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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정원 Mar 07. 2024

마당을 잃은 아이들에게 교실정원을 선물하자.

교육에 관한 단상


* 2018년에 기록한 글인 점을 참고해 주세요.



      필자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시골로 내려가 조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지금이야 개발이 진행되어 아파트와 고층건물이 즐비하지만 당시에는 집 근처를 조금만 걸어가면 논밭이 펼쳐진 그야말로 한적한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오면서 복잡한 도시생활을 다시 하게 되었지만 언젠가 미래에 내가 살 곳은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이라는 이미지를 항상 머릿속에 그리곤 한다. 그만큼 어린 시절 집 앞 마당의 푸른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놀던 기억, 그리고 온갖 채소와 나무가 심어진 텃밭에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꽃과 열매를 보며 감탄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까닭일 것이다. 도시생활을 하며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드물게 이런 추억을 갖고 있는 것이 새삼 감사할 따름이다. 요즘은 마당이 있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을 걷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으로 사는 것은 참으로 고된 일인 듯하다. 안타깝게도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9년째 ‘자살’이다. 하루 평균 1.5명의 청소년이 성적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PISA 2015 조사에서 한국 학생의 ‘삶 만족도’는 조사대상 48개국 중 47위를 차지했고 한국 학생의 75%가 성적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읽기, 수학, 과학 등 학력은 늘 세계 최상위권인 것과 대조적인 결과다. 이러한 수치들은 으레 ‘그래도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는 잘하지’ 하며 위안 삼았던 것이 이제는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청소년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원인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요즘 중고등학생은 아파트, 빌라 등 마당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곳에서 생활하다가 하루 중 대부분을 학교 교실에서 보낸다. 방과 후에는 소위 ‘학원 뺑뺑이’를 전전하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숙제하고 잠드는 생활의 반복이다. 이런 와중에 늘 함께 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10대 청소년의 하루 평균 모바일 인터넷 활용 시간은 139분으로 나타났고 2017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과도한 스마트폰 이용을 보이는 스마트폰 과의존위험군이 청소년의 30.3%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에 의존할수록 불안, 우울 증세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스몸비(스마트폰+좀비)라는 말처럼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청소년을 쉽게 볼 수 있다. 게임이나 SNS 등을 하느라 휴대폰, 컴퓨터 등 전자기기와 떨어져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한 결과로,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만지고 느끼고 사색하는 여유란 생각할 수 없는 실정이다.


     갈수록 우울증, 왕따, 학교폭력 등의 문제가 대두되는 이유는 어쩌면 자연이 결핍된 데에서 오는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아동교육 전문가 리처드 루브는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이라는 책에서 이 같은 현상을 ‘자연결핍장애’로 명명했다.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지만 이 단어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연결핍 장애는 인간이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의미한다. 감각의 둔화, 주의집중력 결핍, 육체적/정신적 질병의 발병률 증가 등을 포함한다. 다수의 연구결과, 도시에서 자연이 부족해지면서 공원이나 공터가 없거나 있더라도 잘 갈 수 없는 경우에는 범죄율이 높아지고 우울증도 자주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바깥 활동보다는 실내 활동이 두드러지는 현대인들이 자연과 단절되면서 신체적 건강과 아동의 발달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점차 늘고 있다. 반대로 자연을 가까이 하면 인간의 발달과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들도 보고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립되고 위험한 스트레스원인 우주비행공간의 환경에서 식물이 있을 때 우주비행사들의 심리적 안정에 큰 효과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경우에도 식물이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 벽만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보다 수술 후 입원기간도 짧고 진통제 사용량도 적었다.


     이러한 식물의 존재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코넬대학 환경심리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나무나 숲이 보이는 집에서 사는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또한 큰 스트레스를 겪은 아동일수록 자연에서 얻는 위안의 효과가 컸다. 이탈리아 연구진에 의하면 초등학교 학생들의 경우에 식물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에서는 사고도 줄어들며 녹지공간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자살과 폭력 사건 발생률도 감소했다.


     상술한 연구결과들을 볼 때 인간은 본래 자연 속에 살아야만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자연과의 접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연구들에서도 이러한 식물의 힘을 엿볼 수 있다. 교실 내에 실내정원을 조성하여 녹색식물이 초등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결과 정서조절 능력이 증가하고 집단 괴롭힘 가해 정도(강탈·구타, 무시·소외, 욕설·협박, 조롱·놀림), 과잉행동문제, 주의 산만-수동적 문제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 또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교실 내 정원을 도입했을 때 지각·결석·조퇴 횟수, 양호실 방문 횟수, 약물 복용 등이 낮게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서도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실내에 식물이 조성된 업무환경일 경우 그렇지 않은 환경에 비해 불안이나 혼돈감이 줄고 심신의 안정화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인간은 생활환경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다. 더군다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청소년에게 학교 환경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녹색식물을 잘 활용한다면 자연결핍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성원들에게 심리적 안정과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위기는 곧 기회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생수가 줄고 있는 위기상황을 기회로 삼아 교실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교실 한쪽 벽을 식물 재배공간으로 활용하는 ‘그린 월(Green Wall)’로 꾸며도 좋다. 교실 뒤편에 개개인의 이름을 붙인 식물을 심어 화단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마당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교실 정원을 선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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