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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 Apr 24. 2022

삼천세계 그리고 나


삼천세계

그리고

두 발로 서 있는 나




1.

 이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압도적인 세상 속에 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2.

 이 시의 초안은 5-6년 전에 썼는데, 그때는 '삼천대천세계 속에 단지 살아있을 뿐'이라고 썼다.


 압도적으로 넓은 세상 속에 과연 나의 존재 가치가 진짜로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표현을 했다.


 이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여행이었다. 운이 좋아 짧은 시간 동안 유럽권, 아시아권, 호주 등의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여행이 다 끝나고 몇 년 후 이때 기억을 돌이켜 보았는데, 그때 체험한 것들만 더라도 세상은 굉장히 넓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확장시켜 내가 가보지 못한 수많은 나라, 그리고 우주까지 상상한다면 세상은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넓은 곳이며, 그 넓은 세상 속에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은 세상을 표현한 것이 '삼천대천세계'라는 단어였고, 그 넓은 세상에 압도당한 나의 가치는 보잘것없이 작아 마치 없는 거나 마찬가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소극적인 주체로 '단지 살아있을 뿐'이라고 표현했다.



3.

 그렇게 압도당하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자그마하게 남아있는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수 년동안 찾아왔다. 그렇게 찾은 나만의 대답은 칸트의 단어를 차용해 표현하자면 '자유'인 것 같다.


 나를 압도시켰던 세계는 결국 내 한마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어서 세계라고 부를만한 게 따로 없었다. 세계가 없기 때문에 압도당한다는 느낌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는 내 안을 가득 채워 허무함이나 무가치함 같은 감정에서 벗어나 내 존재를 충만하게 느낄 수 있게 하고, 내가 이번 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알려주었으며, 이에 헌신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나로부터 시작되는 세상을 의미하는 '삼천세계'와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두 발로 서 있는 나'를  등위 접속사인 '그리고'로 이어서,  이제는 더 이상 세상 속에서 압도당하는 내가 아니라, 이 세상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으면서 적극적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표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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