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느림 Jan 02. 2022

"팀장님..!" 시니어에게 주니어가

짧은 생각 짧은 글 : 스타트업

벌써 이 회사에 들어온 지 5개월이 돼간다.


전공과도 잘 맞고 이미 자리 잡은 스타트업이었기에

내겐 꿈같은 회사였다. 일종의 로망


하지만 모든 로망과 현실은 다르듯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경험이 없으면 어려운 직무다 보니

말을 알아듣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고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기 시작하자,

나한테 떨어지는 일들을 쳐내느라 고생했다.


팀장님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아쉽다. 더 잘할 수 있다.
이게 최선이 아니다.
지금 당신이 있는 포지션에 지원하는 분들에 비해 낫다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노력이 부족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매일 7시 출근하고 밤 12시까지 일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똑같았다.

일을 오래 하는 건 같은데, 성실은 한데,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몰입하지 않고 있다. 반응이 늦다.


아 물론 칭찬은 안 해줬나?

말을 하긴 했다.

부정적 피드백 99개를 준 후에 한마디 "잘했어요"

당연히 그 말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영혼 없는 말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문맥이 그랬다.


또 한 번은 이런 말 까지 하더라

제가 칭찬하는 거 진심 아닌 거 알죠
다 형식상 하는 말이고
솔직히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안 해도 될 말까지 한 이유는 뭐였을까

이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모르겠다.


솔직하게 몸도 맘도 많이 지쳐간다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있고

몸도 안 좋아지는 걸 느끼고 있는데

한 번도 잘 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일에 치여 어느덧 새벽이 된 날

단발적인 유희를 얻기 위해 유튜브에 들어갔고

한 영상을 보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fjfhhyVCDk


처음 보는 사람인데,

SM에서 아이돌 콘셉트 디렉팅을 하던 민희진이라는 분이란다.


16분의 영상 중 딱 한마디가 꽂혔다

제가 이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틀렸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특유의 확신과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그 묵직한 말을 내게 꽂혔다.


자신감에 가득 찬 그 말투가 생경했고

당당하다 못해 거룩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에

"사람이 저렇게 자기 확신이 가득할 수 있나?"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야 내가 인턴생활 동안 왜 힘들었는지

나름의 방법을 여러 가지 도전했지만,

왜 불안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민희진 님도 처음이 있었을 거다.

많이 헤멧을 거고, 혼났을 거고, 그럴 때마다

나처럼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었겠지


그렇지만 지금의 민희진 님이 지금의 나와달리,

자기 확신 가득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성공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과정이야 어땠든,

하나씩 하나씩 내가 시도한 것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들을 목격하면서

누군가에게 좋은 피드백은 못 받더라도

내가 생각한 것들의 방향성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고,


도전-성공, 도전-성공을 반복하며

여러 건의 성공경험이 쌓여, 자기 확신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제 인턴 5개월간의 불안의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이 회사에서 단 한건의 성공경험도 쌓을 수 없었다.

못하고 있다.
더 잘해야 한다.
이렇게는 정규직 전환 못된다.

단 한 번의 칭찬도 없이,

나의 노력을 처참하게 부숴버리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실패했고, 또 실패했다.


그러니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믿음이 생길 리 만무했고,

'이번에도 혼나겠지'라는

생각만 반복되며 일에 효율만 감소했던 것이다.



지난 5개월과 그간의 공격적 피드백이

원망도 스럽지만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공격적 피드백이라는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고,

개선안을 요구할 차례다.


만약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 회사와 이 팀과

이 팀장님과 나는 인연이 아닌 거겠지.


나는 부족할지언정,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설령 틀렸다 한들 틀림만 강조하는 팀에서 나는 성장할 수 없다.

성장하고 싶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아직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