 어우러진 모습에서 약간 티가 나기 마련이다. 다행히 바로 그 사람이 나온 사무실이 영주권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라 바로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다. 11시가 살짝 지난 시간이었는데, 그 직원은 사무실 문을 잠그고 점심 먹으러 가던 중이었다. 원래 다른 사람 담당인데 이미 자리에 없고, 자기가 대신 접수를 해주겠단다. 접수비 15만 낍이라는데 그냥 20만 낍 주면서 잔돈은 필요 없다고 했다. 5만 낍이면 점심으로 카오삐악 한 그릇은 사 먹을 수 있다. 나가던 길을 돌아와서 일을 해 줬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서비스료를 내는 게 도리라 생각한다. 원래 점심시간은 11:30부터란 사실은 이런 로직에서 빠져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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