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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 Jan 10. 2021

레몬은 레몬이다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도 레몬처럼 바라보기

 어느 순간부터 동네 마트에서도 레몬이 야채 혹은 과일 코너 한 곳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렸을 때에는 큰 마트에나 가야 볼 법한 과일이었는데, 이제는 동네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되어 반가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반가운 느낌과는 별개로 레몬을 선뜻 사고 싶어 지지는 않는다. 보통 과일은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긴 후 그냥 먹기 마련인데, 레몬은 그렇게 먹기엔 상큼함을 아득히 뛰어넘어 시큼한 수준이다. 레몬의 노란빛을 보면 그런 시큼한 맛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리게 되고 결국 쉬이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게 된다.



 신 맛이 레몬의 생존과 종족번식에 유리하니까 이런 맛을 갖도록 진화해 왔을 텐데, 그 이유가 방어적인 측면이었을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유야 어떻든 인간의 먹겠다는 굳은 의지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고 레몬을 조리해서 어떻게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상큼한 냄새가 나는 레몬은 그 겉모습과는 달리 강렬한 신맛을 가지고 있어 먹고 나면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들어 손절 후 두 번 다시 맛도 보지 않을 과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맛의 개척자들은 레몬 파이, 레몬 셔벗, 레몬 에이드, 레몬 커드 등 레몬이 가진 특징을 버리지 않으면서 다른 음식과 잘 어울리는 조리법을 만들어 냈다.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떤 생각과 접근방식으로 레시피를 만들었을까?  





 내가 만약 레몬을 제대로 먹어보고 싶었던 맛의 개척자였다면, 레몬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시큼함과 그 뒤에 그 신 맛이 떠올라 알게 모르게 다시 먹고 싶은 생각부터 시작했을 것 같다. 그 이후 침을 고이게 하는 신 맛이지만 그대로 먹기는 힘드니 맛의 특성을 파악해 다른 재료와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을 것 같다. 상큼함을 가지고 있는 레몬즙만을 추출해서 고기 같은 느끼한 음식에 사용하거나, 혹은 다른 재료와 섞어 그 향긋한 냄새를 가미하는 방법으로 디저트를 만드는 데 사용하거나, 레몬청같이 숙성 등의 방법을 통해 강한 맛을 순화시키거나. 때로는 의도치 않은 일로 단백질 응고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내어 우유나 계란 등을 쫀쫀하게 만드는 방법 등으로. 또한 직접 맛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청량감이라는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레몬 조각을 음료 잔에 끼우는 방법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싶다.     


 맛의 개척자는 레몬의 맛을 다시 즐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재료와 어울리게 해 그 개성이 올바르게 쓰일 수 있도록 방향을 잡고 한 접시의 요리 위에 담았다. 레몬 그 자체를 어떻게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관찰한 뒤, 그 특성에 맞춰 상황에 맞게 사용했다.








 이렇게 맛의 개척자가 레몬 사용하는 방법을 다시 한번 바라보면, 나 자신이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감싸안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다른 사람은 잘 모르지만)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은 레몬의 강한 신맛처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간혹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은 확대 해석되어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경우와 혼동되며, 심한 경우 자기혐오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이런 점이 싫어서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한동안 고민해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뭔가 특별한 해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내가 생각해낸 답은 특별한 해답이 아닌 그저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나 자신도 레몬과 다르지 않다. 맛의 개척자들이 레몬의 신맛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싫어하는 나 자신도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다. 맛의 특성을 파악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조리하여 레몬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것처럼, 스스로를 관찰하고 특성을 파악해 적절한 시기에 나의 다른 장점과 더불어 적절한 방법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면,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은 더 이상 미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레몬을 사용한 레시피를 만드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음식 종류에 적용해 어울리는지 확인해 보면서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경험을 축적하고, 때로는 무의미해 보이는 일이거나 예기치 못한 일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레몬이 아닌 다른 재료들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그만큼 시아도 넓어져 다른 응용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 예로,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은 편협함이다. 별 것도 아닌 것으로 혼자 꽁해 있으면서 마음 아파하는 이런 내 모습을 예전에는 싫어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행동 등 스스로의 모습을 관찰해 그 본질이 내 것에 대한 집착, 세밀한 것까지 신경 쓰는 성격에서 주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세밀한 것까지 신경 쓰는 성격은 그대로인 채 내 것에 대한 집착을 줄이는 연습을 하고, 차분함과 같이 내 긍정적인 성격들을 연계시켜 스스로를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편협함 자체가 사라진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편협함을 길길이 날뛰는 악동으로 비유하자면, 관찰과 연습을 통해 악동이 날뛰는 곳에 적절한 타악기를 배치해 악동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동시에 움직일 때마다 좋은 리듬 음악을 낼 수 있도록 하였다. 즉, 악동(惡童)을 악동()으로 바꾸었다.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라도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말한 이 방법도 다른 분들께서 사용하신다면 나와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레시피의 목적이 서로 다른 사람이 음식을 만들어도 그 맛이 비슷하게 나오는 데 있는 것처럼, 내가 말한 이 방법을 통해 다른 분들도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감싸 안을 수 있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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