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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 Jan 31. 2021

한 그릇에 담긴 피자

글쓰기와 요리의 닮은 점: 나를 표현하는 수단


 2019년 1월 유럽여행 중 밀라노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남편분인 가브리엘이 운영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피자와 파스타 두 가지 종류가 있었으나, 집에서 베이킹을 시도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 실패를 만회하고자 피자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요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이전에 집에서도 2~3회 노오븐 베이킹을 시도해 보았으나, 반죽이 너무 질거나 혹은 태우기도 해서 실패했었기 때문에 베이킹은 내게 있어서 넘어야 할 큰 산 같은 존재였다. 그때 요리 프로그램을 신청했을 때에는 이번에도 실패하면 베이킹은 나와 안 맞는 길이니 두 번 다시 시도하지 말아야겠다는 나름의 각오도 했다.



 피자 만드는 레시피는 어떻게 보면 정말 간단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밀가루, 소금, 물, 올리브 오일, 이스트를 넣고 반죽을 만든 다음 숙성을 거치고, 숙성된 반죽을 편 다음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바른 뒤 모짜렐라 치즈를 올리고, 오븐에 넣고 구우면 끝이다. 하지만 내게 요리법을 알려준 가브리엘은 반죽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고 알려줬다. 레시피에 무엇을 얼만큼 넣을지 수치화 해 두긴 했지만, 그날의 날씨가 주방의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알려주는 반죽의 질감을 잘 기억하고, 이를 맞추기 위해 물이나 밀가루의 양을 가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줬다.

 안 그래도 집에서 베이킹에 도전했을 때 반죽 때문에 실패했었는데, 가브리엘에게 반죽이 어렵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에 부담은 가중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내 행동이 많이 어설퍼져서 반죽 만들 때 밀가루도 쏟고, 물도 많이 흘렸다. 당연히 주방 테이블은 상당히 더러워졌다. 내 요리실력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주방을 더럽게 쓰니 집주인인 가브리엘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럽게 사용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더니 가브리엘은 원래 요리하면서 더러워지는 것은 정상이고, 다 끝나고 치우면 되는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해줬다. '더러워지는 것이 정상이다.' 이 한마디는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전까지는 요리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있어서 깨끗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저분한 환경이나, 흘린 식재료 같은 것이 무조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밀가루를 체에 칠 때에도 행여 믹싱볼 밖으로 튀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흔들었고, 반죽을 섞다가 흘러넘치는 일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말해 준 '더러워지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내가 생각하는 깨끗함이 위생을 위한 깨끗함이라기보다는 그저 집착에만 가까운 깨끗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깨끗한 환경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강박관념을 가지고 스트레스받을 필요까지는 없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배가 고프니까 먹고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이다. 기분 좋아지려고 하는 요리를 하는 건데 중간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스트레스 받으면 즐겁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만든 요리의 맛도 그다지 즐겁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먹을 음식이기 때문에 위생적으로 깨끗한 것이 중요한 것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지저분함에 지나칠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요즘 퇴사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겨 그때 배운 피자를 다시 한번 만들어 보니 요리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글 쓰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와 글쓰기를 각각 처음 - 중간 - 마지막 단계로 나누면, 처음 단계에서 요리는 재료를 고르고, 글쓰기는 글감을 고른다. 중간 단계에서 요리는 조리를 하고, 글쓰기는 사유를 통해 전 단계의 재료와 글감을 다듬고 변형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요리는 접시에 담겨 완성되고, 글쓰기는 문체를 통해 생각이 표현되어 완성된다.

 나의 경우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생각이 생각을 낳는 경우가 많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마치 피자를 배웠던 그 날 밀가루를 쏟은 것처럼 머릿속이 복잡하고 더러워진다. 생각하는 것도 그 일련의 과정들이 깨끗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요리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요리하는 공간 전부가 더러워진 것이 아니라 밀가루를 사용하는 곳만 더러워진 것처럼, 생각이 많아지게 되더라도 머릿속 모두가 복잡해진 것은 아니다.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마음을 단단하게 잡고 중심을 잃지 않는다면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에 대해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는 내가 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글감)를 구하고, 그 재료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적절한 조리방법으로 조리(사유)를 한 다음, 그것을 세련된 접시 위해 예쁘게 플레이팅 해서(문체에 담아)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요리(글)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 요리(글)는 누군가에게는 맛이(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내가 정성 들여했다면 당당하게 내가 만든 요리(내가 쓴 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브리엘과 같이 피자를 만들고 나서 서로가 만든 피자를 나누어 먹어 보았다. 가브리엘은 내가 만든 피자를 먹어보고 내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가브리엘은 집에서 쿠킹 클래스를 진행할 때 내가 만든 피자와 같이 만든 사람의 개성이 음식에 드러나는 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가브리엘이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아 내심 기쁘게 생각했다. 그때 만들었던 음식이 나를 표현하고 가브리엘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내가 쓰는 글도 나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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