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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 Feb 21. 2021

South st. 105

추억의 필리 치즈 스테이크


대학교 때 자주 찾아갔던 단골 음식집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공대 식당과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다 보면 평소와는 다른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나름 대학가이다 보니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많지만, 가끔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고 싶을 때면 주저 없이 그 음식점으로 향했다. 돌아갈 집이 있는 것처럼 생각날 때 찾아갈 수 있는 음식점이 있다는 것은 배고프며 과제에 허덕이는 공대생에게 있어서 굉장히 큰 기쁨이었다.


 어느 토요일 낮, 배는 고픈데 기숙사 밥은 먹고 싶지 않아서 초록창에 맛집을 찾고 있었다. 대부분은 취향이 아니거나 가본 곳이라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는데, 그중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글이 포스팅되어 있었다. South st. 105라는 이름에 마치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아메리카를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간판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가게에 관한 포스팅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도전해 본다는 마음으로 그 가게로 찾아 나섰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음식을 도전해 보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흥분되는 일이다. 음식은 문화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이국적인 음식을 먹는 것은 일종의 작은 여행과 다름없다.


 기숙사 침대 이불에서 나와 문밖을 나섰다. 새로운 음식을 먹기 위해 한 걸음씩 발을 내딛을 때마다 조금씩 흥분됐다. 그곳의 음식이 맛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맛이 없어서 실망하지는 않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일 것이었다. 신대륙을 찾으러 출발하는 콜럼버스의 마음이 마치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스마트폰의 지도를 따라 도착한 가게는 생각보다 작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눈앞에 가장 먼저 작은 주방이 보였다. 주방에는 깨끗하게 손질된 양파, 양배추가 있었다. 그 옆에 사장님은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사장님은 ‘무엇을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메뉴판을 보니 포스팅에서 본 메뉴가 맨 첫 번째 줄에 있었다. 아무래도 이 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음식인 것 같았다. 음식점 맛의 척도는 가장 기본적인 요리를 얼마나 잘하느냐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맨 윗줄의 ‘필리 치즈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드시고 가실 건가요?’ ‘네. 아, 그리고 감자튀김도 추가할게요’


 사장님은 주문을 받고 요리를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요리하는 사장님을 구경했다.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의 즐거움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더 깊고 오래간다. 직접적으로 맛을 느끼지는 않지만 조리과정에서 들리는 양배추 써는 소리, 감자 튀기는 소리, 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는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더불어 에피타이저처럼 식욕을 북돋아 준다.


 사장님이 고기를 굽고 있는 철판은 매우 깔끔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보았던 깔끔하게 손질된 야채들이 생각난다. 고개를 조금 돌려보니 용산 미군기지에서 받은 것으로 보이는 캘린더가 벽에 붙어있었다. 음료수 냉장고 위에는 Sergeant(병장) 계급으로 보이는 미군 모자가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사장님의 팔을 유심히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문신이 있다. 아무래도 군 경력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음식점이 깔끔한 이유의 앞뒤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


 우람한 팔뚝의 사장님은 섬세하게 팔을 움직여 요리를 완성했다. ‘음식 나왔습니다’ 이름이 필리 치즈 스테이크라서 스테이크 종류라고 생각했는데 빵을 갈라 그 안에 다진 고기와 야채를 넣었다. 우선 아무런 소스를 바르지 않고 먹었다. 한번 베어 물고 음미했다. 강렬함과는 거리가 먼 맛이었다. 순박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억지로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려는 맛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맛이었다. 질감 또한 빵과 고기가 잘 어우러졌다. 빵이 굉장히 부드러우며, 신기하게도 고기를 먹는데도 맛이 무겁지 않았다. 왜지? 접시를 보니 고기 사이사이에 야채가 들어가 있었다. 할라피뇨였다. 이게 킥이네. 내심 감탄을 했다. 다음은 머스터드를 뿌려 먹었다. 이 또한 맛있다. 하긴 요리 자체가 맛있으니 머스터드를 뿌려도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이런 것만으로 음식에 대한 만족감을 다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이 만족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데 있었다. 그 중요한 것으로 인해 만약 다른 사람이 같은 재료로 같은 음식을 만든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맛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마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처럼,  ‘정성’으로 표현되는 보이지 않는 재료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필리 치즈 스테이크를 처음 한입 물었을 때부터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행복감은 아마도 요리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장님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 같다. 먹는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사장님은 미국에서 먹었던 맛이 그리워 한국에서 찾아보다가 아무 데도 없어서 자신이 직접 음식점을 차렸다고 한다. 사장님이 만들었던 음식이 맛있었던 이유가 사장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좋은 추억을 담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집에서 율란 떡갈비를 해 먹다가 뭉쳐진 고기의 모습이 South st. 105에서 먹었던 음식의 모습과 비슷한 생각이 들어 몇 자 적게 되었다. 졸업하고 가보지 못했으니 만으로 2년이 넘은 것 같다. 오랜만에 다시 가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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