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잃어버린 시대

고개를 들면 사라지는 질문들

by 새벽의숲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그 안에는 손바닥 위의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만이 번쩍였다.


식사 메뉴를 고르는 일, 하루 일정을 짜는 일,

심지어 누군가에게 건넬 말까지—

이제는 모든 것을 AI가 대신해 주었다.


처음엔 편리함이었다.

배달 음식을 고를 때, 여행 일정을 짤 때,

AI가 몇 초 만에 내 취향을 정확하게 맞춰줬다.

그 편리함이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곧 의존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 선택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기록 보관소'라 불리는 오래된 도서관에서 일한다.

오래된 종이와 잉크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종이책을 관리하는 직업이다.


오늘도 퀴퀴한 먼지가 내려앉은 책장을 훑다가 한 장의 신문 기사를 발견했다.

"AI 등장으로 사고력 저하 우려"—

구식 활자로 인쇄된 그 제목을, 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이제 고민하지 않는다.

답을 얻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5초 남짓.

모두가 손바닥을 바라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5초는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일뿐이었다.


나도 한때는 그들 중 하나였다.

AI가 제시하는 답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결정적인 순간은, 오래전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위로를 건네야 했을 때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나는,

결국 AI에게 '슬픔에 빠진 친구를 위로하는 말'을 물었다.

단말기 화면에 떠오른 그럴싸한 문장을 그대로 읊조리는 내 모습.

깊은 무력감이 밀려왔다.

내 안의 생각하는 근육이 모두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기록 보관소에서 일하게 된 건, 바로 그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여기서는 AI가 아닌 내가 답을 찾아야 한다.

오래된 책 속에 남겨진 누군가의 흔적을 읽고,

그 의미를 짚어내는 과정에서 나는 잊었던 '생각하는 감각'을 되찾는다.


그러나 묵직한 도서관 문을 나서는 순간, 현실은 다르다.

등 뒤로 종이 넘기는 소리와 낡은 나무 삐걱이는 소리가 사라진다.

눈앞의 거리에는 기계적인 안내음과 의미 없는 전자음만이 공허하게 울린다.

그 소음 속에서 사람들은 생각 없는 육체처럼 움직인다.

웃음도, 분노도, 호기심도 그들의 얼굴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AI가 제공하지 않는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만드는 의문은, 마치 불온한 행위처럼 여겨진다.

대화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 아니라,

단말기에서 흘러나온 문장을 복사해 전달하는 의식이 되었다.


언젠가 이 도시의 사람들도 '생각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될까?

아니면 머지않아, 모든 것을 AI에게 맡긴 채

생각 없는 육체로만 살아가게 될까.


먼지 쌓인 책을 덮으며, 나는 오늘도 그 질문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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