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사십에도 사춘기는 온다
생각하는 봄, 思春期
사춘기는 한자로 생각할 사(思), 봄 춘(春)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의 나는 사춘기를 제대로 겪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몸의 변화에 따라 이유 없이 예민해지긴 했지만,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거나 세상을 향해 반항해 본 기억은 없다. 엇나간 친구도, 일탈을 감행한 이야기들도 내 주변에는 없었다. 나는 비교적 얌전했고, 주어진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귀 밑 3cm, 치마는 무릎 아래 5cm, 남들 모두 줄여 입던 교복을 단 한 번도 줄이지 않고 규정을 철저히 지키며 다니던 학생이었다. 그래서 내 사춘기는 별다른 굴곡도 없이 무난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십을 넘긴 지금에서야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사춘기를 겪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해 둔 것인지도 모른다. 성인이 된 후의 나는 해야 할 일과 현실적인 고민들에 늘 둘러싸여 살았다. 20대에는 방황도 많았고,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않았으며, 너무 이른 나이에 주식에 손을 대었다가 쓰라린 실패를 겪어 당장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났다.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혹은 지금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는 일이 더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외면해두었던 질문들이 사십대를 보내는 지금, 다시 내 앞에 돌아왔다. 이제야 조금씩 인생을 알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살아온 좁은 반경 안에서만 모든 것을 판단해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란 어떤 사람인지 고민도 많이 했다. 감정을 숨기거나 조절하지 못하고 어린 사춘기 아이들처럼 그대로 내뱉어버린 순간들, 그리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미성숙함이 오히려 나를 초라하고 민망하게 만든 적도 많았다. '이 나이에 이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반성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미성숙함의 경험들이 나를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진짜 나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면서, 뒤늦게라도 자아를 다시 형성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사십을 넘기며 찾아온 이 사춘기는 조용하고, 느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다시 시작한 사람에 가깝다고 느낀다. 마치 오래 미뤄 둔 봄이 이제서야 천천히 찾아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