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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 Jan 24. 2021

따뜻함과 시원함 그 사이 어딘가

비너스의 탄생과 언어의 사용



 누군가 내게 여행 가 본 나라 중 가장 좋았던 나라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태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태리가 좋았던 개인적인 이유는 12년 1월 처음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여행에서 사귀었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건 이태리 겨울의 햇빛이 기분 좋게 따뜻한 덕분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년 1월,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들기 전 지금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 7년 만에 다시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한 달 동안 예전에 갔던 곳을 다시 가 보기도 하고, 가보지 못한 곳에도 가 보며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물론 따뜻한 겨울 햇빛이 있는 이태리도 다시 갔다. 그중 피렌체는 예전에도 가 봤지만 당시 바쁜 여행 일정으로 인해 정작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다시 갈 땐 일정을 2박 3일로 넉넉하게 잡고 여유롭게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르네상스의 본고장이라는 피렌체의 이명을 듣기만 하더라도 마음이 한껏 들뜨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예술과 그리 친하지 못해 그런 들뜬 마음은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피렌체라는 도시는 예술을 모르는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았다. 숙소에서 나와 아르노 강가를 걸으면서 보는 노란 빛깔의 건물들은 예술에 무지한 나 조차도 '이런 게 르네상스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에어비앤비 집주인의 추천을 받아 갔던 보볼리 정원, 바디니 정원에서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편안함이 느껴지는 정원의 아름다움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았던 비너스의 탄생은 푸른색 바다의 자연스러우면서도 미묘한 온도감을 통해 내 시선을 오랜 시간 동안 붙잡아 두었다.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아서 비너스의 탄생을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본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예술과 친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술작품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래도 기회가 있다면 전시회에는 자주 가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비록 미술은 모르지만 전시회에 있는 그 순간만큼은 문화시민이 되어 조금의 관심이라도 가지고 있다며 최소한의 겉치레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싫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내게는 미술작품이 그저 난해하기만 하거나 혹은 그려진 사물들이 여러 상징으로 표현된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대체적으로 차분한 내 성격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동시에 마음이 조급해져 한 가지 그림을 차분히 보기 힘들어질 때가 있어 미술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비너스의 탄생을 본 것도 내가 미술작품을 좋아해서 본 것이 아니다. 먼 곳에서 와서 오랜 줄을 기다리고 들어온 박물관인데 뭔가 하나는 그래도 제대로 봐야 하지는 않겠나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유난히 사람이 많은 곳이 있어 가 보니 미술책에서만 보았던 비너스의 탄생이 있었다. 처음 비너스의 탄생을 볼 땐 사람이 많고, 언뜻 보니 미술책에서 본 것과 똑같아서 한번 휙 보고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그래도 먼 길 와서 보는데 다시 볼까 하는 마음에 가까이서 다시 봤다. 역시 미술책과 똑같이 생겼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바라본 비너스의 탄생은 미술책의 사진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있었다. 그림에서 이런 느낌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라 너무 신기한 나머지, 내가 무엇을 보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그림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이 과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느낀 감정의 원인은 이 그림의 주제인 조가비 위에 서 있는 비너스가 아니라 비너스가 태어난 바다의 색이었다. 따뜻한 느낌이 들면서도 마냥 따뜻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마냥 시원하기만 한 것도 아니며, 따뜻하다고 하기엔 시원하고, 시원하다고 하기엔 따뜻한, 따뜻함과 시원함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그 오묘한 색감은 내 눈으로 들어와 머릿속에서 색감이 주는 느낌 그대로 기분 좋은 바람이 되어 나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해 주었다. 그 느낌에 매료되어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마치 세상에 나와 작품 단 둘만 있는 것처럼 오롯이 그림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억한다면 비너스의 탄생을 조금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때 내가 보았던 비너스의 좌우에 그려진 인물(신)들은 그림의 제목 그대로 '비너스의 탄생' 그 자체를 축복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따뜻함과 시원함 그 사이 어딘가를 표현한 비너스의 탄생은 내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언어는 연속적인 세계를 불연속적으로 나눠서 표현하기 때문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비너스의 탄생 그림을 통해 그 사실을 몸으로 더 깊이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오히려 언어에 이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표현할 수 없는 것, 그리고 표현할 수 있다면 말할 것과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관찰을 통해 면밀히 가려낸다면 오히려 표현할 수 없는 걸 표현할 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비너스의 탄생을 보고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보티첼리가 색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 적절하게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단어의 정확한 이해와 사용을 통해 내가 쓰는 글, 사용하는 언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나눠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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