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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 Jan 06. 2021

선생(先生)이라는 글자 그대로

 대학교 때 목동의 재수학원에서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하루 3시간 동안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는 아르바이트였는데, 그동안 다양한 수험생을 만날 수 있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생도 있었고, 어쩌다 재수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수한 학생도 있었다. 또한 운동 등 예체능을 준비하다 진로를 바꾸기 위해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할 땐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리는 게 부끄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학식을 쌓고, 학생들이 배우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학식이 충분치 않았을뿐더러, 학생들과의 4-5년 나이 차이가 존경을 자아낼 만큼 충분한 세월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대학에서 형 동생으로 만나 함께 웃고 떠들며 지낼 사람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질문을 받아준다는 이유로 존칭을 듣는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선생님의 모습과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끄러웠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10분의 질의응답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단순히 질문에 답변만 하는 것은 선생님 이라기보다 그저 문제 풀어 주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문제만 풀어주면 되지 그 이상은 주제넘은 행동이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질문을 받으면서 내가 겪었던 답답한 심정, 힘들었던 점을 학생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음을 옆에서 직접 보게 되니 도와주고 싶었다. 내가 힘들어했던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안 겪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선생(先生)이라는 글자 그대로,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게 있으면 내가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나는 그때 이렇게 했지만, 나랑 너는 다르고, 내가 공부했던 시기는 지금과 다르니까 내 의견은 참고로 하고 네 스타일대로 고민해봐’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 경험을 발판 삼아 무의미한 시행착오를 줄이면 효율적이면서도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을 해 주니 몇몇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나에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는 간혹 잘못된 접근 방법도 있었지만, 우선 스스로 생각해 낸 것에 대해 격려하고 그 접근 방법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간혹 잘못된 건 알겠지만 내 눈에도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경우는 솔직히 말한 후 함께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깊은 고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고민은 학문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했지만, 1년이라는 주어진 시간 동안 수능을 목표로 하기에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걸 몸소 경험했기 때문에, 내 경험을 먼저 말해주고 학생의 판단에 따라 질문에 대한 추가적인 답변을 해 주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말 많은 학생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들의 결과가 좋았다. 3월 수학 점수에서 2점짜리만 겨우 다 맞췄다가 수능 때 한 문제 실수로 아쉽게 2등급 맞춘 친구, 삼반수 하면서 예전에는 꿈도 못 꿨을 인 서울권 학교에 합격하게 된 친구들이었다. 수능 끝나고 그 친구들은 내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 왔지만,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니 가장 고생한 건 너희들이다, 나에게 좋은 말을 해줘서 고맙지만 나는 그저 조금 도와줬을 뿐이라고 했다. 내게 보답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 에게는, 나한테 잘하기보다는 내가 너희한테 해 줬던 것처럼 너희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려고 노력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이렇게 2년 동안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고민했지만, 그 과정에서 묘하게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돈을 지불하는 학생과 제공하는 서비스로 급료를 받는 아르바이트생의 관계가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고 내가 남을 위해 무언가 해 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즐거웠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되돌려 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얽매임이 풀어져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와서 굳이 그 친구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느낀 이 평온한 감정을 그 친구들도 같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글을 통해 ‘보시’의 개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시면 알겠지만, 보시는 쉽게 말해 ‘베푸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는 ‘되돌려 받겠다는 마음 없이 베푸는 것(무주상보시)’을 의미합니다.

 ‘베푼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도움이든, 지식적인 도움이든.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도 도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따뜻한 눈길, 환한 얼굴, 공손한 말, 친절함 등도 이에 포함됩니다.

 저 같은 경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제가 가진 경험을 베풀었습니다. 베풀다 보니 그 자체가 즐거워져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되돌려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할 때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다들 얘기를 하면 자신의 과거 경험이 안 나올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다만 자신의 경험은 과거의 자신이 했던 일일 뿐, 현재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에게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여기는 순간, 그 조언은 더 이상 조언이 아니라 조언이라는 말로 포장된 자기 자랑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러한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경계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시는 ‘나’ 혹은 ‘내 것’이라는 집착을 무뎌지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로 전하기는 쉽지 않은 느낌이기에, 직접 느껴보고 싶으신 분연말연시를 맞아 요리 혹은 작은 선물 주변의 이웃이나 친구분들께 보시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해 드립니다.


 조금 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키워드를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보시바라밀’ ‘무주상보시’ ‘무재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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