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영주권을 따기 위한 처절한 사투
2024년 6월
드디어 비엔티안특별시장의 인정 공문이 나왔다. 사실 비엔티안시청에 서류를 제출할 때 접수하는 직원이 2주면 된다고 했었는데, 딱 2주가 되는 시점에 내가 한국에 가서 거의 3주를 있다가 오는 바람에 늦게 찾게 된 것. 서류가 빨리 처리되지 않는 건 민원인 입장에서 갑갑한 일이지만 다 된 서류를 제때 찾아가지 않는 것 또한 공무원 입장에서 난처한 일이다. 체계적으로 잘 보관해 둘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서류를 접수했던 1번 방(조직운영감독과)에 갔더니 3번 방에 가서 찾으란다. 3번 방(비엔티안시 내무국 부국장실)에 갔더니 서류 출납 담당자는 내 서류의 존재를 모르는 눈치다. 잠깐 앉아 기다리라고 하고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다. 비어 있던 옆자리의 주인인 듯한 직원이 돌아와 본인 자리 뒤에 잔뜩 쌓아둔 서류뭉치 사이에서 내 서류를 꺼내 주면서 출납 담당자에게 수수료 5만 낍 받고 출납 장부에 기록하고 내주라고 지시하고는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출납 담당자는 출납 장부에 기록하면서 5십만 낍을 내란다. 응? 내가 금방 5만 낍이라고 들었는데? 그가 잘못 말한 거란다. 원래 5십만 낍이라고. 아, 네. 증거를 내놓으랄 수도 영수증을 써달랄 수도 없다. 달라면 드려얍지요. 네네.
2024년 7~8월
이다음은 드디어 외교부다. 나의 민원이 지역 관청을 벗어나 중앙 단위의 부서로 올라갔다는 이야기. 외교부는 워낙 공문 출입이 잦은 부서라 부지 한켠에 서류출납처를 따로 설치해 두었다. 공문 접수처에는 국별 연락처가 표로 작성되어 붙어 있었다. 나의 서류는 2주 안에 라오스국적자연락국으로 간다며, 그쯤 해서 그쪽에서 연락이 없으면 내가 그 표에 적힌 연락처로 연락을 해보란다. 접수비는 10만 낍.
하지만 2주 후에 표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더니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나도 통역 일 때문에 한 10일을 바깥으로 도느라 가게 직원한테 매일 한 번씩 연락을 해보라고 시켜두었지만, 열흘 내내 단 한 번도 전화를 안 받았다고 한다. 직접 출동하는 수밖에.
하루 날을 잡고 아침 10시, 모든 공무원이 자리에 붙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시간을 골라 외교부 접수처로 향했다. 접수처 직원은 사정을 듣고는 라오스국적자연락국으로 직접 가보라며 인근에 있는 그 사무소 건물 위치를 구글맵에 찍어 주었다. 가르쳐 준 대로 갔더니 간판은 재외라오스국적자연락국(ກົມພົວພັນຄົນເຊື້ອຊາດລາວຢູ່ຕ່າງປະເທດ)으로 적혀 있었다. 우리로 치자면 재외동포청 같은 곳인데 엥? 여기서 왜 라오스 국내 거주 외국인의 영주권 관리를 한다는 걸까 싶었지만 그렇게 안내받았으니 일단 들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접수처 직원은 자기들은 내 서류를 받은 적이 없고, 아마 내 서류는 영사국으로 갔을 거란다.
젠장할. 영사국도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급히 차를 몰아갔다. 늘 사람이 붐비는 외교부 영사국 접수처에서 내 서류의 행방을 물었으나 받은 적이 없단다. 어쩌자는 건지. 다시 외교부 접수처로 갔다.
"내 서류는 재외라오스국적자연락국에도 없고 영사국에도 없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담당자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더니 내 서류는 확실히 국적자국으로 갔고 우타이라는 양반이 담당이란다. 국적자국으로 다시 뛰어가 우타이 씨 접견 신청을 했고 우타이 씨는 아주 친절하게 나를 접객실로 안내하더니 자기는 그런 서류를 받은 적이 없단다. 혹시 잘못 받았더라도 해외 거주 라오스 국민의 국적 관리가 주 업무인 자기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영사국으로 이첩을 했을 거란다. 다시 외교부 접수처로 갔다.
"우타이 씨를 만났다. 거기에는 절대 내 서류가 없고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정 못 믿겠으면 니가 우타이 씨한테 전화를 걸어 직접 물어봐라."
일이 이쯤 되자 접수처에서도 짬이 좀 되는 분이 나와 나를 달랜다.
"우리가 경위를 잘 조사해서 너의 서류가 어디에 있는지 잘 찾아볼 테니까 여기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가련? 혹시 모르니까 너의 그 서류 복사본 철은 계속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도록 하렴."
10시에 나와 외교부 접수처-재외라오스국적자연락국-영사국-접수처-국적자국-접수처 뺑뺑이를 돌다 보니 어느덧 12시가 되었다. 된 일은 하나도 없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다. 그래서 다들 라오스를 '시간을 잃어버린 곳'이라고 하는구나.
일단 밥을 먹었다. 라오스에서 사는 20년 동안 깨달은 것들 중 하나는 배고프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달달하게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당을 충전하고 나니 역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본인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을 몇 가지 갖춰 둘 수 있는 건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들 중 하나다.
마침맞게 외부 접수처에서 전화가 왔다. 영사국에 이야기해 두었으니 서류 복사본 철을 들고 가면 복사본으로 접수해 줄 것이란 내용이었다. 사실 개인적인 커넥션이 있지 않고서야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주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만큼 이 사안이 그들에게도 심각한 거였던 듯.
이 제안이 언제까지나 유효하리란 보장은 없기에 바로 영사국으로 갔다. 영사국 접수처 직원이 본청 접수처로부터 전화받았다며, 저기 왼쪽 끝 창구로 가서 복사본 서류를 주란다. 3번 창구로 가서 복사본을 제출하니 담당자가 한참 서류를 앞뒤로 훑더니 원본이 아니라 안 된다고 한다.
"아니, 너네 외교부에서 된다고 해서 가지고 온 거라고!!"
"그래도 새로 원본을 가져와야 해~~"
"뭣이라고, 1번 창구 쟤가 본청에서 전화받은 애여. 쟤한테 물어보라니까!!!"
"누가 뭐래도 나는 원본만 받아~~"
한참 실랑이하는 와중에 담당자 책상 앞쪽에 놓인 서류철 맨 위, 왠지 낯익은 서류뭉치가 보인다.
"잠깐, 이게 뭐여? 내 원본 서류잖어!!"
"어, 그게 니꺼여? 누가 갖다 줬는데 수수료를 안 내서 걍 냅뒀지~~"
"여기 내 전화번호도 다 있구먼 왜 연락을 안 한겨????"
"아, 찾으러 올 줄 알았지~~"
하이고....
휴....
ㅆㅂ....
끝까지 복사본을 안 받아 준다고 하면 아예 영주권 자체를 포기하려 했었다. 그 기나긴 쌩지랄을 어떻게 또 되풀이하냐고. 허탈하게 담당자가 적어주는 접수증을 들고 1번 창구로 돌아가 서류 접수비를 납부, 납부필증을 받았다. 20만 낍이었나 얼마였나 기억도 안 난다. 내 이 소듕한 서류를 취급하는 비용이 너무 싼 거 아니야? 하는 느낌만 살짝 남았을 뿐. 이번에는 3~4주를 기다리면 된단다. 뉘에뉘에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