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빛이 나에게는 노랗고, 당신에게는 푸를지라도
어릴 때부터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정말 똑같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태양'이었다.
내가 보는 햇살은 노란빛에 가깝다.
아주 연한 주황이 섞인 색.
그런데 만약, 누군가에겐 그 빛이 푸르스름하다면?
그럼에도 그 사람은 그 빛을 '햇살'이라 부르고, 따뜻하다고 느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전혀 다른 색을 보고도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비슷한 마음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어릴 적 나에겐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철학에는 이와 비슷한 사고실험이 있다.
'전도된 스펙트럼'이라고 불린다.
내가 보는 빨강이, 타인에겐 파랑처럼 보일 수 있다는 가정.
그럼에도 우리는 "저건 빨간색이야"라고 말하며 큰 어려움 없이 대화한다.
그 이유는 우리는 그 색에 같은 이름을 붙이고,
그 색에 비슷한 반응을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빨간불에 멈추고, 초록불에 길을 건너는 것처럼.
그렇다면 감정도 그렇게 공유될 수 있을까?
나는 태양을 볼 때 따뜻함을 느낀다.
누군가 전혀 다른 색을 보고 있을지라도
같은 햇살 아래 있다면 비슷한 온기를 느낄 것이다.
감정은 서로 다른 감각 위에,
공통된 자극과 언어의 틀을 얹어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같은 음악을 들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
같은 주파수, 같은 리듬이 두 귀에 똑같이 전해졌다.
하지만 한 사람은 할머니 집 마루의 오후 햇살을,
다른 한 사람은 첫사랑과 걷던 골목길의 가로등을 떠올렸다.
전혀 다른 기억이었다.
그런데도 둘은 그 마음을 "그리운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음악이라는 파동은 같았지만
마음속에서는 완전히 다른 장면으로 번역됐다.
마치 같은 햇살을 보고도 누군가는 노랑을, 누군가는 파랑을 보는 것처럼.
그럼에도 그 다른 기억들이 만들어낸 감정은
'그리움'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가 나누는 말들은 완전한 이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불완전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에 충분한 공명일 것이다.
두 악기가 같은 음을 내지 않아도 아름다운 화음을 만드는 것처럼.
서로의 세상은 섬처럼 떨어져 있지만,
언어와 마음이라는 다리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닿는다.
내 세상이 유일한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완벽히 같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도 누군가와 같은 태양을 바라본다.
그 빛이 나에게는 노랗고, 당신에게는 푸를지라도.
우리는 그 빛을 '따뜻하다'라고 말하며 같은 계절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